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광제 (문단 편집) == 즉위 후 == 1820년 가경제가 후계자 지명 없이 열하에서 심장마비로 붕어하자 황자 중 최연장자로서 황위를 이어받았다. 다만 황자 중 최연장자이자 유일한 적자였던 데다 계유지변에서 공을 세우는 등 일찍이 능력을 뽐내며 친왕에 임명된 바 있었기 때문에 별 시비는 없었던 듯.[* 당시 성인인 동생으로 황3자 면개가 있기는 했지만 1820년에야 겨우 돈군왕에 책봉되는등 큰형과 경쟁을 벌여볼만한 입지가 아니었다. ] 1850년까지 30년간 청나라를 통치했다. 즉위하자마자 [[가경제]] 이후로 쇠퇴에 가속도를 밟기 시작한 청나라를 떠맡았다. 1820년에는 신장-위구르의 호자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1826년경 반란 자체는 진압했고, 주동자는 [[베이징]]으로 압송하여 처형했다. 이후 청나라는 반란으로 잃어버린 영토들도 모두 수복하는데에 성공했으나, 계속된 행정마비로 결국 코간드 칸국에 유리하게 관세를 조정해 준 조약을 맺었다. 이후 청나라는 위구르 지방의 통치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전통적인 [[동군연합]] 체제에도 균열이 갔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위구르/역사, 앵커=청나라 치하의 위구르족과 신강 지역 (18세기~19세기))] 그의 치세기는 청나라가 열강에게 샌드백이 되는 서막을 여는 시대이기도 했다. 1840년의 [[제1차 아편전쟁]]과 그로 인한 [[난징 조약]](1842년)이 대표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