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성당 (문단 편집) == 상세 ==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대성당은 [[주교]] 관구의 중심 교회로서 지역 [[교구]]를 관할하는 주교의 주교좌가 있고 [[미사]]/[[성찬예배]]를 주관한다. 주교제 교단인 [[성공회]]도 대성당(주교좌성당)을 둔다. 주교좌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주교좌성당'''(主敎座聖堂)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주교좌성당은 [[주교]]가 관할 사목하는 교구의 중심이며 관할 교회들의 모교회가 되는 셈이다. 한 예로 [[명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사목하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고, 교구장 [[주교]]의 의자가 위치한 성당이다. 중세기에 대성당이 되려면 [[성가대]]와 성가대 학교, 도서관, 교리학교 등이 있어야만 했다. 이후 이러한 부속기관들이 [[교구]] [[사립학교]] 혹은 신학교로 이전되고 성당 안에 주교좌만 남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주교좌성당은 대체로 그 [[교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교회이다. [[유럽]]의 경우, [[중세]]까지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상당기간 교회를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형성되어 왔다. 때문에 대성당을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발전하였고, 오랜 시간이 흘러 보니 대성당이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었다. 지역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부유한 경우가 많았지만 사회의 변화로 인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거주지 근처에 교적을 강제로 배정하는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산하 본당(성당)들에 비해 신자수가 매우 적고 노년층 위주인 경우도 많다. 주변 여건의 변화에도 주교좌성당이 옮기는 일은 거의 없다. 가톨릭, 동방정교회 등 보편교회에서 주교좌성당은 전쟁으로 아예 교구가 파괴된다던지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한 결코 쉽게 옮기지 않는다. 또한 가톨릭에서는 주교좌성당을 옮기려면 [[교황]]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 교구의 중심지이다 보니 공식적으로 일반 성당에 비해 격이 높지만, 반드시 크게 지을 필요는 없으나 자기 도시의 위세를 뽐내기 위해 그 시대나 지역 상황에서 가능한 한 최대한 거대하게 짓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교회에서 주교가 사목을 하면 주교의 권위가 고양되고 동시에 주교의 생활비와 선교비 등을 대성당에서 충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만 주교라고 할지라도 매 주마다 관할 성당들을 순방하느라 주교좌성당을 세세히 사목할 기회는 사실상 별로 없는 편이다.] 이름난 관광지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성당들은 대부분 주교좌성당들이다. 대성당 축성 기념일과 대성당에 지정된 [[수호성인]] 축일은 그 성당의 가장 큰 기념일에 속하며, 가능한 한 주교 서임식이나 [[성품성사|사제 및 부제 서품식]] 등은 주교좌성당에서 치르도록 한다.[* 다만 수품자 및 참석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주교좌성당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 같은 곳을 대관하여 [[성품성사|서품식]]을 치른다.] 여기 저기서 주워들은 얘기들을 섞다보니 영 엉뚱한 얘기들이 사실처럼 기술되곤 한다. 주교좌성당도 교구 내에 위치하는 만큼 교구장 관할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천주교에서는 교구장이 주교좌성당 관할사제는 아니다. 일단 [[천주교]]에서는 성공회에서와 같은 '관할사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명동성당]] 주임[[신부(종교)|신부]]는 따로 있고, [[명동성당]]이 속한 지역의 사목에 관한 한 [[명동성당]] 주임신부가 그 성당의 [[전례]]와 사목 활동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진다. 이는 마치 군대에서 [[사단장]]이 사단 본부근무대장이 아니고, 사단 본부근무대는 본근대장이 지휘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하면 크게 틀림이 없다.[* [[가톨릭/대한민국]] 문서의 7. 교구 항목의 설명처럼 대한민국 교구의 교구장 주교는 광역자치단체인 특별시/광역시 시장 또는 도의 지사급이므로 연대장보다는 사단장으로 비유가 적절하다.] 애당초 가톨릭이든 동방정교회든 교구의 모든 [[사제(성직자)|사제]]([[신부(종교)|신부]])의 [[7성사|성사]] 집전은 교리상 해당 개별교회의 수장인 [[주교]]로부터 위임받아 대행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교구 내 다른 성당에서 주임신부와 다른 신부들이 주교의 고유권한인 성사 집전을 대행하듯, 주교좌성당에서도 주임신부가 주교의 집전을 대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공회]]에서는 주교좌성당의 관할사제는 해당 교구 교구장이 명목상 겸임한다. 명목상의 겸임이므로, 교구장 주교의 주교좌성당 관할사제 업무는 주임사제가 대리한다. 한편 우리나라에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천주교 전래 초기 박해]]와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로도, 오랜 동안 천주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회의 주류로 들어가지 못했다. [[한국 천주교]]를 상징한다는 [[명동성당]]이 위치한 명동(당시 명례방)은 [[조선]]시대 한성의 가장 도심도 아니었고, 본격적으로 상권이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기]]이며, [[한국 천주교]] 최초의 희생자인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 있던 곳이다. [[천주교]] 전래 초기 신앙생활을 하였음을 기념하기 위해 그곳을 택했을 뿐, 주교의 비용 충당에 유리한 것도 아니다. 관광지로도 유명한 [[전주시]]의 [[전동성당]]은 1957년 [[천주교 전주교구]] 주교좌성당 지위를 중앙성당으로 넘겨주었지만, [[전북]]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성당으로 남문 바로 옆에 있다. 전동성당은 [[신해박해]]로 우리나라의 첫 순교자가 된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순교했던 자리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전동성당의 자리가 된 것이다. 대다수의 일반 신자들은 갈 일이 없는 곳이다. 한국 천주교의 경우 주교좌성당 근처에 살지 않는 한 교적이 주거지 근처로 강제 배정되며, 주거지와 가장 가까운 성당에 다닌다고 해도 더 가까운 곳에 새로 성당이 생기면 그쪽으로 재배치하기 때문이다. [[혼인성사|혼인 미사]]나 [[죽은 이를 위한 미사#장례 미사|장례 미사]] 등 큰 일이 아니면 주교좌성당에 갈 일이 없는데, 일반적인 성당에는 장례 시설이 없는 데다, 혼인 미사 정도는 일반 성당에서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전례나 행사 스케줄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자신이 다니는 성당과 가장 가까운 주교좌성당으로 가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