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교 (문단 편집) ==== [[위진남북조시대]] ==== 천사도 이후 도교가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해나가는 시기다. 위촉오 [[삼국시대]]에 [[오나라]]에는 [[갈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태극갈선옹(太極葛仙翁)이라고 불렀다. 그는 천태산(天台山)에서의 다년간의 수련을 통해 득도한 후 상청(上淸), 삼동(三洞), 영보(靈寶) 등의 경전을 전수하였는데, 이후 증손자 갈소보가 영보파(靈寶派)를 창립하였다. 이 세 경전은 이후 여러 후인들에 의해 발전되어 도교의 중요한 맥을 이루었다. 동진 때에 있었던 도교 역사상 '''첫 번째 여도사이자 여학자인 [[위화존]]'''은 명문가 출신으로서 어려서부터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신선술에 관심을 두게 되어 천사도에 가입했다. 위화존은 도교의 양생이론을 깊게 연구하여 삼단전(三丹田), 팔경(八景), 이십사진(二十四眞) 등 양생이론을 만들었고, 수련 경험을 글로 남겼다. 또 팔색은서, 태상보문, 태동진경, 황정, 치정제귀법등의 경전을 수집, 연구 끝에 일련의 완성된 교리와 교의를 갖추었는데, 후에 [[모산파]][* 상청파(上淸派)]는 위화존의 이론을 기초로 삼고 위화존을 자신들의 시조로 받들었다. 위화존 덕분에 도교의 양생술과 여러 수련법은 의학과 함께 체계적으로 정립되었고, 각 교파의 조사들이 변형하여 다양한 양생법이 세상에 나왔다. 동진 때의 저명한 도학자인 [[갈홍]]은 [[연단술|연단]]과 의학에 정통했다. 그는 종조부 [[갈현]]의 호인 갈선옹을 따라 소선옹小仙翁이라 일컬어지기도 하는데, 스승인 [[정은]]에게 연단비술(煉丹秘術)과 갈현의 비법을 남김없이 전수받았다. 그는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처음부터 뜻이 없었던 건 아니었고 [[동진]] 성립 과정에 여러 강남 호족들과 함께 가병을 이끌고 분전했지만 당시 사실상 [[동진]]의 통치를 도맡고 있던 [[왕도(동진)|왕도]]가 [[서진]]출신 관료와 사대부만을 중용하자 이에 절망하고 이후로 도교 수련에 힘썼다. 그의 대표작 [[포박자]]도 순수한 도교 관련 서적은 아니며 절반 정도는 시국 비판의 내용이다.] 나부산에 들어가 득도를 하고 연단과 저술 활동을 하였는데, 특이하게도 갈홍은 신선방술과 유가의 [[삼강오륜]]을 결합하여 충효와 인을 근간으로 삼아야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그때까지 전해오던 도교의 신선이론과 수련방술을 더욱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는데 특히 연단의 이론과 방법 및 연단의 제조방면에서 탁월한 업적을 거두어 [[수나라]][[당나라]]시기의 [[연단술]] 발전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대표 저술로 [[포박자]]가 있는데, 그의 포박자 내편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도교이론과 방술을 집대성하여 도교의 신선학이론체계를 세우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다. 남북조 시기에는 장로가 죽고 난 후 천사도가 크고 작은 반란에 연관되어 지배층의 견제를 받자 천사도 조직은 뿔뿔이 흩어져 수많은 교들이 난립하였다. 하지만 이 때 [[육수정]], [[구겸지]], [[도홍경]]으로 대표되는 도교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중구난방이던 도교의 이론 체계를 재정비하고 도교를 다시 진작시켰다. 사상과 관념, 각종 의범을 제대로 갖추고 미신 등의 사상을 개선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 과정에서 천사도가 '북천사도(北天使道)'와 '남천사도(南天使道)'로 나누어지기도 하였다. 남북조 시기에 도교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종교로서의 의례 등이 명확히 갖추어지고 신선 이론의 체계적인 정립이 이루어지면서 서서히 '''마음수련'''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교에서 이러한 마음의 수련의 비중은 이후 점점 확대되어 [[전진교]]나 [[무당파]]에 이르러는 외단을 도외시하고 내단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육수정]]은 남북조 유성 시대의 저명한 도사이자 남천사도의 창립자인데, 어려서 유학을 배웠으나 도교의 장생술을 보고 속세를 등지고 도가 높은 스승을 찾아 신선이 되고자 했다. 그는 여산에서 수도하며 제자들을 거두어 포교활동을 했으며, 천사도를 진작시키기 위해 도교 경전의 목록을 삼동경서(三洞經書)로 총괄하여 정리했다. 그는 도교의 제도와 복식, 계율과 의식을 정비하고 등을 정비하고 '유불도의 삼교합일'을 주장했다. 그는 재초, 즉 몸의 정갈함을 위해 목욕과 금주를 하며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음식을 피하고 마음의 정갈함을 위해 욕심을 부리지 않고 속세에 얽매이거나 불결한 생각을 하지 않는 ‘재’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초’를 중시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러한 예배, 송경, 사신의 삼법으로 마음과 행동을 정결히 하면 득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육수정 덕에 도교의 위세가 크게 넓어졌는데, 그가 개혁한 교단을 ‘남천사도’라고 부른다. [[구겸지]]는 어렸을 때부터 천사도를 신봉하였다가 숭산에서 수도한 뒤 위나라의 수도로 가 태무제로 하여금 도교를 위나라의 국교로 삼게 하고 도교를 개혁하였다. 그는 먼저 이전에 있었던 부조리한 법도와 쌀로 세금을 받던 제도를 없애고 신도들에게 계율을 준수하고 열심히 예배하고 수련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도교 신선의 계보를 정리[* 도교의 많은 신들의 이름은 거의 이 때 정해졌다고 보면 된다. 세세한 스펙이나 모습 등은 크게 바뀌기도 했지만.]하였고 도교를 개혁하여 사회 각 계층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종교로 바꾸었다.[* 이전에는 기복신앙과 여러 자연신을 숭배하는 부록파 위주인 민간도교와 불로장생약을 만들고 신선이 되고자 하는 수련도교 간에 간극이 꽤 있었다.] 이렇게 구겸지가 개혁한 교단을 '북천사도' 혹은 신천사도(新天使道)라고 한다. [[도홍경]]은 모산종의 창시자이다. 그는 유불도 삼교의 이론에 정통하였고 불교와 도교의 수련을 모두 실천하며 불교와 도교의 융합을 도모하고, 모산에서 외단과 상청파의 양생술을 연구하였다. 그러나 도홍경은 무엇보다 양생을 위해 마음과 몸의 수련을 함께 하는 것을 중시했다. 그가 창시한 모산종이 상청파의 중심세력이기에 후일 상청파를 [[모산파]]라고도 불렀다. 그 외에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백가도]], [[이가도]], [[삼황파]], [[누관파]], [[상청파]], [[영보파]] 등이 주요 도파로 꼽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