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구백화점 (문단 편집) == 연혁 == [[일제강점기]] 말기에 창업자 구본흥이 설립한 대구상회(1944년 1월 10일)가 효시다. 해방 후 1962년 3월 5일에 [[합자회사]]로 설립했으며, 1969년 12월 26일 [[주식회사]] 대구백화점으로 전환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대구백화점 1970.jpg|width=100%]]}}}|| 본래는 [[대구역]] 건너편인 [[중구(대구광역시)|중구]] 동성로1가에 있었다가, [[주식회사]]로 전환할 무렵인 1969년 12월 26일 [[중구(대구광역시)|중구]] 동성로2가에 현재의 본점 건물을 짓고 이전했다. 백화점이 위치한 동성로의 지대는 엄청나게 상승해 도심의 중심업무지구(CBD)로서 발전했으며 본격적인 유통업 및 서비스업의 허브가 되어, 대구백화점 본점 앞 거리가 사실상 대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백프라자 개점 후 대구백화점 본점은 젊은 층을 타깃으로 변경했고, 이는 동성로의 중심이 동성로1가 옛 [[SC제일은행]] 대구지점 일대에서 대구백화점 본점 앞으로 남하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대구백화점은 1984년 3월 유통업계 최초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1987년 3월에는 본점 별관을 오픈했다. 1988년 5월 [[포항시|포항]] 신라쇼핑을 인수하여 동년 6월 상호를 대백쇼핑으로 변경 후 9월 개점했다.[[https://m.mk.co.kr/news/economy/826739|#]] 1988년 10월 증권시장에 주식을 상장했다. 1993년 9월 15일에는 [[중구(대구광역시)|중구]] 대봉1동 대봉교 옆에 프라자점(대백프라자)을 개점했다. 1994년 4월 8일 대백상품권 발행을 시작했으며[[https://mnews.imaeil.com/page/view/1994040808545960329|#]], 그해 9월 상인점을 착공했다.[[https://mnews.imaeil.com/page/view/1994053108513231709|#]] 1999년 8월에는 대구백화점 인터넷 쇼핑몰을 열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각 지방의 많은 향토 백화점들이 문을 닫았지만, 대구백화점은 1998년 9월 [[대구은행]] 등 채권금융기관들로부터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된 후 자구계획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여 2000년 6월 정상 경영체제로 돌아왔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건설 중이던 상인점 부지는 재매입을 조건으로 [[한국토지공사]]에 매각했으며[[https://mnews.imaeil.com/page/view/1999040615340417808|#]] 상인점 부지는 대백이 재매입을 포기하며[[https://mnews.imaeil.com/page/view/1999050614310173353|#]] [[롯데쇼핑]]에 매각되어 [[롯데백화점 상인점]]이 되었다. 포항 대백쇼핑도 위기 극복과 [[롯데백화점 포항점]] 개점으로 인한 타격으로 2003년 매각 후 2005년 최종 폐점했다.[* 함께 운영하던 할인점인 디마켓은 [[홈플러스]]에 인수되어 [[홈플러스 죽도점]]으로 바뀌었다.] 2010년 3월에 [[동아백화점]]이 [[이랜드리테일]]에 인수되면서, 이제는 유일한 대구 지역 내 순수 향토 백화점의 지위를 지키고 있다. 2000년대까지 대구 지역에서 막강한 세를 자랑했던 향토백화점이었다. 대백프라자에 명품 브랜드들을 유치하며 같은 지역백화점인 [[동아백화점]]보다[* [[동아백화점]]도 [[이랜드리테일]] 인수 전에는 쇼핑점에 [[버버리]], 오일릴리, [[미쏘니]], [[에트로]], 롱샴 등이 입점해 있었으며 개발 초기 중산층 이상 주민들이 대거 유입되었던 [[지산범물지구]]의 수요를 바탕으로 수성점에도 버버리와 수입 화장품 브랜드들이 꽤 입점해 있었기 때문에 쇼핑점과 수성점이 그래도 백화점다운 백화점이었지만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었던 대백프라자에는 밀리는 신세였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2002년에는 본점/프라자점 합계매출 2900억원을 기록하며 최고치를 찍었고, 이듬해 [[롯데백화점 대구점]]이 생긴 이후에도 롯백과 양강 체제를 형성하며 2000년대 후반까지 잘 나갔다. 2002년 10월 1일부터 2013년 9월 30일까지 신세계와 제휴를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2011년 8월 [[더현대 대구|현대백화점 대구점]]이 개점하면서 매출이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5년 뒤 생긴 [[대구신세계]] 개점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신세계백화점은 1973년 대구 지역에 진출했지만, 대백에 밀려 3년만에 철수한 적이 있다. 대구신세계의 개점은 40년만의 대구 지역 재진출이다.] 2017년 20년만에 처음으로 영업 이익 적자를 기록했고, 이 후 쭉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2017년 4월 14일, [[동구(대구광역시)|동구]] [[신천동(대구)|신천4동]] 대구상공회의소 건너편인 옛 귀빈예식장 자리에 '대백아울렛' 동대구점을 야심차게 오픈했다.[* 참고로 대백아울렛 건물과 [[대구신세계]] 건물간 거리는 도보 15분 남짓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초반에 반짝 인기를 끌었을 뿐, 결국 1년이 조금 지난 2018년 8월 26일 폐업하고[* 애초에 접근성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션 브랜드 유치 실적이 '''매우 미미'''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브랜드들과 [[현대백화점그룹]] 소속의 의류 회사 [[한섬]] 브랜드들을 빼면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 인기 브랜드는 전무했다.] 건물은 [[현대아울렛]]에 10년간 임대하였다.[[http://www.idaegu.com/?c=5&uid=394029|#]] 결국 [[2020년]]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사태로 유통업계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자, [[2021년]] [[7월 1일]]부로 '''본점'''이 개점 52년만에 잠정적 휴업에 들어갔다.[[https://news.v.daum.net/v/20210330110607828|#]] 만약 프라자점까지 문을 닫게 된다면 대구지역 향토 백화점은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