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종(고려) (문단 편집) == 생애 == 고려사에는 태조의 아들들 중 7번째로 등장하나 정확히 몇 번째 아들인지는 알 수 없다.[* [[고려사]]의 왕후 열전은 혼인 순서가 늦어도 신분이 높으면 우선적으로 기록하였으며, 자녀들도 생모의 순서에 따라 기록되었다. 따라서 등장 순서가 곧 혼인 순서나 출생 순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충렬왕]] 이후 [[원나라]] 출신 여인들이 혼인 순서가 늦어도 고려사에 먼저 등장하고, 충렬왕의 장남으로 [[왕자(고려)#충렬왕의 왕자|강양공]]이 아닌 충선왕으로 기재된 것이 그 예이다.] 확실한 것은 [[문원대왕]]보다 어리다. [[혜종(고려)|혜종]], [[정종(고려 3대)|정종]], [[광종(고려)|광종]],[* 누이 대목왕후와 혼인했기 때문에 처남이기도 하다.] [[안종(고려)|안종]], 아내 [[선의태후|선의왕후]]와는 이복남매, [[대목왕후]]와는 친남매이다.[* 대종과 대목왕후 자녀들의 나이차를 감안하면 대종이 대목왕후의 남동생일 확률이 높다.] [[현종(고려)|현종]]의 큰아버지인 동시에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이복남매]]'''인 [[선의태후|선의왕후]] 류씨와의 사이에서 효덕태자(孝德太子), 고려 제6대 대왕 '''[[성종(고려)|성종]]''', 경장태자(敬章太子), '''[[헌애왕후]]'''(천추태후), '''[[헌정왕후]]'''(효숙왕태후)를 두었다. 광종이 한창 [[호족(한국사)|호족]] 세력을 [[숙청]]하고 심지어 자기 자식인 [[경종(고려)|태자]]를 의심할 정도로 측근들을 쳐내던 시기인 969년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고려사에선 단순히 “죽었다(졸하였다).”라고 나온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종 역시 광종의 숙청 과정 속에서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다만 광종이 숙청을 아무리 심하게 했어도 부인의 형제이자 사돈이기도 한 대종까지 숙청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견해도 있다. 대종이 숙청당했다면 대종의 아들인 성종도 같이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성종은 이후 오히려 광종의 사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종의 누이가 광종의 아내이기도 하다. 대종의 아내인 선의왕후도 일찍 죽었기 때문에 성종을 비롯한 대종의 자식들은 할머니인 [[신정왕태후|신정왕후]] 손에서 자라게 된다. 후에 성종은 광종의 딸과 혼인해 광종의 사위가 되고 성종의 두 딸 역시 광종의 아들인 경종과 혼인해 경종의 비가 된다. 광종의 자녀들이 전부 대종의 누이인 대목왕후의 소생이므로 대종과 대목왕후는 친남매이면서 겹사돈을 맺은 관계가 된다. 성종이 즉위한 후 왕으로 추존되었다. 묘호는 대종(戴宗), 시호는 [[고려사절요]]에는 현헌공신화간예성선경대왕(顯獻恭愼和簡睿聖宣慶大王)이며 고려사 종실 열전에는 ‘[[대왕]]’이 ‘[[태왕#s-1]](太王)’으로 기록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