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항해시대 (문단 편집) === 기술력 ===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럽인들에게 원양항해는 이때가 최초였다. 원양항해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은 전무했고, 현지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거의 없었다. 중국이나 인도의 존재는 그 당시에도 알려져있긴 했으나 몇몇 여행기에서 전해오는 오래되고 단편적인 지식이 전부였고, [[아메리카]]는 일부만이 알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발견이 대표적이긴 하지만 이전에도 알 사람들은 알았을 것이 서기 1000년 무렵 아이슬란드에 살던 [[바이킹]]들이 서쪽으로 항해를 한 끝에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섬인 [[빈란드]]에 도착한 일이 있었고,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 지방에 사는 민족인 [[바스크족]]들도 오랫동안 캐나다 동부 해안에서 [[대구(어류)|대구]]를 잡아왔는데, 캐나다의 대구 어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외부 어선들이 몰려와 자신들의 어획량이 줄어들까봐,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느라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서기 8세기 초 무렵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문헌인 '브렌던의 항해(Navigatio Brendani)'에서는 [[아일랜드]]의 [[수도자]]인 성 브렌던(Saint Brendan: 484/486~578년)이 7년 동안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다가 서쪽의 이제까지 누구도 보지 못한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http://todayhumor.com/?mystery_9260|링크]] 게다가, 프랑스의 노르망디 어브도 캐나다에 있는 항구에 대한 언급이 있는등 모르진 않았겠지만 저 바다 머나먼 대륙에 있다는 정도로만 알지 자세히 아는 이는 극소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이슬람과의 교류를 통해 전래된 [[나침반]], [[아스트롤라베]], 사분의 같은 각종 측정기구들은 태양과 별의 위치보다도 더 정확하게 방위를 알 수 있게 해주었으며, 또한 그들의 원양항해술을 배울 수 있었다. 변방에 위치해 먹고 살려면 바깥으로 나아가야 했던 포르투갈은 가장 이에 관심을 보였고, 포르투갈의 1세기에 걸친 서아프리카 항해로 어느 정도 대양 항해를 위한 항해술과 해도 제작 능력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초적인 원양항해 능력과 때마침 강성해진 오스만 제국의 등장으로 항해술은 급속도로 발달, [[카락]]과 [[캐러밸]] 같은 본격적인 대양 항해용 선박들이 등장하였다. 후에 이는 다시 [[갤리온]]으로 이어져 어느새 유럽인들의 대양항해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한다. 정리하자면 수요에 의해 기술이 맞춰 발전한다는 말에 따라, 유럽의 변방이었던 포르투갈은 원양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후에 발전할 원양항해술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동방의 강성한 오스만 제국의 등장으로 필연적으로 대양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유럽인들은 포르투갈을 따라 원양항해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으며 덕분에 대항해시대가 찾아올 수 있었던 것. 덕분에 유럽 세력은 좁은 유럽에서 넓은 세계로 시야를 확장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후에 [[산업 혁명]]과 [[제국주의]]의 바탕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