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출산율 (문단 편집) === 1990년대~2000년대 === 1990년 이후 [[에코붐|산아제한정책이 이전보다 다소 완화되어서]]으로 둘째 혹은 셋째를 가지는 가정이 잠시 늘어났으며 인구증가율도 다시 1%를 넘어서기도 하였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약빨이 떨어졌고 [[IMF 외환위기]]와 취업연령의 상승 등으로 출산율이 조금씩 감소하기는 했으나 이때까지는 그래도 출산율 1.4명 이상과 출생아 수 60만 명대 초반대 이상을 유지했다. 출산율 1.3명 미만의 초저출산 사회로 진입한 것은 2002년 이후이므로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저출산까지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1991년~1998년생의 인구수는 1983년~1990년생보다도 많다. 그래서 이 시절까지만 해도 저출산 담론은 일부 학자들을 제외하면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주제는 아니었다. 과거에도 [[불임]], 난임 부부가 있었지만 쉬쉬하거나 자녀가 없는 것을 두고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는 주변의 편견에 스스로 침묵했지만, 2000년 이후 [[권위주의]]가 점차 사라지고, [[PC]]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개인주의]]가 등장하면서 일부 기혼자들은 불임, 난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거나 공개하는 일이 급증하였다. 각종 환경 오염과 [[환경호르몬]], 사회 진출 연령대의 상승, 만혼 현상 증가, 이혼율 증가 등으로 자연스럽게 저출산이 심화되었다. 과거와는 달리 불임, 난임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었고, [[개인주의]] 문화가 증가하면서 불임, 난임에 대한 편견도 자연스럽게, 저절로 희석되어 사라졌다. ||[[파일:GYH2013082600090004400_P2_59_20130826151103.jpg|width=100%]]|| || 2000년대 평균 출산율과 출생아 수를 나타낸 통계 || 2000년에는 [[밀레니엄 베이비]]라고 해서 전년대비 출산율이 소폭 늘었으나(1.48명 / 64만 명), 이듬해인 2001년에는 신생아수 60만 명선이 붕괴되었고, 2002년에는 1년만에 50만 명선도 붕괴되면서[* 49만 명] 2002년부터는 초저출산 기준에 해당하는 출산율 1.3명 미만(1.18명)을 기록해 대한민국에서 초저출산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03년에는 전년도에 열린 [[2002년 한일월드컵|월드컵]]의 영향으로 베이비 붐 현상이 일어나 출산율이 소폭 상승했지만 출생아 수는 전년대비 하락했다.] 이후 점점 감소하다가 2005년에는 당시 최저 출산율인 1.09를 기록했고, 2006년에는 1.13으로의 재증가를 거쳐 [[황금돼지해]][* 돈을 상징하는 '황금'과 '돼지'가 만나 이 해에 출산하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속설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정작 중국에서는 [[중국/인구]] 문서에서 보듯이 출생아 수에 전혀 특이한 점이 없다. 한국에서 '2006년 쌍춘년'과 세트로 만들어진 거짓말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라는 속설이 퍼지던 [[2007년 출산 붐]]으로 출산율 1.26명, 출생아 49만 7천명까지 반짝 치솟았다가[* 출산붐이라고 평가되지만 출생아 수는 초저출산이 시작된 2002년생 보다도 아래이다.] 약발이 빠진 2008년에[* 황금쥐띠해로 2008년생도 1.19명, 46만 6천명으로 2005년생의 43만 9천명이나 2006년생의 45만 2천명보다는 꽤 많았다.] 1.19명, 2009년에는 1.15명으로 다시 주저앉았다. 따라서 초저출산이 시작된 2002년부터 2009년까지는 출생아 수가 50만 미만선에서 등락을 반복하였고, 출산율 역시 1.3명 미만인 1.1~1.2명대를 왔다갔다 하는것을 볼 수 있다. 2000년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불임, 난임과 관계 없이 [[딩크족|개인의 선택으로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도 등장했다. 불임, 난임이 아닌데도 자녀양육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희생하기 싫어하거나, 사회생활 문제에 대한 고려, 자녀 양육비와 교육 문제, 양육환경과 인프라 등에 부담감을 느끼거나 등 다양한 이유로 출산을 거부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의 출산율에 한가지 고려사항이 있다면, 1980~1990년대까지 여성 출산인구가 대부분 20대였지만[* 출산 평균연령이 30세를 돌파한 것은 2005년이다.] 이후 출산연령이 올라가면서 20대 때는 출산을 안하다가 30대가 되어서야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이러한 과도기적인 시기의 20대들로 인해 출산율이 줄어들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다만 이후에도 출산율이 크게 오르지는 않은만큼 주요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때까지는 엄마 기준 첫 아이를 만 20대에 얻은 경우는 많았다. 이 시기부터는 일본의 저출산·고령화를 언급하며 우리도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라는 시사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사설, 기고문 등이 올라오기 시작했으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크게 신경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직은 연 4~5%대의 고성장이 이어지던 시기라 저성장에 대한 경각심이 크지 않았으며, 당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었던 시기라 저출산이 설사 닥쳐오더라도 통일을 통해 해결하거나 반전의 계기가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분위기도 팽배해있었기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