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종(송) (문단 편집) === 즉위 이전의 삶 === 1240년 [[이종(송)|이종]]의 친동생인 사영왕 [[조여예]]와 제국부인 황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초명은 조맹계였다. 당시 남송 황실은 자손이 많지 않았고 귀했는데 조맹계의 큰아버지인 이종 역시 [[황후 사씨(이종)|황후 사씨]]와의 사이에서 외아들인 기충소왕 조유를 얻었지만 일찍 요절했고 다른 아들도 일찍 사망해 후사가 없었다. 따라서 이종은 유년기의 종실 왕자 중에서 후계자를 찾아야 했다. 이때 그는 자신과 혈연적으로도 가장 가깝고, 어릴때부터 형제간 우애가 돈독했던 친동생 영왕의 아들, 즉 자신의 어린 친조카 조맹계를 일찍 양자로 삼았다. 양자가 된 조맹계는 큰아버지의 양자가 된 뒤 휘를 조자로 개명하고 궁에서 키워졌다. [[영종(송, 13대)|영종]](寧宗) 때 엄격한 제왕 교육을 받았던 이종은 본인 역시 유학을 권장한 군주답게 후계자 조자를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이종은 아침이면 본인이 직접 찾아가 조자를 가르치고 돌아가 국정을 처리하였고, 그 사이엔 관료가 경전을 강의하게 하였다. 밤이 되면 다시 조자에게 가서 살다시피 하였다고 한다. 오늘 무엇을 배웠는지 묻고 대답이 맞으면 차를 내어주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옳은 답을 할 때까지 반복해서 화를 내며 답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자는 《송사》에서도 기록되었을 정도로 발육 속도가 남들보다 늦고 둔했다. 걸음마를 떼는 속도도 느리고 말도 7살이 되어서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더해서 천성적으로 몸도 약했고 [[지적장애]]를 갖고 있었으며 이해력도 심하게 떨어졌다. 그의 어머니가 낙태약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야사도 존재한다. 기록들을 그대로 신뢰한다면 [[경계선 지능]] 혹은 정상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IQ 90 미만으로 사실상 경계선에 있지 않았나 추정. 하지만 이종은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조자를 다시 조기로 개명시킨 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을 부린 끝에 친조카이자 양자인 조기(조자)를 황태자로 삼았다. 당시 이종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이유는 이종의 일가에서 제위를 물려받을 만한 종실 남자가 [[지적장애]]자인 조기 밖에 남지 않았거니와, ‘이종이 조기의 생부인 친동생 [[조여예|영왕]]과의 형제애가 상할 것을 염려해 끝까지 고집을 피웠고 그 고집을 꺾지 못했다’고 기록된 것처럼 이종이 그 뜻을 거둘 생각이 없었던 까닭이 컸다. 하지만 이는 표면상 이유일 뿐이고, 처음 반대 의견을 냈던 대신들이 “다시 후계자를 찾느라 법석을 떠느니 허수아비가 될 게 확실한 그를 즉위시키는 게 낫다”고 판단한 이유도 있었다. 그후 40여년간 집권한 이종이 죽고 황태자 조기가 즉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