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출산율 (문단 편집) === 1970년대~1980년대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1980년대의 저출산 경향)] 1970년 [[통계청]]의 인구동향 조사가 시작되며 출산과 관련한 정확하고 공신력 있는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1971년까지는 출산율 4.5 내외와 100만 명대 출생아 수를 유지했으며 1974년까지는 출산율 4.0 내외와 출생아 수 90만 명 이상을 유지했으나, 1970년대 중후반 들어 산아제한 정책이 [[오일쇼크]]와 겹쳐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면서 출산율이 2명대로 빠른 속도로 진입했다. 1970년대 초반생은 형제가 4~5명이 많으나 1970년대 중반생(1976~1978년생)은 2~3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출생아 수도 이후의 1979년~1982년생보다 낮은 80만 명 내외까지 줄어들었다. 물론 그 이전의 출산율이 높다 보니 형제 수가 많은 경우도 제법 있었기는 했다.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졌으나 산모수가 많아 출생아가 많던 시기였다. 그러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베이비붐 세대의 가임기가 되어 출생아 수가 계속 80만 중후반대를 넘어서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 초만원'''이라는 캠페인으로 대변되는 산아제한 정책이 대폭 강화[* 여담이지만 정부에서 '''하나만 낳자'''고 매우 강력히 산아제한을 했던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전세계에서 딱 두 나라였는데 하나는 [[대한민국]]이고 다른 하나는 [[계획생육정책]]을 실시한 [[중국]].]되었다. 그리고, 1983년에는 출생아 수 80만 명이 다시 붕괴되었고, 1987년까지 출생아수가 62만명까지 줄고, 출산율이 1.5명대로 진입하였고, 1990년 인구 증가율이 0.99%로 1% 아래로 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