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기업/대한민국 (문단 편집) === [[1997년 외환 위기|1997년 이후]] === 이 리스트에 있는 대다수의 기업들은 IMF로 인해 사라졌다. || 이름 || 비고 || || [[갑을그룹]] ||1958년 박재갑/재을 형제가 설립한 신한견직합명회사를 모태로 했다. 1980년 박재갑 회장 사후 아들 박창호가 이어받아 1988년에 독자경영하여 섬유사업의 사양화를 대비하고자 타 사업에 확장하거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벌였으나, [[1997년 외환 위기]] 후 이듬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2003년 회사정리절차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 || [[거평그룹]] ||1979년에 나승렬 창업주가 설립한 '금성주택'을 모태로 하여 1994년에 [[대한중석]](現 대구텍)을 인수해 민영화한 기업이었다. 1990년대 동대문 패션타운 붐의 신호탄과도 같았던 거평프레야[* 이후 프레야타운, 청대문, 케레스타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다가 복잡한 문제로 폐쇄되어 한동안 [[폐건물]]로 남았다가, 2016년 3월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으로 재개장하였다. 당시 어린이들에게는 '거평토이랜드'로 유명했고, 오덕들에겐 코믹월드 발상지로 추앙받았다.]가 일반에 많이 알려졌었으나, 1998년 IMF 체제 와중에 해체되었다. 나승렬 일가는 이후 식품회사인 기린을 인수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 || [[고합그룹]] ||1966년 장치혁 창업주가 설립한 고려합섬을 모태로 한 섬유/화학특화 기업집단이었다. 1992년 러시아 사업진출에 쏟아부어 외양을 키웠다가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워크아웃을 먼저 당했고, 1999년 고합뉴욕생명을 미국 뉴욕라이프에 팔고 고려종합화학 및 고려석유화학을 (주)고합으로 합병시켰으나, 2001년 장치혁 회장 퇴진 후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 || [[극동그룹]] ||1945년 소전 [[김용산]] 창업주가 설립한 대영건설사가 모태이며 주로 건설업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1986년 국제상사 건설부문과 [[동서증권]] 등 옛 국제그룹 일부 계열사들을 인수했으나, 경영이 점차 어려워져 1998년에 부도나 해체됨. || || [[기아그룹]] ||1944년 학산 김철호 창업주가 설립한 경성정공을 모태로 했다. 국내 3대 자동차 재벌[* [[현대자동차|현대]], [[대우자동차|대우]], [[기아자동차|기아]]로 일컬어진다.]이고 1990년대 초~중반에 재계 순위 10위 권에 들었으나, 경영 악화로 1997년 법정관리되어 1999년 해체되었다. 모기업 기아자동차 등 일부 계열사들이 [[현대그룹]]에 넘어갔다가 2000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출범할 때 합류했다. 다만 삼천리자전거는 일찍이 분리되어 옛 오너쪽에서 들고 있다. || || [[나산그룹]] ||'무랑루주' 등 밤무대를 경영한 안병균 창업주가 1980년에 설립한 문화데스크를 모태로 한 기업집단이었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과도한 차입 경영 등으로 IMF 이후 1998년 최종 부도를 맞아 해체되어 모기업 나산은 [[세아상역]]에 팔려 '인디에프'로 변경했다. || || [[뉴코아그룹]] ||1981년 김의철 대표가 뉴코아를 한신공영에서 분가시킨 게 그룹의 시초이며, 1993년 계열분리 후 '박리다매'를 원칙으로 점포와 사업을 급속히 늘렸으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독단적 경영, 분식회계를 통한 사기대출 등으로 악화돼 1997년 화의신청에 들어가 서서히 해체 수순을 밟았다. || || [[대농그룹]] ||1955년 양백 [[박용학]] 창업주가 설립한 대한농산을 모태로 했으며, 1967년 태평방직 및 금성방직, 1969년 미도파백화점을 각각 인수해 사세 확장을 했다. 1989년 장남 박영일 회장 취임 후 유통, 금융, 정보통신 등에 이리저리 손을 뻗다가 1997년에 부도나 해체되었다. || || [[대우그룹]]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4대 재벌[* [[현대그룹]], [[삼성그룹]], [[LG그룹]], [[대우그룹]]으로 일컬어진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파산한 기업중 규모가 가장 크다. 그러나 과도한 사업 확장과 [[분식회계]] 때문에 1999년 대우사태를 일으키고 이듬해인 2000년 4월 해체당했다. || || 대아그룹 ||1977년경 [[성완종]] 창업주가 자신의 직장이던 서산토건을 인수한 것이 그룹의 시초였다. 1982년 대아건설을 인수한 후 충청권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다가 2003년에 경남기업[* 현재는 2017년에 [[SM그룹]]이 인수하여 여전히 건설업을 이어가고 있다.]을 인수하면서 사세가 대폭 확장됐다. 한동안 경남기업을 주축으로 해서 건설업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베트남 '랜드마크72' 사업이 실패하여 워크아웃을 당했고, 2015년 성완종 회장 자살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 || 대주그룹 ||1981년 허재호 창업주[* 황제노역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던 그 기업인이다.]가 설립한 대주종합건설이 모태이다. 1988년 주택 사업에 진출하고 1990~2000년대 초반까지 [[광주방송]], [[광주일보]], [[롯데손해보험|대한화재]] 등을 인수/설립해 세를 불렸으나, 2007년 아파트 미분양 사태로 어려움을 겪어 2010년에 모기업이 부도나 해체되었다. || || [[대한전선그룹]] ||대한전선이 모태였던 기업집단으로, 1950~60년대 재계 10위권에 들기도 했으며 2008년까지 54년 연속 흑자를 이루기도 했다. 한동안 전선/케이블 등을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다가 2000년대부터 사업 다각화를 진행해 [[쌍방울|트라이브랜즈]]와 명지건설, 남광토건, 무주리조트 등을 인수하기도 했으나, 세계 경제 위기의 여파로 2013년 모기업이 사모펀드에 매각돼 해체됐다. || || 동국무역그룹 ||1935년 헌암 백욱기 창업주가 차린 '백욱기상회'가 기원이다. 1953년 아주섬유를 세워 섬유산업에 뛰어들어 1965년 '동국무역'을 세워 무역업에도 뛰어들었다. 이후 1972년 동국직물, 1976년 동국방직, 1982년 동국산업 등을 각각 세워 섬유/화학산업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해 재계순위 30위권 안에 들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이듬해 워크아웃에 들어간 뒤 1999년 오너 3형제가 물러나 해체 수순을 밟았다. || || [[동아그룹]] ||1945년 공산 최준문 창업주가 설립한 '충남토건사'를 모태로 했다. 모기업 [[동아건설]]을 비롯해 [[CJ대한통운|대한통운]], 동아생명, 동아증권, 동아TV 등을 계열사로 두었던 기업 집단이었으나 2001년에 해체되어 현재는 학교법인인 공산학원으로 남아서 연명하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와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가 동아그룹의 학교법인인 공산학원에서 설립한 학교들이다.[* 범 동아그룹으로 동아그룹 창업주 [[최준문]] 회장의 아들 중 한명이자 최원석 회장의 동생인 최원영 씨가 대표로 있던 예음그룹도 있었다. 최원영은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 주역 중 하나였으며, 예음그룹은 1989년 1월에 동아그룹에서 독립하였는데 이쪽은 월간 객석과 [[만화왕국]]을 발행하던 예음출판사로 유명하였고, [[국제언론문화사]], 예음파이낸스, 동아실업, 동아정공, 동아종합환경 같은 계열사, [[서울예술고등학교]], 예원학교, [[경원대학교]], [[경원전문대학]]을 산하에 두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때 계열사의 부채를 갚기 위해서 경원대학교나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거액의 등록금을 횡령하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그 후 경원대학교와 경원전문대학은 1998년에 [[이길여]]의 가천길재단에 인수되어 2007년에 한 대학으로 통합되었고, 경원대학교는 기존에 이길여가 설립하여서 소유하고 있던 [[가천의과대학교]]와 역시 가천길재단이 인수한 학교인 [[가천길대학]]이 통합되어 출범한 학교인 [[가천의과학대학교]]와 통합하여 [[가천대학교]]로 개편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지금의 가천대학교는 무려 4개의 대학이 통합하여 출범한 대학이다.] 한편 주축인 동아건설은 2008년부터 프라임그룹에 인수되었다가 2016년에 [[SM그룹]]으로 인수되어 현재도 건설업을 이어가고 있다. || || [[동양그룹]] ||[[오리온그룹]]과 로고를 같이 썼을 정도로 뿌리가 같았던 그룹이었다.[* 창업주 이양구 회장이 사망한 이후 큰 사위(현재현)가 동양그룹 회장이 되었고 작은 사위(담철곤)가 오리온그룹 회장이 되었다.] 2001년 동양제과 분가 후 중화학 및 금융업 분야에 주력하다가 2016년에 유동성 위기로 해체되었다. || || [[삼미그룹]] ||1954년 김두식(1925~1980) 창업주가 설립한 목재 가공업체 대일기업이 모태이며, 1960년 무역업체 삼미사를 세워 '삼미' 사명을 쓰기 시작한 뒤 1967년 삼양특수강을 인수했다. 1980년대 초반 부산 삼미유나백화점과 [[삼미 슈퍼스타즈]]를 운영해 잠깐 인지도가 있었으나 제2차 [[오일 쇼크|석유 파동]]의 여파로 경영이 악화되어 [[삼미 슈퍼스타즈]], [[삼일빌딩]], 삼미해운 등을 팔아 특수강 중심 기업집단으로 변모했으나, 외환위기를 앞둔 1997년에 2차 경영난이 왔고 결국 부도가 나서 해체되었다. || || [[삼환그룹]] ||1946년 우성 최종환 창업주가 세운 '삼환기업공사'를 모태로 했으며, 한동안 건설 관련업을 중심으로 사세를 조용히 확장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후 사세가 기울어져 2012년에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해체 수순을 밟았다가 [* 이 시기에 계열사였던 삼환까뮤가 매각된 이후 2015년 까뮤이앤씨로 사명을 변경했다.] 2018년 [[SM그룹]]이 인수하여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 || [[새한그룹]] ||1973년 [[이창희(기업인)|이창희]] 창업주가 설립한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를 모태로 했으며, 1991년 이창희 회장 사후 1995년에 제일합섬을 합쳐 2년 후 출범했던 범 삼성가 기업집단이다. 그러나 2세 경영자들의 무능 등 조직관리 문제로 2000년에 범 삼성가 그룹 중 유일하게 망해서 해체되었다. 이후 (주)새한(구 제일합섬)은 웅진을 거쳐 웅진케미칼로 바뀌었다가 제일합섬 설립 때부터 제휴 관계였던 일본의 도레이에 넘어가서 도레이케미칼이 되었고, 새한미디어는 [[GS|GS그룹]]의 방계 기업집단인 코스모그룹에 넘어갔다. || || [[신동방그룹]] ||1966년에 눌원 신덕균(1909~1999)이 설립한 신동방(구 동방유량)을 모체로 하여 '해표 식용유'로 알려져 있었으며, 1990년대 초반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 사돈기업으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타격을 맞고 1999년에 부도가 나서 해체되었다. 2004년에 모기업 신동방은 가공식품업체 '신동방CP'로 바뀌어 [[CJ그룹]]에 팔렸고, 신동방 식품사업 부문은 [[사조그룹]]이 신규법인 '신동방'을 설립하고 인수해 [[사조해표]]로 바뀌었다. 신동방의 흔적으로는 눌원문화재단이 있다.|| || 성원그룹 ||1977년 전윤수 창업주가 설립한 '태우종합개발'이 모태이며, 이듬해인 1978년에 '성원건설'로 사명을 변경하고 건설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99년에 부도를 맞다가 화의를 거쳐 2003년에 회생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주택 및 해외 건설사업이 부진해 2011년 법정관리를 거쳐 2014년에 파산해 사라졌다. || || [[성원토건|성원(晟原)토건그룹]][* [[성원건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한자도 다르다.] ||1985년 김성필 창업주가 설립한 '은아주택'이 모태이며, 이듬해 '성원토건'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경남 지역에서 아파트 사업에서 승승장구했다. 1995년 서울로 본사 이전 후 사업 확장을 거듭하며 1997년에는 서은상호신용금고 등 3개 신용금고들을 인수하고 시중은행 지분을 인수하는 등 금융사업에 손을 댔다가 외환위기 여파로 부도를 맞고 공중 분해되었다. || || 성우그룹 ||1969년 정순영 사장이 현대시멘트를 현대건설에서 분가시킨 게 그룹의 시초이다. 1975년에 현대종합금속, 1987년 서한정기, 1995년 성우종합레저 등을 각각 세워서 천천히 사세를 확장했으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건설업 경기가 악화되어 사세가 기울어져 2010년 들어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2011년에 현대성우리조트를 신안그룹에 넘기고 2016년 5월 성우종합건설이 [[SM그룹]]에 매각[* 현 SM중공업] 되면서 현대시멘트만 남고 해체되었다. 현대시멘트는 2017년 한일시멘트그룹에 인수되었다. || || [[신동아그룹]] ||IMF 외환위기와 [[옷로비 사건]]에 연루되어 1999년에 해체되었다. 주력 계열사였던 대한생명은 해체되 후 공적자금이 투입됐다가 2002년 [[한화그룹]]에 인수되어 [[한화생명]]으로 바뀌었다. 그 밖에도 [[63빌딩]] 운영사인 63시티(구 대생개발), 신동아화재(현 [[한화손해보험]]) 등도 한화그룹에 인수되었고, 현존하여 독자 생존 중인 과거 계열사로는 신동아건설과 사조동아원(구 동아제분) 등이 있으며 학교법인 신동아학원(구 영생학원, [[전주대학교]], [[전주비전대학교]], [[전주영생고등학교]], [[전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도 남아서 독자생존하고 있다.|| || [[신호그룹]] ||1979년 이순국 대표가 온양펄프를 독립시킨 게 시초이며, 주로 부실 제지업체들을 인수해 정상화시키면서 계열사를 22개로 늘렸다. 그러나 인수 과정에서 무리하게 차입한 데다가 외환위기까지 겹쳐 2002년 워크아웃 후 2006년 국일제지에 경영권이 넘어가 해체됨. || || [[쌍방울그룹]] ||1962년 이봉녕 창업주가 설립한 '삼남메리야스'를 모태로 했으며, 초기에는 의류업을 중심으로 하다 1980년대 중반 이의철 사장의 주도로 무역업, 리조트, 골프장, 전자 등에 이리저리 손을 뻗다가 1997년 부도나 해체됨. || || [[쌍용그룹]]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국내 10대 재벌 리스트에 꼬박꼬박 오르는 대기업이었으나, 김석원 회장대에 들어 자동차 산업 진출과 정계 진출이 패착이 되어 1997년 외환 위기 뒤 2000년대 들어 쌍용양회 등 일부 계열사만 남기고 사실상 공중 분해되었다. || || [[아남그룹]] ||1956년 우곡 김향수 창업주가 설립한 아남반도체를 모체로 한 전자특화 재벌이었다. 이후 사업 확장에 주력하다 1999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그룹이 해체됨.|| || [[우방그룹]] ||1978년 운촌 이순목 창업주가 설립한 '우방주택'을 모태로 하여 건설업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에 부도나 공중 분해되고[* 현재 옛 오너 가문이 건진 거라곤 학교법인 구미교육재단과 정화교육재단밖에 없다.] 여러 그룹사에 매각되어 떠돌다 2010년 [[SM그룹]]이 인수하여 계열사에 합병된 후 아파트 브랜드인 [[우방아이유쉘]]을 가지고 현재까지도 SM그룹의 주력 건설브랜드로 이어가고있다.[* SM그룹의 주력 아파트 브랜드는 2개로 경남기업의 [[경남아너스빌]]과 우방의 [[우방아이유쉘]]이 있다. 이 두 기업은 대구를 포함하여 대한민국 전국 수주를 받을 만큼 꽤 알아주는 대형 건설사였는데 13개 이상의 건설회사를 지닌 SM그룹이 2개의 브랜드는 살려 지금껏 유지해오는 이유가 있다.] || || 조양상선 ||1961년 박남규 창업주가 세운 조양상사를 모태로 하여 [[천일고속]], [[진주햄]], [[ABL생명|제일생명]]을 소유했던 기업집단이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제일생명을 1999년 독일 알리안츠에 매각하여 회생하려 했지만, 2001년에 파산했다.[* 그리고 제일생명은 알리안츠생명을 거쳐 중국 안방보험에 인수되어 현재 [[ABL생명]]으로 바뀌었다.] 그나마 천일고속 정도만 구 오너집안에서 지켜냈다.|| || [[진로그룹]] ||1924년에 우천 장학엽(1903~1985)이 설립한 진천양조상회를 모체로 했던 기업 집단으로, 1985년 창업주가 타계한 후 아들 장진호가 경영권을 장악했고, 이후 무리한 확장으로 1997년에 화의 신청을 했다가 2003년 최종부도가 나 결국 해체되었다. 진로는 하이트맥주에 인수되어 [[하이트진로]]로 바뀌었다. 구 진로그룹의 흔적으로는 우신중학교와 [[우신고등학교(서울)|우신고등학교]]가 있다. || || [[한보그룹]] ||1980년대 강남 개발[* 세무공무원 출신인 정태수 회장이 1973년에 구멍가게처럼 시작한 기업으로, 1976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통틀어 최대인 4,400가구 규모의 은마아파트를 건설 및 분양하여 강남 개발의 신호탄을 날리고 이후 강남 및 서초 지역에 자체브랜드인 미도아파트 분양 사업까지 성공하며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 재벌로 급성장하였다. 그만큼 정태수 회장이 은마아파트 부지에 대한 풍수지리적인 애착이 컸는지 부도 직전까지 한보그룹 본사를 은마아파트 상가 건물에 두고 있었다.]로 급성장한 재벌, 무리한 확장을 벌이다 결국 1997년 1월 부도 처리됐다.[* 사업성이 신중히 검토되어야 할 [[시베리아]] 유전개발 사업 및 철강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어 과도한 투자를 한 것이 결정적 화근이 되었다. 채권단이 경영권 포기 절차 등으로 제3자 인수로 회생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정태수 회장이 거부하면서 결국 극단적인 부도 처리로 귀결되었다. 부도 당시 부채규모가 '''당시 액수로 4조 2천억원'''씩이나 되었으나, 자기자본규모는 '''고작 900억원'''에 불과한 기형적인 재무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은행 차입을 통해 외형을 부풀리는 재벌들의 기존 관행과 더불어, 은행들 또한 대출 검토 시에 제대로 신용 조사조차 하지 않은 채 외형 및 실적 위주로 평가한 탓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보그룹의 주거래 은행인 [[SC제일은행|제일은행]]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아 결국 구조조정 후 해외로 매각되는 수순을 밟았으며, 더불어 한보그룹 부도사태는 1997년 김현철 스캔들과 [[1997년 외환 위기]]의 전주곡이 되었다.][[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33865|관련 기사]] || || [[한일그룹]] ||[[한일합섬]]이 모기업이었던 기업 집단으로, 이 기업은 [[전두환]]에게 잘 보인 덕분에 [[국제그룹]]이 해체될 때 대부분의 국제그룹 계열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1995년 부국증권, 한효개발, 경남모직 등 형제 기업들을 분가시키고 1996년 [[우성그룹]]도 인수했는데 이 기업을 한일그룹이 무리하게 인수하려다가 그만 부도가 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동서석유화학은 1998년 일본 [[아사히카세이]], 한일리조트는 2004년 [[동일건설]], 국제상사는 2006년 [[LS그룹]]에 각각 인수됐고, 한일합섬은 2007년 동양메이저에 인수합병됐다가 2016년 [[유진그룹]]에 인수되었다. 구 오너 집안은 김해한일여고와 [[한일여자고등학교(경남)|마산한일여고]] 2개교 규모의 학교법인(한효학원)만 지켜 현존하고 있다.[* 이 두개의 학교는 본래는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로 개교했으나 폐교되지 않고 잔존하여 일반계고나 특성화로 전환된 드문 케이스다. 같은 한효학원 산하로 대구와 수원에도 산업체 부설고등학교가 있었으나 대구에 있던 산업체 부설고등학교는 어찌된 영문인지 1995년에 폐교해서 부지를 매각해버리고, 수원에 계속 남아있던 한일전산여고는 2011년에 학교법인 한봄학원으로 분리되었고 2012년 8월 수원전산여고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일그룹의 자취가 사라졌다.] 어찌보면 신진그룹, 진로그룹과 비슷한 말로인듯... 그 외에 부산 강서구에 있는 [[경일고등학교(부산)|경일고등학교]]와도 관련이 있었다. || || [[해태그룹]] ||1945년 박병규 등 4명이 설립한 해태제과합명회사를 모태로 하여 1970년대까지 식품 관련 사업만 확장했으나, 1981년 박건배 회장 독자경영 후 전자, 중공업, 금속, 정보통신 등 비 식품관련 분야에까지 무리하게 확장하다 1997년 11월 부도 후 2000년에 전면 해체되었다. || || [anchor(C&그룹)]C&그룹 ||1990년에 항해사 출신인 임병석 창업주가 설립한 '칠산해운'이 모태이다. 1995년 '쎄븐마운틴'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2002년에 부실 건설업체 우방을 인수하고, 2005년 동남아해운을 인수하는 등 M&A를 적극 벌여 사세를 확장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계열사들[* 다만, C&그룹 산하 경제채널인 생활경제 TV는 [[제이제이미디어웍스]]에 인수되어 장르를 애니메이션 채널로 전환하여 [[애니플러스]]로 재개국하였다.]이 서서히 워크아웃을 받아 해체되었다. || || 제이유그룹 ||1999년 주수도 창업주가 설립한 다단계업체 '주코'가 모태이며, 2002년 'JU네트워크'로 사명 변경 후 JU개발, JU시설관리 등을 잇따라 세우거나 의정부 진로백화점 건물을 인수하는 등 사세 확장을 했다가 2006년 주수도 회장이 사기 혐의로 구속된 후 이듬해 해체 수순을 밟았다. || || [[STX|STX그룹]] ||2001년에 쌍용중공업 전무이던 강덕수가 자신이 몸담던 기업을 인수해 창업했다. 이후 2013년 5월,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를 시작으로 STX그룹의 계열사들은 줄줄이 나가떨어지며 해체되었다.[* STX팬오션은 [[하림]]이 STX건설은 [[SM그룹]]이 인수하는 등 한때 재계서열10위권을 자랑하던 STX는 그렇게 뿔뿔히 흩어져 나갔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