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공정 (문단 편집) == 상세 == 동북공정의 전근대 [[조공]], 책봉, [[위소]], 토사제도 등을 [[수정주의]]적으로 해석하여, 현 중화인민공화국 내지는 [[청나라|청대]] 영토를 기준으로 흥기하고 가변적으로 팽창, 축소했던 중국 왕조들의 영토 및 인접했던 세력들을 모두 지방정권 및 소수민족으로 규정하고 [[중화민족]]이라는 큰 틀에 가두려는 연구 사업이다. 이미 '하상주단대공정'과 '중화문명탐원공정'을 통해 중국문화의 유서 깊음과 우월함을 주장한[* 하나, 국제학계는 물론, 중국 자국 내에서도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실제로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성과가 없어서 중국 역사학계에서도 정치권의 생각없는 행동으로 예산낭비만 했다며 지적을 받았다. 그나마 이 과정에서 나온 성과라고 해봐야 [[요(삼황오제)|요]] - [[순(삼황오제)|순]] - [[우(삼황오제)|우]]의 이상적인 선양 과정이 이상적이라고 하기에는 대단히 수상하다는 것 정도뿐이다. 근데, 이게 하상주대단공정의 성과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게, '중국 정치권에서 하나라 실존 증거 찾음 → 중국 및 국제 역사학계에서 프로젝트가 매우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음 → 중국 역사학계에서 삼황오제와 하나라 관련 사료들을 찾다가 이상한 기록들을 봄 → 요순우의 선양과정이 수상한 것 같다?'의 테크트리를 타서 연구되었기에 정계의 하상주대단공정과 무관하게 나온 성과다. 거기에다가 하상주대단공정은 하나라 유적들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점을 보면, 중국 역사학계 말대로 정계의 일방통행으로 인한 엄청난 예산낭비가 맞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후로 [[타이완]], [[북중관계|조중관계]]의 영향을 받는 [[둥베이]], 민중운동이 잦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통킹 만]] 등 국가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변강지역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런 동북공정의 '''주요논리는 [[속지주의]] 역사관'''에 두고 있다. 물론 속지주의 역사관은 중국만 사용하는 역사관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현 [[튀르키예]]의 강역인 [[아나톨리아]] 반도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종족과 국가들이 흥망성쇠하던 문명의 요람으로, '땅의 역사'인 아나톨리아 지방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의 역사를 나눠서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측의 주장은 순수하게 속지주의 역사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을 비롯한 현지 소수민족에 관련된 역사에 있어서는 부분적으로 '''[[속인주의]]적 관점을 동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닌다. 조선족의 역사는 조선과 고려의 역사도 포함하며 이 조선과 고려, 고구려의 역사까지 자신들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사를 민족보다는 땅에 중심을 두고 기술하여 '''[[민족]]으로는 한족이 명확한 중국인이라고 하면서도''', 현재 중국 영토는 물론 중국화되지 않았던 여러 지역을 포함한 [[청나라]] 영역에서 일어난 '''다른 소수민족들의 역사도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려는 것'''이다.[* 이때 기준이 왜 '청나라'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은 티벳 등에 대하여 과거부터 '본질적으로' 중국의 영토였다는 식으로 접근하며 동북공정 역시 다르지 않다. 보통 속지주의적 역사를 기술은 현 영토 내에 존재해온 과거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동북공정식 접근은 이와는 다른 영토 '본질주의'에 가까운 접근이다. 현 중국 또는 청나라의 영토가 '본질적으로' 중국에 귀속되며, 그 영토 내의 역사가 '본질적으로' 중국에 귀속된다는 입장이다.] 동북공정은 이것의 연장선상으로, 이들이 고구려를 자국사라고 주장하는 건 기본적으로 고구려의 발흥지와 고구려 영토의 일부가 현재의 중국 영토이며 따라서 "둥베이(동북지역) 내에서 과거와 현재 일어나는 일은 중국의 역사"라는 것이 중국학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따지면 한반도 내에서 과거와 현재 일어나는 일은 한국의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 논리로 고려시기에 여진족이 한반도 함경도 지역에서 살았던 일을 근거 삼아, 금나라는 한국의 역사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이러한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중 유리한 부분만 자신의 근거'''로 내세우는, 극도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동북공정이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중 자신이 유리한 점만 취해 논리를 펼치고 있기에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며, 이를 감추기 위해 억지주장를 하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심지어 현재 중국에서는 '''역사상 중국 둥베이 지방 소수민족들이 본래부터 중화민족이었다'''는 [[개소리|주장]]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둥베이 소수민족들을 [[황제(중국 신화)|황제]]에 연결시키며 신화시대부터 이들이 중국인이었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가거나[* 이런 신화 연관짓기가 학술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일지 모르나 동북공정의 프로파간다적 성격을 고려하면 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신화적 윤색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고려]]의 [[태조(고려)|왕건]]조차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실 고려 왕실에서 중세 동아시아에 막대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 당 황실의 후손이라는 족보 윤색이 있었는데 중국 측에서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중국인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하지만 고려 왕실이 그렇게 주장했다고 해도 고려라는 국가의 실체가 바뀐다고 볼 수 없다.][* 참고로 백제인들도 자신들이 [[부여]]에서 이주한 [[고구려]] [[주몽]] 내지는 [[고리국]]에서 이주한 [[부여]]의 [[동명왕]]의 후손이라고 믿었고, [[성왕(백제)|성왕]]은 일시적으로 국호를 [[남부여]]라 칭하기도 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초기 고구려와 백제의 연속성은 전무하며, 영국인들도 자신들이 트로이에서 이주한 왕족 브루투스의 후손이라고 믿은 적 있었고, 심지어 브리튼이라는 이름도 트로이 왕족 브루투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을 그리스나 지중해 역사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윤색의 대상이 되었던 당 황실도 엄연히 호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자]]의 후손이라고 윤색한 적 있다.] 즉, 중국인 다기원론을 긍정하면서도 그 융합의 시기를 고대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에 따라 동북지방 소수민족의 국가를 중국사에 편입시킨다. 또한 역사시대 기술에서도 중국 왕조들의 대외관계를 객관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예속관계를 과장,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원나라|원대]] 이전 [[동아시아|동북아시아]] 국제질서의 특징상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음에도 중국은 이를 중국 왕조 내 지방 정권으로 과대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순수하게 속지주의에 기반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속인주의 논리나 전근대적 역사 해석까지 자신들 유리한 대로 끌어다 쓴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가 새로이 '러시아 민족' 개념을 만들고 자신들의 슬라브적 뿌리에 따라 폴란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의 역사가 자신의 역사라 주장하고 동시에 우랄어계 민족이 섞였으므로 핀란드와 헝가리사도 러시아사이며 퉁구스계 민족도 섞였으므로 청나라도 러시아사이고 투르크족도 섞였으므로 [[돌궐]],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도 자국사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실제 러시아에서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은 결국 러시아의 역사관이 중국의 역사관만큼 아전인수적이지는 않고 오히려 중국에 비해 모범적인 역사관이라고 평가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다민족국가인 중국이 [[하나의 중국]] 지향 하에서 단일민족 이념을 도입해 '''중국인 = 중화민족(Chinese nation / Chinese ethnic group)'''으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이 동북공정이다. '중국인'이란 현재 중국 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며, 이는 다민족 국가인 중국이 중국내 모든 민족을 다 통합하겠다는 내부 집안단속의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이처럼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려있기에 순수하게 속지주의적으로 중국사를 기술한다는 접근만을 하지 않고, 하나의 중화민족이라는 관념 형성에 유리해보이는 속인주의적 시각, 중화적 시각, 수정주의적 시각 등을 모두 끌어다쓰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