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국대학교/사건사고 (문단 편집) == 2006~2007: 강정구 교수 만경대 발언 파문 및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 동국대 흑역사의 알파이자 오메가. 학교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흑역사로 남은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로 동국대는 모든 논문이나 자료 학위 증명서 등의 출처와 표절 및 위조 여부를 지독하게 따져대기 시작했다. 특히 신정아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인 2006년은 동국대학교 100주년이었고 학교발전을 위해서 야심차게기부금을 모으고 다니던 때였다. 여러모로 치명타. 2006년 강정구 전 사회학부 교수의 방북 당시 소위 '만경대 발언' 사건이 터지고, 정치적으로 크게 논란을 빚게 되자 [[애국기동단]]이 출동해서 팔정도 앞에서 데모를 하는 등 여러 모로 유명세를 탔다. 이 때만 하더라도 진보와 보수의 흔한 싸움판 정도로 여겨졌으나 문제는 그 다음해인 2007년 [[신정아]] 사건이 터짐으로써 학교 이미지가 결정적으로 추락했다. 자세한 것은 [[신정아]] 항목 참조. 이 일로 예술대는 신정아가 강의했던 전공과목 중 원하는 학생에 한해 학점을 취소해주었다. 신정아의 전공수업은 미술관을 6-7군데나 답사하고 보고서를 쓰는 상당히 타이트한 수업이었다고 한다. 또한 로스쿨 예비심사 탈락에서 결정적 요인 또한 저것이었다고.[* 그리고 차 순위인 [[원광대학교|모 대학]]이 로스쿨을 갖고 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국대 이사회의 신뢰성에도 금이 갔다. 스님들이 이사진으로 내려와 이사회를 장악함으로써 권력과 돈을 틀어쥐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일설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패배한 계파의 스님들이 학교 이사회로 좌천되는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아래 각주에서 언급하듯이 조계종으로 들어오는 막대한 시주금이 학교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이러한 대립구조 때문이라는 것.] 많은 학생들이 학교 내 스님들을 그렇게 좋은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 뒤 로스쿨 심사에서 예비인가를 받지 못하여 교수진 및 불교계에서 격렬한 항의가 일어났다. 인가를 받기 위해 학교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여러 건물을 증축 및 보수했다. 학기 중에 공사를 강행해 학생 및 교수들의 반발도 상당했다. 건물들은 그럴 듯해졌지만, 로스쿨에서 최종 탈락하면서 결국 별 의미없는 공사가 되었다. 그나마 신축이 아니라 리모델링 수준이라 돈은 덜 들었다. 2009년에는 신정아의 학력을 제대로 확인해주지 않은 예일대 당국과 소송전에 들어갔고, 결국 패소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예일대측 변호인단도 예일대 동문 로펌들이고, 동국대측 현지 변호인단도 예일대 출신의 로펌들이다. 예일대측에서는 예일 로스쿨 30명 입학으로 딜을 치려 했지만 동국대측 변호인단이 '''이길 게 뻔한 싸움을 왜 접으려는가''' 라고 했다고] 결국 법과대학은 로스쿨로 전환되지 못해 학부 그대로 남게 되었다. 정용상 학장 시절부턴 학과 커리큘럼에 법무 실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덕분에 사법시험 대신 [[법무사]], [[노무사]]와 같은 자격증 시험이나 공무원, 경찰 시험에 합격하는 동문 비율이 늘어났다. 다만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많은 학우들의 경우 문과대와 마찬가지로 취업난에 고통받고 있다. 지금은 다들 제 살 길 찾아서 가는 분위기지만, 당시는 2009 금융 위기와 겹쳐서 정말 혹독한 시기였는데 사시 준비하던 학우들은 스펙이 전혀 없어서 더 고통받았다. 결국 어떻게든 각종 시험을 통과해서 지금은 다들 자리잡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