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외교 (문단 편집) == 옛 식민지 국가와의 관계 ==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 가려져서 존재감이 약하지만 독일도 엄연히 제국주의 열강이었다. 그러나 다른 유럽의 나라들보다 제국주의 대열에 늦게 뛰어드는 바람에 물 좋은 해외 식민지들을 확보하지 못했다. 비스마르크 총리도 식민지 침략은 필요 없다고 말한 바 있지만[* '''석탄 대신 화학'''이라는 말처럼,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하는 대신 학문과 과학에서 다른 나라들을 앞서자는 요지의 발언이었다.] 독일도 제국주의 흐름에 뛰어들어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탄자니아, 토고, 카메룬, 남태평양의 비스마르크 제도, 뉴기니 섬 북부 지역 등을 식민지로 삼았다. 중국 칭다오도 독일의 조차지였다. [[칭따오(맥주)|칭따오 맥주]]가 이 독일 식민지 시절에 설립된 맥주 설비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현상 유지론자였던 비스마르크가 해임되고 빌헬름 2세 황제가 적극적인 해외 침략을 밀어붙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고 패전으로 인해 가지고 있던 해외 식민지들을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등에 빼앗기면서 독일은 식민지 없는 유럽 열강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식민지 지배 기간도 워낙 짧아서 과거 식민지였던 탄자니아, 토고, 나미비아같은 아프리카 나라들에서는 독일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나미비아는 독일어가 어느 정도 통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록 세계 대전의 패배자로 묻혀서 그렇지 독일도 제국주의의 과오에서 자유롭지 않다. 나미비아에서 헤레로인들을 무차별 학살하는가 하면 탄자니아에서도 독일 지배에 대항하는 현지 흑인들의 무장 반란을 잔인하게 유혈 진압한 전례도 있었으며 이외 다른 식민지 지역에서도 인권 유린이나 무임금 노동 등 각종 식민지 탄압들을 자행했다.[* 사실 이런 식민지 탄압은 식민지들을 점유하던 프랑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등 대부분의 유럽 열강들이 다 자행했다.] 게다가 유대인이나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해서 극도로 사과하는 것과 달리 과거 식민지였던 나미비아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나라들에 대해서는 독일은 과거사 사과나 피해 보상이 너무 늦었고 개별적 보상이 아니라 경제원조를 하는등 관심 자체가 낮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독일이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나라들과 사이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냉전 때 토고에서 바나나를 수입하여 그 대가로 경제지원금을 주기도 했고 가끔씩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 등 유명 관광지에서 독일 관광객들이 종종 관광을 즐기러 와서 외화를 뿌리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유럽 열강들에 비해 식민지 지배기간도 짧았던지라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다른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에 비해 토고, 나미비아, 탄자니아, 카메룬 등 옛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