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만일치시기 (문단 편집) == 상세 ==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여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승전 대가로 [[타이완섬]], [[펑후현|펑후 제도]]와 [[랴오둥 반도]]를 합병한 후부터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그해 [[10월]] [[중국 국민당]] [[국민혁명군]]이 진주한 기간 사이에 해당하며, 따라서 대만은 50년 정도를 일제 치하에 있었다. 이에 따라 일본의 [[대만총독부]]가 구성되었다. 흥미롭게도 [[일제강점기|조선]]과 마찬가지로 무단 통치(특별통치주의) → 문화 통치(내지연장주의) → 황민화 테크를 비슷하게 밟았다. 독립운동가나 일제 불만 세력들이 일제에 맞서 저항했던 것도 비슷하다. 심지어 이들 사이에서 다시 좌우로 분열되어 서로 편가르고 싸운 것까지도(...). 청일전쟁 이후 들어온 일본군에 대한 대만인들의 저항은 상당히 컸다. 그러나 조선과 달리 대만인들의 저항은 대만의 독자적 민족의식에 의거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대만인들 입장에서는 그저 외부 지배세력이 서구([[네덜란드]]와 [[스페인]]) → [[동녕국]] → [[청나라]] → [[일본 제국]]으로 바뀐 것에 불과했다. [[1902년]] 이후로는 [[한족]]들 위주로 이루어졌던 무력 저항은 거의 자취를 감춘다.[* 다만 분명한 점은 식민지 시기가 반환 후의 시기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대만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야스쿠니 신사]]까지 참배하는 등 극단적인 친일 성향으로 논란이 되었던 [[리덩후이]] 전 [[총통]]조차 "과거 대만인이 일본의 '[[노예]]'로 전락했던 점을 [[대만인]]으로서 매우 비통하게 생각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조선과 달리 중국 본토는 남아있으니 일제 통치가 불만인 한족들은 본토에서 살아도 되었고[* 대만일치시기에 이런 식으로 '나는 [[염황]] 자손이요'하며 대륙으로 떠났다가 대만 반환 이후 귀향한 사람들을 '반산(半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중국 관내로 생활기반 다 버리고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당시 대만 역시 대륙과 같이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고, 중요 재산인 농토 다 버리고 관내로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1895년]] 대만을 식민지화하자마자 2년 안에 대만으로 대륙으로 이동할 자유를 대만인들에게 주었으나 이때 실제로 대만을 떠난 사람은 6,400여 명으로 당시 대만 인구의 2~3%에 불과했다. 다만 이 수치는 대륙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감안하지 않은 수치로 일본의 대만 점령 과정에서 대륙으로 도망친 20~30만 명까지 합치면 대만에서 대륙으로 이동한 대만인의 수는 당시 대만 인구의 10% 정도는 되었다.][* 나중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대만이 중국으로 반한된 이후 이들 반산은 대만으로 귀환했고, 대만 출신이라 대만을 잘 알면서 국민당 당국으로부터 '믿을 만한 사람들'로 인식되었기에 국민당 일당 통치 시절에 한 자리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만 원주민]]들은 저항하긴 했지만 구심점도 없었고 세력도 미약했다. 게다가 일본 본토에서 거리가 멀다보니 사실 조선만큼 좋든 싫든 뭔가가 일본과 빠르고 단단하게 엮이지도 않았다. 이는 대만인들이 일본보다 거리가 가까운 중국 대륙에 불만을 가지는 것과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1930년대에 이르러 점진적 동화 정책이 포기되고 일본이 야욕을 드러냄과 동시에 급진적 동화 정책으로 선회되는데, [[1935년]] 일본의 국정교과서는 조선인과 대만인을 일본인이라고 표기하는 등 이전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동화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동화 정책의 관점에서도 대만총독부와 조선총독부는 크게 상이했는데,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에 창씨개명을 강제했으나, 대만총독부는 대만인의 창씨개명에 허가제를 두어 무분별한 자발적 창씨개명을 통제했다. 그럼에도 통치 말기 황국신민화 정책은 철저히 실행되었고 일제의 주장에 의하면 일본어 보급률도 굉장히 높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4139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