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역사 (문단 편집) === [[나폴레옹 전쟁]]과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1789~1815) === 근대 독일 및 독일 민족주의의 기원은 일반적으로 19세기, 특히 [[나폴레옹]]에 의한 신성 로마 제국의 해체 및 나폴레옹에 대한 저항 과정에서 나타났다고 여겨진다.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대역사가 [[토마스 니퍼다이]]는 자신의 19세기 독일사 3부작의 첫권 문장을 '''태초에 나폴레옹이 있었다'''(Am Anfang war Napoleon)으로 시작함으로써 이를 명료하게 표현하였다.[* 그렇기에 19세기 독일과 저지대 일대를 포함한 북유럽에서는 1792~1815년의 기간을 '프랑스 시대(Franzosenzeit)'라고도 한다.] [[프랑스 혁명]]은 초기에 독일에서도 열렬히 환영받았으나, 프랑스 혁명이 급진화하면서 이에 대한 거부감 역시 확산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연합군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프랑스의 지배자로 대두한 [[나폴레옹]]은 점차 독일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우선 [[1801년]] 뤼네빌 조약을 통해 라인강 좌안 전체 지역을 프랑스에 합병하였고, [[1803년]]에는 주교령을 폐지하는 세속화(Säkularisation)와 군소 제후령의 통합하는 중재(Mediatisierung)를 골자로 하는 '''제국대표단 주요결의안'''(Reichsdeputationshauptschluss)을 통해 신성 로마 제국의 300여 개에 달하던 제후국들을 재편하였다. 이 과정에서 크게 이득을 본 것이 [[뷔르템베르크]]와 [[바덴]]이었고, 프로이센과 바이에른도 크게 영토를 넓혔다. [[1804년]] 나폴레옹이 스스로 프랑스의 황제가 된 직후 황제 [[프란츠 2세]]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모든 영지를 오스트리아 중심으로 모아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웠는데, 이는 이 즈음에 이르러 신성 로마 제국 황제위가 유명무실한 지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나폴레옹은 [[1805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를 격파하였고, 1806년 [[라인 동맹]]을 설립한 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을 격파하고 베를린에 입성했다. 결국 [[1806년]] 프란츠 2세가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함으로서 제국은 종언을 고했다. 나폴레옹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던 라인 동맹에선 프랑스를 모델로 한 개혁이 실시되었다. 반면 프로이센은 [[틸지트 조약]]에서 [[엘베강]] 서쪽의 모든 영토와 폴란드 분할로 얻은 대부분의 영토를 잃었고 국토가 거의 절반으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국가적 굴욕은 프로이센으로 하여금 국가적, 민족적 대각성 및 개혁을 촉구하였고, [[슈타인]] 남작과 [[카를 아우구스트 폰 하르덴베르크]]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국가 개혁에 돌입하였다. 초기에는 슈타인이, 나폴레옹에 의해 슈타인이 축출된 후에는 하르덴베르크가 주도한 프로이센의 개혁은 행정 개혁과 재정 개혁, 조세 개혁, 농지 개혁 및 길드 특권 철폐와 같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개혁을 실시하였다. 또한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주도한 군대 개혁과 [[빌헬름 폰 훔볼트]]가 주도한 교육 개혁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특히나 훔볼트의 교육 개혁은 '연구와 교육의 통합'이라는 근대적인 대학 체제의 모델을 제시하였으며, 이후 19세기 독일의 학술적 부흥을 예비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러한 전면적인 개혁을 통해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을 격퇴하고 더 나아가 이후에 열강으로 부상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후 독일 내에서는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이 점차 고조되었다. [[1813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한 후 시작된 독일의 '''해방전쟁'''(Befreiungskrieg)은 독일의 민족 감정을 매우 고취시켰고, 독일 민족주의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독일의 해방전쟁은 1812년 12월 30일 프로이센의 장군 루트비히 요르크 폰 바텐부르크 백작이 몇 주 동안 머뭇거리던 왕의 명령 없이 러시아와 타우로겐 협약을 체결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렇게 재결성된 프로이센-러시아 동맹은 1813년 2월 말에 공식화되었고, 이는 최후의 대프랑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오스트리아는 1813년 8월에야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참전했지만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결정적 패배에 기여하였고, 이후 라인 동맹이 해체되면서 독일은 해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