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정봉환 (문단 편집) === 대정봉환의 성립 === 요시노부는 [[토사 번]]의 건의를 받아, 10월 13일 [[교토]] [[니조 성]]에 상경하여 있던 각 번의 대표인 40명의 중신을 소집하고 대정봉환을 자문했다. 이윽고 10월 14일(11월 9일)에 "대정봉환 상서"를 조정에 제출하고 상표의 수리를 강력히 촉구했다. 조정의 상층부는 이에 당황했으나 [[사쓰마 번]]과 [[토사 번]]의 강한 압력이 작용한 다음 15일에 개최된 조의에서 칙허로 결정하였다. 이에 요시노부가 대정봉환 칙허의 지시서를 하사 받아, 대정 봉환이 이루어졌다. 막부로써 대정봉환은 토막파의 기선을 제압하며 명목을 빼앗는 의도가 있었지만 상소에는 [[사쓰마]] 번 등의 최대 관심사인 장군직 사임에는 일절 언급하지 않아, 요시노부는 막부의 우두머리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았다. 이에 격분한 [[사쓰마]] 번, [[초슈]] 번이 대규모 군사 동원을 시작하자 이를 제지하고자 10월 24일에 [[정이대장군]] 사직도 조정에 신청한다. 막부는 조정이 정권을 운영할 능력과 체제가 없기 때문에, 일단 형식적으로 정권을 반납하여도 여전히 조정이나 웅번을 압도하는 세력을 가진 [[도쿠가와]] 가문이 [[천황]] 아래의 새 정부에 참여하면,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런 예상에 발맞추어 조정에서는 국사 결정을 위한 제후 회의 소집 및 긴급 정무 처리를 계속 요시노부에 위임하였다. 즉 실질적으로 요시노부에 의한 정권 장악이 계속됐다. 실제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통치권을 회복한 조정은 외교 업무에 대해서도 전혀 대책이 없었다. 10월 23일, 외교에 대해서는 계속 막부가 중심이 되어 업무 진행해도 좋다는 인정 통지가 내려졌다. 이러한 사태의 추이 속에서 [[사쓰마]], [[초슈]]의 분노는 확대되었고 더 나아가 대표적인 막부 측 번인 [[아이즈 번]], 쿠와나 번, [[키슈]] 번 등은 대정봉환이 사쓰마, 토사 번의 모략에 의한 것이라는 반발이 확산되면서 대정봉환을 취소하라는 시위가 일어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