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성산성 (문단 편집) == 개요 == > "홍준아, [[평양]]에 가면 대성산성도 가 보겠지?" > >"물론이지. 하지만 성벽은 다 무너지고 남문(南門)도 근래에 복원한 것이니 뭐 그리 볼 게 있을라고." > >"그러니까 잘 보고 오라는 거야. 우리가 평양 하면 [[대동강]]변의 [[평양성]]을 먼저 떠올리지만, '''정작 [[고구려]] 사람들이 [[국내성]] 에서 처음 남하(南下)해 자리잡은 곳은 대성산 자락이고, 거기서 무려 150년을 보냈거든.''' 평양성에서 지낸 기간보다 '''두 배'''나 더 긴 거지." >---- >[[유홍준]], 《나의 북한문화유산 답사기》 제1권, 중앙M&B, 1998년, 76쪽.[* 위의 만담은 유홍준이 평양으로 떠나기 이틀 전에 역사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축하차 찾아와서 나눈 이야기.][* 실제로 제20대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것은 서기 427년, 지금의 평양성의 전신인 [[장안성]]을 축조하기 시작한 시점은 제24대 양원양 재위 중인 552년이고, 실제 옮겨간 것은 제25대 평원왕 재위 중인 586년이며, 장안성이 완성된 것은 594년이었다. 즉, 장수왕의 천도 후 [[안학궁]] • 대성산성은 427~586년으로 159년, [[장안성]]은 586~668년으로 82년이다.] 고구려 왕조의 세번째 수도이자 세번째 이중수도이다. 대성산성은 산성 수도였으며, 짝으로 평지성 수도인 [[안학궁]]이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