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성공회 (문단 편집) == 타 교파와의 교류 ==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함께 [[교회일치운동]]에 가장 적극적인 교단으로, 다양성을 중시하다 보니 다른 주류 개신교 교단들은 물론 천주교와 정교회와도 적극 교류하며, 타 교단에 대해서 정말 웬만해서는 이단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천주교든 정교회든 다른 개신교든 타 교파에서 성공회로 옮길 때, 해당 기성 기독교 종파에서 [[세례]] 받은 것을 다 인정해준다.[* [[장로회]], [[감리회]] 등 [[세례명]]이 없는 개신교 교단 출신이 성공회에서 타 교파 영접식이나 [[견진성사]]를 받을 때 [[세례명]]을 설정할 수 있다.] 반면 그래서 [[이단]]에 대해서 취약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요즘 이단들은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새로 생긴 이단에 대한 대처가 늦을 수 있는 문제는 있을 수는 있다.] 2020년 의장주교의 새해 사목교서에는 최근 일부 교회가 이단에게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단을 경계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언젠가 강남교회에는 '강남교회 담임목사 귀하' 운운하는 편지가 온 일이 있었는데, 이 편지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에서 보낸 것으로, 한기총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강남교회는 물론이고 많은 성공회 교회에 보내진 것으로 보여진다.]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총연합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만 가맹되어 있다. 이는 신천지의 한국 기독교 지형에 대한 무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KNCC 유관 기관인 CBS와 한기총을 엮어서 비난하는 것부터가 무식하다고 밖에...]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과 활발히 교류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경동교회[* 한국 교회일치운동의 산실이자 기장교단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첫 여성 사제인 김기리 미리암 사제가 성공회로 옮기기 전 다니던 교회라는 인연도 있다. 2019년 현재까지도 매년 1번씩 교환예배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성공회 신자 중에는 경동교회 출신들도 있고 반대로 경동교회 신자들 중에도 서울주교좌성당 출신들이 꽤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새문안교회]][* [[영락교회]]와 더불어 예장통합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이고, 또한 한국 [[장로회]] 역사에서 매우 비중이 큰 교회이기도 하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교회]][* [[인천]]의 [[내리교회]]와 함께 한국 감리회에서 역사상 비중이 큰 교회로 꼽힌다.] 등과 교환예배를 하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Va6t7mexdg|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경동교회 교환예배]] 또한 매년 연초에 있는 교회일치 기도회[* [[천주교]], [[정교회]], [[성공회]], 기타 [[개신교]] 연합]도 주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서울주교좌성당]]에서 개최된다. 단 2010년대 들어서 매년 여러 교회를 돌아가면서 개최된다. [[천주교]]나 [[정교회]]와도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성공회는 천주교나 정교회도 같은 믿음의 형제로 보기 때문에 이들과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정교회와의 교류는 꾸준했다. [[6.25 전쟁]] 중에 서울 성당이 파손당한 정교회 신자들이 새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지하 예배당을 빌려 [[성찬예배]]를 드리기도 했었다.[* 사실 그 당시가 지금보다 더 사이가 좋았다. 그 때는 [[성공회]] 여성 사제 서품이 이뤄지기 전이라서 세계적으로도 성공회와 [[정교회]] 간 사이가 상당히 좋았다. 또한 대한성공회는 지금과는 달리 고교회파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었다.] 물론 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서는 건 대한성공회만의 특징이 아니라, 세계성공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세계성공회는 '본질적인 것에 일치됨, 비본질적인 것에 다양함'이라는 입장으로, 다른 종파와의 우애·관용·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성공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갈래의 신앙 태도(churchmanship)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으로 공존하고 있다.] 19세기 이래 [[천주교]]과 일치를 위한 대화가 끊긴 적이 없으며, [[정교회]]와의 교류도 꾸준했다. 위트레흐트 연합(Union of Utretch)에 속한 [[복고 가톨릭교회]], 필리핀 독립교회(Philippine Independent Church), 토마 시리아 교회(Malankara Mar Thoma Syrian Church)와는 완전한 상통·성사 교류[* '서로의 주교가 상대 교단의 서품식에서 서로 안수하며 서로의 성직자를 교환하여 파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교단 신자들은 상대방 교단의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해진다.]를 이루어냈다.[[http://www.anglicancommunion.org/relationships/churches-in-communion.aspx|#]] 영국 성공회의 중심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행해지는 강론에서도 [[마더 테레사]] 수녀나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천주교 성인과 개신교 목회자들이 나란히 신앙의 모범으로 언급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쓰는 것 또한 가능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틴 루터 킹, 존 웨슬리, 오스카 로메로 등의 세례명을 쓴다. 또한 영국 성공회가 현재 관리하고 있는 ([[헨리 8세]]가 해산시키기 이전의) 옛 [[수도원]] 건물들에서 정기적인 천주교 미사를 드리는 것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설립자도 영국 성공회 신부였다. 최근 들어 [[보편교회]] 교단들과의 교류가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여성 사제 허용 문제와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제일 큰 갈등 원인이 되고 있다. 성공회가 여성의 사제 서품을 허용함으로 인해서, 성공회의 [[사도전승]]을 인정하려 고려했던 [[정교회]]가 그 결정을 보류했다.[* 한때 [[정교회]]에서 [[성공회]]를 자신과 같은 [[보편교회]]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성공회가 [[여성]]에게도 사제 서품을 주기로 결정하면서 결국 보류되었다. 정교회는 천주교에서도 인정하는 보편교회로, 만약 계획대로 정교회에서 성공회를 보편교회로 인정했다면 성공회는 보편교회로서 입지가 매우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성공회의 장자 관구인 영국성공회는 정교회가 여성 사제 서품에 절대 반대하고,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준다면 보편교회로 인정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강행했고,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이탈했는데 심지어는 일부 주교들까지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전 서술에서는 정교회가 성공회의 사도전승 인정을 철회하였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교류의 중단이지 사도전승의 철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 예루살렘, 그리스, 불가리아 정교회는 이미 1920년대에 성공회의 사도전승을 인정하였고, 이는 지금도 유효하게 인정되고 있다.] 여성 사제 서품은 [[보편교회]]에서 매우 강경하게 반대하는 문제로 이 당시 정교회 주교들이 성공회의 이런 결정에 매우 격노했다고 한다. [[천주교]]도 성공회의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 정교회와 비슷한 입장이다.[* [[복고 가톨릭교회]]도 여성 서품으로 더 이상 천주교가 아니라는 비판을 들었다.][* 천주교와 정교회의 여성 성직자 반대는 21세기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의 가치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안팎으로부터 꾸준히 받는다. 해당 교단 내 진보파에서 여성의 사제 서품 허용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사제 서품의 문제는 여성인권과 양성평등의 가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전통과 사도전승 문제등 신학적인 문제도 얽혀져있다. 사도전승은 12사도들과 그 후계자인 주교들로부터 물리적 안수를 통하여 전승되는데, 12사도들과 그 후계자들 중 여성은 없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역대 주교들이 여성을 사제로 임명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사도전승에 오류가 생기거나 심하면 단절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보편교회들이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다.--그 12사도들이 전부 원래 유대교신자였던 유대인인건 넘어가자.--]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는 여성 성직자 서품에 대한 논쟁 만큼이나 복잡한 문제이다.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광교회파 행보로 인해 [[보편교회]]들과 보수적 [[개신교]] 교단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이고, 성공회 내부에서도 분란이 크게 일어났다. 세계성공회공동체에서는 아프리카와 남미 등 보수적인 관구들이 주도해서 [[동성결혼]]을 교회법적으로 인정한 미국과 캐나다 관구에게 3년간 관구 자격을 정지시키기도 했다.[* 이전 버전에서는 동성애자 사제 인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동성결혼 인정 문제가 가장 주된 이유였다. 동성결혼의 교회법적 인정에 반대하는 영국성공회도 정결 서약을 한 동성애자에 한정하여 제한적으로 성소수자 신부 서품을 인정한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http://christian.nocutnews.co.kr/show.asp?idx=1653041|천주교 신부가 성공회로 회심해 사목하는 사례가 있다.]] [[한국]]에도 구균하(요나로렌스/[[부산교구]]), 황인찬(베네딕트/[[원주교구]]), 최석진(요셉/[[의정부교구]]), 정지원(데오필로/의정부교구) 신부 등 천주교 신부였다가 교리나 결혼을 이유로 회심하여 성공회 신부가 된 사람이 있다. 반대로 한국에도 성공회에서 천주교로 옮기는 경우가 있다. 한국전쟁 직전 윤달용(모이서) 신부가 천주교로 교단을 옮길 뜻을 밝히고 이를 준비 중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희생되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제2대 교구장을 역임한 노대영(리처드 럿트) [[주교]]는 영국으로 귀국한 후 천주교로 개종하고 천주교 신부로 재서품을 받았다. 또한 몇 년 전에는 대한성공회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재학 중인 신학생 전도사 한 명이 천주교로 개종하고 [[전통 가톨릭]] 단체인 [[성 비오 10세회]]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외국에는 성공회 사제가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천주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있다. 이런 경우 천주교에서는 천주교로 개종한 성공회 성직자는 재서품[* 천주교에서는 성공회 사도전승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을 받는다. 단, 성공회에서 주교였지만 기혼자인 사람은 주교로 재서품받지는 못하고 신부로 재서품받는다. 천주교에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당시 성공회 출신 천주교 성직자를 위한 성직자치단 설립을 인가한 바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