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항해시대 (문단 편집) == 목숨을 건 항해 == 각종 창작물에서의 묘사로 인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시대로, 미지의 먼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것은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라서 바다와 항해에 관한 작품들은 그때부터 수 없이 많이 등장했다. Antonio Pigafetta, George Best, Richard Hakluyt 같은 사람들이 이미 16세기에 항해기를 출판했으며 소설로도 The Life, Adventures & Piracies of the Famous Captain Singleton(1720), The Adventures of Roderick Random(1748)등 진작부터 해양 소설이 출판되었다. 또한 [[해적]]에 관한 낭만적인 묘사 역시 18세기가 원조다. 영국에서 출판된 A General History of the Pyrates(1724)가 처음인데 이 책에서 이미 [[검은 수염]], [[졸리 로저]], [[앤 보니]], [[윌리엄 키드]] 등 오늘날 유명한 해적들에 관한 유명한 에피소드들을 다 담고 있었고, 오늘날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도 이미 이 때부터였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현실은 가혹해서]], 당대의 항해자들은 불과 '''한강 유람선''' 크기[* [[캐러밸]] 선은 [[배수량]]이 150톤으로 진짜 한강 유람선 수준이다.]의 [[범선]]에 수십 명의 선원을 태우고 바람에만 의존해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당연히 몇 달씩 육지 구경도 못 했다. 화장실도 없었으며 빨래, 샤워는 꿈도 못 꿨다 당시 범선 항해에서 선원들이 무서워했던 것은 쥐도 [[괴혈병]]도 아닌 바로 [[무풍지대]]였다. 차라리 맞바람이라도 불면 돛을 이용해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W 이렇게 바람이 부는 방향을 향해 지그재그로 침로를 바꿔나가면 바람을 뚫고 전진이 가능하다.] 바람이 안 불면 그냥 망망대해에서 선장과 동료선원들과 함께 사이좋게 천천히 말라죽어 갈 뿐[* 보트를 띄워 모선과 밧줄로 연결한 후 노를 저어 견인하기도 했다. 물론 보트에 탈 수 있는 선원의 수와, 범선을 노를 저어 몰고가기 위한 근력을 생각하면 이런 방식으로 무풍지대를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말이다.]이었다. 이렇게 무풍지대에서 선원들이 전원 사망한 후 선박에는 사람의 해골들만, 바람이 안 부니 해류를 따라 배가 이리저리로 떠다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유령선]]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러나 [[무풍지대]]는 무풍'''지대'''라는 말에서 의미하듯 특정한 지역에서만 발생하지 무작위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북위와 남위 30도 지점과 [[적도]]가 무풍지대가 발생하는 곳으로 그 외의 바다에서 며칠씩 바람이 불지 않는 경우는 없다. 또한 무풍지대라 해도 [[해류]]는 흐르기 때문에 한 달씩 발이 묶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사르가소 해]]는 해류조차 순환하기 때문에 공포의 바다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대항해시대 초창기인 16세기에는 지리가 알려지지 않아 무풍지대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유령선 등 민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7세기부터는 세계의 무풍지대가 대부분 파악되어 문제가 해결되었다. 다만 이 문제로 당시의 범선 항해 경로는 최단 경로보다 훨씬 길었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 북아메리카를 왕복할 때 유럽에서 출발할 때는 [[서아프리카]]까지 내려가서 [[무역풍]]을 탔고, 유럽으로 돌아올 때는 [[보스턴]]까지 올라간 다음 [[편서풍]]을 탔다. 항해사들이 이를 이용해서 유럽([[공산품]])→아프리카([[노예]])→아메리카([[플랜테이션]] 작물)→유럽을 순환하는 무역을 했는데 이를 삼각 무역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레저용 정도를 제외하면 바람 외에 동력이 없는 범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풍지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중[[암초]] 또한 무서운 존재였다. 피해가면 그만인 무풍지대와는 달리 물 속에 잠긴 암초는 볼 수 없으니 피해갈 방법이 없다. 배가 수중 암초와 충돌하면 암초에 걸려 좌초하거나 선창이 뜯겨나가 침수된다. 피할 방법이 없으니 운 없으면 그냥 망망대해에 좌초해서 죽는 수밖에 없다. 수중 암초는 수백년간 해양 사고를 통해 위치가 알려져 해도에 위치가 표시되는 21세기에도 해양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 주범이다. 2010년 오리엔탈 호프호는 5만톤급 화물선이었음에도 [[이어도]] 해역에서 수면 4.6m 아래 있는 수중 암초에 걸려 좌초했다가 두 동강이 나서 침몰한다.[[https://www.yna.co.kr/view/AKR20100813063900056|#]][* 참고로 이 암초는 가장 가까운 육지인 [[마라도]]와 150km 떨어져 있다. 즉 수중 암초는 육지 주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암초에는 수만톤급 화물선도 대책없이 침몰하는데, 수백톤급 범선이라면 어떻게 될지 말할 필요도 없다. 질병 통제가 잘 될 리가 없는 협소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생활했기 때문에 선원들은 당연히 질병에 매우 취약했다. 특히 당시 위생 관념상, 각종 질병의 창궐을 막기 위해선 주기적인 목욕과 신선한 야채 공급이 필수인 것조차 몰랐으므로 이를 대처하기도 힘들었다. 수많은 선원들이 질병에 시달리면서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갔다. 이는 거의 18세기가 되어서야 [[제임스 쿡]]이 선원들에게 강제로라도 절인 [[양배추]]를 먹이고 찬물 목욕을[* 심지어는 차디찬 남극 앞바다에서도 실행되었지만 이 덕분에 쿡의 선원들은 괴혈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선원들이 양배추 배급에 반발하자 쿡은 양배추를 강권하는 방법 외에도 간부들에게 양배추를 우선 배급하는 방법을 썼다. 간부들만 양배추를 받는 것을 보고 선원들이 자기들도 달라고 하게 만든 것이다. 그 외에도 위생을 위해 늘 이불을 훈연하고 배를 청소했으며 식료품 역시 저장된 염장 고기나 비스킷은 최대한 아끼고 섬에 상륙해서 조달한 신선한 고기나 과일, 채소 등을 우선적으로 섭취했다.] 시키면서 해결되었다. 당시 식량은 [[비스킷]], [[염장고기]], 썩은 물과 [[럼]]에 불과했다. 비스킷은 돌처럼 딱딱한데다 [[곰팡이]]가 피었고 가장자리는 쥐가 갉아먹은 것이었으며, 썩은 물에는 죽은 쥐가 떠 다니고 있었다.[* 나무통에 물을 담으면 물이 썩는다는 문제를 인지하고 그 대안으로 철제 통이 등장함으로서 해결되었지만, 이것도 상당히 늦게 도입되었다. 그래서 선원들은 물보다 [[럼주]]를 더 선호했다.] 그런 썩은 물조차 부족해 씻기도 어렵고 옷을 세탁하기도 어려운 채 거지꼴 몰골로 땀 흘리며 육체노동을 했다. 당시 범선은 화재에 취약했으므로 추운 날에 물에 젖으면 오들오들 떨어야 했고 씻을 때도 물을 데울 수가 없었다. 이는 극지방 근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선원들을 이끌고 항해를 하려면 선원들의 반항심을 씹어먹을 엄격한 규율이 필요한데 럼주 훔쳐먹은 놈 채찍 몇 대, 고기 훔쳐먹은 놈 채찍 몇 대 이런 식이었다. 오죽 혹독했으면 채찍을 맞다가 죽는 선원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특히 식사가 배급될 때 자기가 음식 좀 더 먹으려고 동료 선원을 밀치거나 몸싸움을 벌여 다치게 한 경우는 '''[[사형]]'''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었을 정도로 통제가 매우 엄격했다. 아메리카나 인도 등지에서 교역품을 싣고 돌아올 경우, 단 몇 그램도 큰 돈이 되었다. 한번 항해에 성공할 경우 선장은 물론 그 아래 말단 선원들까지 '''큰 돈을 한 번에 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선원이 모이고 배가 계속 출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에서 보면 신대륙에서 염색용 연지벌레를 창고에 실었는데 이 연지벌레의 10%만 살려가도 충분히 이익이 난다는 말이 나온다.][* 선원들이 큰 돈을 벌고도 한 번 항해로 끝내지 못한 것도 큰 돈을 한꺼번에 지급했기에 항구 근처에서 전부 탕진하고 다시 배에 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대에도 시즌(=제철)으로 작업하는 어선들은 선원 임금을 사전에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선이 벌어들인 총 수익을 퍼센트로 나누는 방식으로 일시불로 지급하고 있다.] 그 반대급부로 출발 전에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교역품을 실었으며, 심지어 이로 인해 멀쩡한 배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여기서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는 말은 단순히 무거워서 가라앉았다는 말도 있지만 배가 [[균형]]을 잃는 경우도 말한다. 적재가 많을수록 배의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서 선체가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기함이었던 트리니다드 호가 무리한 적재가 한 원인이 되어 침몰하기도 했고, [[바사 호]] 또한 무리한 적재로 어이없게 침몰하기도 했다.] 따라서 선원들에게 배급해야 할 물자마저 최소한으로 줄여서 항해했다. 이 때문에 비스킷이나 염장고기, 썩은 물 역시 충분히 먹을 수 없었다. 또한 이러한 무역선들은 중간에 함부로 정선하거나 상륙할 수도 없었는데, 해안 근처에는 [[해적선]], [[사략선]]들이 눈에 불을 켜고 무역선을 찾아다녔으며[*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무역선 선원보다 오히려 해적선, 사략선 선원의 건강 상태가 평균적으로 더 좋았다. 멀리 안가고 연안에서 작업(?)을 하기에 신선한 음식을 공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체]]의 영향으로 해적선 선원이라고 하면 보통 비루한 옷차림에 걸걸하게 다니는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말끔한 지식인들도 해적선, 사략선에 많이 가담했다.] 자국의 항구가 아닌 곳에 정박하였을 경우 항구에서 물자는 제공해주었지만[* 이것은 항해사들 사이에 있었던 [[불문율]]로, [[접대의 관습]]과 비슷하게 항구에 입항한 선박은 국적이 무엇이든 물자 제공도 거부하고 죽으라고 내쫓지는 말아야한다는 규칙이었다. 이 관습은 [[항공]]으로도 이어져서 항공기의 비상착륙은 적성국의 항공기라도 군 기지 공항에 착륙이 가능하며 이륙 허가를 받으면 공항은 항공기가 귀항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자는 제공해야 한다.] 그 대가로 '''모든 교역품을 항구에 내려놓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로 인해 무역선들은 섬도 안 보이는 먼 바다를 측량에만 의지하여 빙 돌아서 항해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선원들이 죽어나간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항해의 악조건 때문에 현대 해군은 항해 도중에 멀미와 구토 등에 시달려서 정박 시보다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는 함정요원들을 위해 간단한 야식을 포함한 1일 4식을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세한 내용은 [[전투식량]] 항목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