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제국 (문단 편집) == 조선과 대한제국의 연속성 == 대한제국 시대에는 공문서는 물론 모든 신문·잡지를 비롯한 모든 사적인 출판물조차 국호를 엄격히 지켜 '대한국', '대한', '한국'으로 사용하였다. 황제가 바꾸어 공포한 새 국호를 무시하고 예전의 국호를 고집하는 것 자체가 불충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니 당연하다. 일본도 대한제국을 공문서 등에서 경술국치 전까지 '조선'이라고 칭하는 경우는 없었으며([[남한대토벌작전]] 등), 한일병합조약문에서까지 '한국'이라는 국호는 유지되었다. 따라서 대한제국과 조선의 실체가 동일하다고 하여 대한제국 시대를 다룬 미디어에서 대한제국을 함부로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 역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 제국은, 황제국이었던 대한제국에 대한 격하 작업을 통해 대한 및 한국이라는 용어를 금지하는 한편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대해 전 국호인 조선으로 통칭하는 등 대한제국이 잊혀지도록 철저히 작업하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210428#home|#]] 이 때문인지 대한제국을 구한이라고 부르면서도 조선시대가 언제까지냐는 물음에 1910년 경술국치 이전까지라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로 오랫동안 대중들은 조선과 대한제국을 구분하지 않고 바라봤고, 한국사 교과과정 때만 자세히 접할 뿐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학계와 언론에서의 대한제국 재조명과 〈[[미스터 션샤인]]〉 등의 대한제국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 등이 방영되면서 대중들에게 크게 인식된 편이다. 조선과 대한제국은 [[역성혁명]]이 아닌 원래 있던 왕조의 국명만 바뀌었고, 군주의 호칭이 황제로 바뀐 것과 그에 맞게 묘호·존호·관제 등이 바뀐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것이 단절 없이 그대로 계승된 점 등을 연속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 때에도 왕실에 관련된 몇 것을 제외하면 과거제도의 효력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것들이 그대로 이어졌다. 궁예의 [[태봉]]의 경우 '고려'나 '마진'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한 나라로 취급하며, 심지어 조선마저 극 초창기(1392년 ~ 1393년)에는 이전 왕조의 국호인 '고려'를 그대로 유지하였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 시기만을 따로 떼어 내어 이때의 조선을 '고려'라고 부르거나 조선의 건국 연도를 1392년이 아닌 1393년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구려는 [[장수왕]] 때 국호를 '고려'로 바꿨으며 이의 사용 기간 역시 '대한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어 후기에 이르러서는 대내외적으로 '고려'라는 호칭이 널리 보편화되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단지 국호 변경만을 이유로 '[[고구려]]'의 멸망 시기를 장수왕 때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구려'로 불리든 '고려'로 불리든 700년 역사 전체를 고구려의 것으로 보고 있지. 백제도 '십제'나 '[[남부여]]'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고, 신라 또한 '[[사로국]]' · '서라벌' · '[[계림]]' 등 다양한 국호를 사용하다가 [[지증왕]]의 통치기인 503년에 이르러서야 '신라'로 국호를 통일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냥 전체 역사를 통칭해서 '[[백제]]'나 '[[신라]]'로 부른다. 이름만 바꾸었을 뿐 왕조 교체 없이 국체가 조선에서 물 흐르듯 그대로 이어진 대한제국을 '조선'으로 부르는 게 아주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조선과 대한제국을 칼로 무 베듯 생판 별개로 취급하여 조선이 1897년에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되레 이상하다고 할수도 있다. 한 예로 1900년 10월 14일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선원전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 안에 있던 어진들이 소실되자 '[[정묘호란|정묘년]]과 [[병자호란|병자년]]의 오랑캐 난리말고는 이처럼 큰 재앙이 없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3710022_001|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매우 비통해한 고종은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에도 불구하고 사비(= 내탕전(內帑錢))까지 털어 가며 선원전 복원 및 어진 모사 작업을 추진했으며, 모사를 위해 함경남도 준원전의 태조 어진을 한양으로 옮길 때에도 대규모의 화려한 행렬을 꾸렸을 만큼 극진한 예를 갖추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고종이 이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는 조선과 대한제국이 '''동일한 국체(國體)'''이기 때문이다.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7/12/815486/|관련 기사]]) 이 외에 대한제국 시대에도(심지어 일제 강점기에도) 황실에서는 태조 이성계의 생일을 꼬박꼬박 챙겼으며, 순종 역시 즉위 조서에서 ''[[http://sillok.history.go.kr/id/kzb_10008027_001|우리나라의 터전을 열어준 분은 태조 고황제]]'라고 똑똑히 명시해 놓았다. 대한제국이 조선에서 그대로 이어져 온 나라라는 사실은 대한제국 스스로 '500년간' 전래되어 왔음을 밝힌 대한국 국제 제2조로도 확인 가능하며, 대한제국 수립 이후의 《고종실록》과 《순종실록》에도 '500년 종묘 사직'라는 문구가 다수 등장한다. 조선시대에 역적으로 몰린 신하들을 대한제국 시대에 대거 신원한 것도,[* 이것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삭탈된 자에 대한 신원 행위는 같은 왕조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전 왕조의 것은 그 왕조가 망하면서 의미가 없어지는 만큼... 물론 [[정몽주]]와 같이 특이 케이스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1908년 [[이완용]]이 건의하고 [[순종(대한제국)|순종 ]]이 명을 내려 신원된 대표적인 신하로 [[이징옥]], [[윤원형]], [[정인홍]], [[윤휴]], [[조태구]], [[김일경]], 정후겸, 김익순 등이 있다. 다들 조선시대에는 그 언급조차 조심히 해야 했던 인물들.] [[박지원(실학자)|박지원]]과 [[정약용]] 등 조선시대의 명신들을 대한제국 시대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린 것도 조선과 대한제국은 동일한 국체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대한제국 수립 후 일반적인 [[추존]] 대상인 고종의 4대조뿐 아니라 한참 옛날의 인물인 조선 왕조의 개창자 태조 이성계까지 그 범위에 포함시켜 '[[태조 고황제]]'로 추존했다.[* 4대조 추존이 고종의 '조상'들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다면, 이성계 추존은 고종이 속한 '왕조'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추존이지만 그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