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료평가 (문단 편집) === 저자의 부담감 === 이처럼 하드코어한 동료평가의 과정은 그 분야에 막 발을 들여놓는 [[대학원생]]들뿐만 아니라 테뉴어를 노리는 노련한 중진 교수들에게까지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을 준다. 그러나 동료평가에서 별 지적을 받지 않고 게재 승인 (accept) 된다면 나중에 오류가 밝혀지면서 더 큰 망신을 당할 수 있다. 자신의 논문에 대해 비판이 하나도 없다면 완전무결하다며 좋아하기보다는 심사의 부실함에 대해 찝찝한 감정이 앞선다. 따라서 '''논문의 저자들에게는 자기 논문에 대한 전문적인 비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관점을 바꾸어 생각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자면 [[교수]]라는 최고의 지식인 집단에게, 그것도 단순히 자문도 아니고 정말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수준의 피드백을, 심지어 (게재 성공 시의 게재료를 제외한다면) 아무런 대가 없이 제공받는다는 엄청난 기회가 바로 동료평가다. 사람이 자기가 품은 생각을 이렇게 럭셔리한 방식으로 평가받을 기회는 평생을 통틀어 봐도 절대로 많지 않다.] 그리고 [[문헌오염|망신을 당하는 것 외에도, 발견되지 않은 오류로 인해 동료 연구자들을 엉뚱한 길로 몰아가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마냥 비판이 없다거나 비판을 피해갈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닌 것이다. 학회에서 발표를 하더라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보다는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논박하고 대안적 설명들을 제시할 때 자신의 연구가 급물살을 타게 되는 법이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연구자가 동료평가에 대해서 '''지나치게 겁을 먹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특히 [[대학원생]] 입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원고를 지도교수님께 보여드릴 때의 긴장감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그것 자체도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는 순간이라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막상 실제로 동료평가를 받아보면 셋 중 하나 정도의 비율만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 되고, 약간 그냥저냥하고 적당히 참고할 수 있는 리뷰가 다른 하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꼰대]]기질을 보이거나 오픈 마인드가 아닌 등의 이유로 인해 여러분이 봐도 좀 뭣같은(…) 리뷰가 하나쯤 된다.[* 물론 이것도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논문 저자의 책임이 작지 않다. 교수라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문이라는 매체는 그만큼 확고한 논리로 상대방의 관심을 내가 지금 주장하려는 내용으로 끌고 올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리뷰 내용이 그 원고의 핵심 문제의식에 대해 맥을 못 잡았거나 자기 주장만 일방적으로 늘어놓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그 원고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원고의 저자가 독자를 사로잡는 글쓰기에 실패했다는 얘기도 된다. 물론 이 정도 경지에 도달하려면 석사생 수준에서는 택도 없고, 나무위키에서 정보를 얻는 시간보다 동료 연구자들과의 모임에서 정보를 얻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야 할 것이다.] 분야마다 각각의 비율은 다를 수 있지만, 의외로 정말 내 연구에 당장 도움이 되는 리뷰는 생각만큼 많이 보기 어렵다. [[https://blog.naver.com/editage_kr/221836796122|#]] 단적으로 말하면, 좋은 동료평가는 원고를 가혹하게 쪼아대고 탈탈 털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연구를 촉진하고 개선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동료평가의 일차적 목적은 물론 에디터의 판단을 돕기 위함이지만, 실상 리뷰어에게는 어떤 판단을 할 수 있는 권력이 전혀 없다. 심하게 말하면 그냥 감상문 정도에 불과하다(…). 동료평가가 진짜로 가치 있는 이유는 그 이차적 목적에 있는데, 원고의 저자들을 도와준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흔한 [[학술대회]]에서 포스터 발표를 할 경우조차도, 정말로 도움 되는 코멘트는 [[디스|포스터의 내용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연구자가 뭘 의도하고 연구를 시작했으며, 이 연구가 어떤 점에서 그 의도를 담아내는 데 실패했는지, 그리고 이를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이끌어내는 코멘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석사 1~2학기차 즈음의 [[대학원생]]들이 교내 세미나에서 학술적 비판을 할 때 착각하기 쉬운 부분이다. 석사 1학기차 학생도 흔한 연구의 문제점은 얼마든지 집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 연구를 체계화시켜 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직접 논문을 쓰며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동료평가 결과를 읽으면서 차후 보완방향에 대해 [[큰 그림]]이 그려지고 감을 잡게 되었다면, 그 리뷰어에게는 마땅히 감사를 표할 만하다. 반면 리뷰어가 뭐라고 비판을 잔뜩 했는데도 읽고 나서 머리에 남은 게 없다면, 그건 '''여러분의 문제가 아니라 그 리뷰어의 문제다.''' 좋은 리뷰어는 비판점이 많다 싶을 때 반드시 그 이면에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서 이를 바탕으로 그 비판점들을 묶어낸다. 각 비판 항목들이 'Relatedly, ...' 식의 문두로 엮여 있는 게 그 대표적인 사례다. 소위 '가혹한' 리뷰라고 해도 [[과학 공동체|학문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씩은 '''[[완곡어법]]'''이 통하는 동네고,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흔히 걱정할 법한 그런 '가혹한' 평가들은 오히려 드물며, 그런 표현들을 동원하는 것 자체가 거꾸로 에디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에디터는 분명히 그 원고에서 최소한의 학문적 가치를 읽어냈기 때문에 그걸 리뷰어에게 넘긴 것이기 때문이다. 싸늘한 리뷰는 에디터에게는 오히려 그 원고의 가치를 부당하게 저평가하는 잘못된 리뷰라고 여겨져, 최종 판단에서 철저히 배제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저널 측에서 그 리뷰어에게 다시는 리뷰를 맡기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혹독한 평가라고 해 봐야 대충 'some serious concerns', 아니면 'substantial limitations' 같은 표현이 전부다. 그 이상으로는 저널에게도 저자에게도 하등 좋을 게 없다. 설령 과거 몇십 년 전에는 그런 관행이 있었던 [[학문]]분야라도 대개의 현대 학문 공동체에서는 연구의 생산성 차원에서 점차 지양하고 있으며, 일부 훈훈한(?) 분야에서는 비판이 많다 싶으면 오히려 에디터가 (최종 판단과 별개로) 저자를 격려해 주기도 한다. 간혹가다 글의 논리를 문제삼으면서 'difficult to follow' 류의 비판을 심하게 늘어놓는 리뷰가 있다면 '''자신 있게 거르자.''' 특히나 그 리뷰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장이나 단락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명시하지 않았다면 더더욱 마음에 담아 둘 필요가 없다. 물론 한국의 고등교육의 현실이 학술적 글쓰기(academic writing)에 대한 규율이 취약하다는 문제가 있긴 해도, 해외 대학원생들도 글쓰기 때문에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일부 랩에서는 아예 교수가 Lit Review 전용 [[템플릿]](…)을 만들어서 대대로 공유하기도 하는 실정. 오히려 문제는 논리전개 실력보다는 퇴고 과정에서 생긴 결함 때문일 수 있다.[* 논문은 각 문장들의 내적 논리가 극단적으로 정교하게 짜여진 글이기 때문에, 원고 초안을 아무리 멋들어지게 썼더라도 저자들 사이를 오가며 이곳저곳 뜯어고치는 걸 반복하다 보면 반드시 어딘가에서 아귀가 안 맞는 지점이 발생한다. 그건 정말로 어쩔 수 없다. 마치 아무리 검토해도 어딘가에서 꼭 오류를 뱉어낸다는 [[프로그래밍]]의 고충과도 유사한 점이다. 그래서 적잖은 연구실에서는 원고의 집필을 만만한 박사생 한 명에게 전담시키고 교수들끼리는 수다만 떨곤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경우에도 리뷰어에게 있다. '''리뷰어 하는 일이 원래 알아듣지 못할 논리를 어떻게든 알아듣고서 그걸 알아들을 수 있게 다시 쓰도록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찰떡을 개떡처럼 말했을 때 리뷰어는 저자가 찰떡을 떠올렸다는 걸 캐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찰떡처럼 읽힐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이건 현역 학자들에게도 버거운 지적 활동이다. [[대학생|학부생]] 수준에서 예를 들자면, 수업 중에 이 말 저 말 주워섬기면서 질문했을 때 교수가 "아, 그러니까 자네는 ○○주의의 ●●성이 항상 유효할지 궁금하다는 얘기지? 그거 자네가 암묵적으로 ××접근을 가정하고 있어서 그래" 라고 대신 정리해 주고 원인까지 짚어 주었다면, 리뷰 또한 굉장히 잘 하는 유능한 학자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회사생활]]을 배경으로 다른 예를 들자면, 기껏 보고서를 써서 올렸는데 상사가 "이게 죄다 뭔 소리야, 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처음부터 다시 써 와" 라고 한다면, 그 상사는 아마도 [[무능력한 상사]]일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동료평가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보고서를 잘 쓰기 위해 직장 선배나 사수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오히려 더 가깝다! 물론 바쁜 시간을 쪼개어서 굳이 남의 논문까지 읽고 이해하고 비평하는 고단한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모든 리뷰어는 마땅히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 입장에서는 그 리뷰어가 비판하는 것을 보면 그 이면에 고단함으로 인한 짜증이 있는지 아니면 동료를 위한 선의가 있는지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리뷰어들은 특별히 더 큰 감탄과 존경심을 자아내며, 후학들이 자신도 이렇게 리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리뷰어들도 있다. 여기서의 요지는, 동료평가라는 것이 대부분 가혹한 과정이라기보다는 '''건설적이고 도움이 되고 연구가 급물살을 타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고, 동료평가에 임할 때는 지레 겁먹기보다는 내 연구에 전환점을 만들어 줄 '''좋은 리뷰어와의 인연을 기대해 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투고 전에는 남부끄러운 누더기 원고라고 생각했다가 좋은 비판을 받고 나서 거꾸로 자신감이 확 올라가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