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항공/역사 (문단 편집) == 1970 ~ 1980년대, [[보잉 747]] 도입 및 노선 확장 == [[1972년]] [[10월 18일]], [[보잉 747]] 도입을 확정하고 [[1973년]] [[5월 2일]] [[보잉 747-200|B747-2B5]], 기체 등록번호 [[융비호|HL7410]]을 차관 도입하여 [[김포국제공항|김포]] -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호놀룰루]]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 루트의 첫 미주 여객 노선에 투입하였다. 이 노선의 편명은 KE001/002편으로서 1979년 12월에 [[김포국제공항|김포]]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 직항 노선 취항 후에 폐지되었다가, 1989년에 창사 20주년 기념으로 [[김포국제공항|김포]] - [[나리타 국제공항|나리타]]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 루트로 재취항했으며, 대한항공 미주 노선의 '''상징'''과도 같은 역할을 해 오던 노선이었다. 오늘날 장거리 국제노선의 경우 항공기 성능의 발달로 인해 국적 항공사 노선이면 대부분 직항편으로 변경되었지만, 이 노선 만큼은 굳이 제 3국의 도시인 [[나리타 국제공항|도쿄]]를 경유하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일단 이 노선을 부활시킨 1989년 당시 20주년 기념 차원에서 대한항공의 첫 미주 노선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한 것도 있고, 더 중요한 것은 대한항공이 [[일본]]에서 항공자유화 5단계 [[항공자유화협정|운수권]]을 유지함으로서 항공 수요가 상당한 [[나리타 국제공항|도쿄]]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 노선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영업함으로서 수익이 쏠쏠하다는 이윤의 측면이 훨씬 컸었다.[* 게다가 운수권은 정말 정말 따기가 어렵다.] 하지만 2013년 4월 1일부터 최종 도착지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 대신에 [[하와이]]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호놀룰루]]로 변경하여 운항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나리타 국제공항|도쿄]]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 구간이 자체적인 수요가 갈수록 줄어드는데 경쟁해야 하는 항공사들은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나리타 국제공항]]은 미주 노선이 엄청나게 깔린 아시아 최대의 허브 공항이기에 그만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 등의 주요 [[미국]]행 노선에서는 엄청난 경쟁이 당연하다. 어찌보면 초창기 미주 노선 루트인 [[김포국제공항|서울(김포)]] - [[도쿄 국제공항|도쿄(하네다)]] - [[다니엘 K. 이노우에 국제공항|호놀룰루]]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의 구간을 일부 단축한 형태로 바뀐 셈이다. 민영으로 전환한 지 10주년이 된 1979년 5월부터는 로고와 도색의 디자인 변경을 검토하기 시작해 프랑스에 새 도색안을 접수했지만, 채택되지 못했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미주 노선이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들자, 취항지가 [[파리(프랑스)|파리]]와 [[취리히]]뿐이었던 유럽 노선의 확장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1984년에 [[김포국제공항|서울]] -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프랑크푸르트]], 1988년에 [[김포국제공항|서울]] - [[히드로 공항|런던(히드로)]], 1989년에는 [[김포국제공항|서울]] -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암스테르담]] 노선을 취항시켰으며, 이 당시에는 [[대한민국]] 건설 회사들의 중동 진출 붐 덕분에 [[바그다드]], [[쿠웨이트]], 다란, [[바레인]], [[제다]], [[리야드]], [[아부다비]], [[트리폴리]] 등의 중동 및 북부 아프리카 지역 취항지도 무척 많았다. [* 단, 현재는 [[리야드]], [[제다]] 노선은 단항되었으며, [[두바이]] 노선을 운항중이다.] 1981년 미국 LA공항에 대한항공 전용 화물터미널을 세웠으며, 1983년에는 [[보잉 747]] 모의 비행훈련 장치를 도입한 후 [[1984년]] 1월 경기도 부천시에 엔진 시운전실을 열었고, 그해 3월 1일부터는 1983년부터 [[보잉]]과 협력하며 만든 태극 마크로 CI를 변경했고 항공기 도색도 하늘색으로 변경하였으며,[* 최초로 현행 도색을 적용한 대한항공의 비행기는 1984년 6월 29일에 인도된 [[F-28]]인 HL7265인데, 이 기체가 인도 전이었던 [[1983년]] 11월 30일에 찍은 [[https://www.airliners.net/photo/Korean-Air/Fokker-F-28-4000-Fellowship/1421951/L?sid=15b5f2b2bf73cd16f16c92093fe28dc3|사진]]을 보면, 늦어도 1983년 11월에는 현행 로고의 기본 틀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의 영향이 컸다.] 영문명도 'KOREAN AIR LINES'에서 'KOREAN AIR'로 바꾸었다. 12월에는 김해공항에 대형 행거를 준공해냈다. 1985년 제주국제공항에 국내선 전용 화물청사를 열고 1987년 김해공장 종합자재창고와 캐터링센터를 세웠으며, 1989년 기초비행훈련원을 열고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가입했다. [youtube(5aEelBfc8gs)] 특히, 20년 넘게 오랫동안 대한항공의 얼굴마담으로 활약한 기종이라고 할 수 있는 [[보잉 747-400]]을 1988년에 10대 주문하여 출시된 해인 1989년부터 차례로 도입하였는데, 대한항공이 아시아 최초로 [[보잉 747-400]] 기종을 도입한 항공사로 기록되었다. 대한항공의 롤 모델이였고, 한때 [[보잉 747]] 시리즈 최다 보유 항공사였던 [[일본항공]]보다 더 빨리 도입했다는 이야기. [[파일:15284.jpg|width=700]] {{{#!html ⓒ 広江正人 (CCL BY-SA 3.0)}}} 1974년 4월 15일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에 착륙해 있는 KAL [[보잉 747-200]]. 뒤에 [[전일본공수]]의 기체와 [[일본항공]] 기체가 보인다.[* 이 기체는 등록번호 HL7411로 [[융비호]]에 이어 도입된 대한항공의 [[B747]] 2호기다. 융비호와 같이 1981년에 보잉에게 매각되었지만 이듬해에 다시 돌아오면서 HL7464로 재등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