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신문화아파트 (문단 편집) == 의의 == 이전까지만 해도 5층 미만 규모에 공동화장실과 공동수도를 사용하던 연립주택 수준의 시민아파트가 아파트의 주종을 차지하던 부산에서 '''시민의 주거문화 개선'''을 위해 처음으로 시범적으로 시도되었던 고급아파트이자[* 1970년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시민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면서 부산시에서도 이를 타개하기 위한 시범적인 아파트의 필요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부산의 시민아파트도 서울의 시민아파트 만큼은 아니었으나 날림공사로 축대가 무너지거나 금이 가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0061600099207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0-06-16&officeId=00009&pageNo=7&printNo=1311&publishType=00020|#]]], 부산에서 처음으로 10층을 돌파한 아파트다. 1층과 지하 1층은 상업공간이며 2층부터 10층까지는 주거공간인 주상복합 형태로 부산데파트에 이은 부산에서 두번째 주상복합 아파트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당시로서는 찾아보기 힘든 엘리베이터를 부산지역 아파트 최초로 3개나 설치하였으며[* 부산에서 세번째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아파트이자 단지형 아파트에서는 부산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1978년에 입주한 남천 삼익타워아파트의 경우는 각 층의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서는 형태이며 그 마저도 격층 간격으로 되어있지만, 대신문화아파트의 경우는 요즘 아파트 처럼 엘리베이터가 각 층마다 서는 형태이다.] 중앙집중 스팀난방[* 이후 개별난방으로 개량되었다.]과 냉온수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욕실과 좌변기를 사용한 수세식 화장실, 싱크대를 갖춘 입식 부엌 등등 당시 기준으로는 최신 기술을 아낌없이 도입하였으며[* 1971년 당시 이정도 설비는 부산에서는 특급호텔인 극동호텔 정도는 되어야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고급 아파트답게 내장재도 호텔 수준의 고급 내장재를 사용는 등 좀 더 현대식에 가까운 주상복합 아파트라고 할 수 있다. 비록 1동 규모에 불과한 데다가 대신문화아파트 이후로는 부산시건설본부에서 한동안 고급아파트를 다시 시도하지 않았고 이전의 시민아파트와 비슷한 개념의 시영아파트로 회귀하였으며 부산에서 고급아파트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1970년대 중반 민간건설사인 삼익주택의 진출까지 한동안 기다려야 했지만 부산에서 처음으로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아파트이자 현대적인 주상복합 아파트의 기준을 부산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아파트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