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아전쟁 (문단 편집) === 발단 === [[1950년]] [[6월 27일]], [[유엔]]에서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열어 25일에 [[북한]]의 침공을 받은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 결의안을 표결에 부친다. 그런데 여기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반대함에 따라''' [[유엔군사령부|유엔군]]의 한국 참전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실제로는 이날 소련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다. 소련은 당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었던 [[중화민국]](대만)이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면서 무기한 불참하고 있었다.만약 소련이 안보리에 참석했다면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했을테고, 유엔군 파병없이 미국 단독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엔군 대신 달랑 [[미군]] 혼자만 한국을 돕기 위해 [[한반도]]에 투입된다. 1년 뒤인 [[1951년]] 3월, 미 전략공군사령부[* 미국의 핵 전력을 담당하는 기관이다.]의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 중장은 공군특별수사국 빌 프리먼 대령의 보고서를 받고 큰 충격을 받는다. 사령부의 핵전략입안[* 전략공군사령부는 [[1949년]] 5월 취항한 최신형 [[B-36]]기 수십 대를 이용한 '드롭샷 작전(Operation Dropshot)'을 세웠는데, 이 작전은 '''무려 300개의 [[원자폭탄]](그것도 [[히로시마]] 때보다 업그레이드된!)을 소련의 100개 도시에 투하하여 소련 인구의 70%를 단번에 몰살'''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또한 미 군부는 중공군이 한국전에 참전하자 전쟁의 배후조종자인 소련에 대한 총력전 계획인 '셰이크다운 작전(Operation Shakedown)'을 수립했다. 이 작전에 따르면 전락공군사령부는 중국에 핵공격을 가하면 즉시 소련과의 전면전이 일어나기 때문에 미국의 [[메인 주]], [[래브라도]], 아조레스 제도, [[괌]], 영국의 기지에서 출격한 폭격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100개 이상의 원폭을 소련 도시에 투하'''한다는 작전이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소련에게 미래는 없다!'''~~]에 참여하는 [[물리학자]] 존 타우너가 소련의 첩자라는 것이었다. 타우너는 수사국에 체포된 뒤에 자신이 빼낸 자료를 [[영국]] [[영국 비밀정보부|MI6]](비밀정보부)의 워싱턴 주재 책임자 킴 필비에게 넘겼다고 자백했다. 타우너는 심문 후 검찰에 넘겨질 것이라는 프리먼 대령의 말을 듣고 르메이 사령관은 검찰에 넘기지 않는 대신에 [[이중간첩]]으로 만들도록 지시한다. 이 시기 [[더글러스 맥아더]] 미 극동군 총사령관[* 원래 역사에서 이 시기의 맥아더는 '미 극동군 총사령관 겸 유엔군 사령관 겸 일본 점령 연합군 최고사령관([[GHQ]])'의 3개의 관직을 겸했던 인물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소련 유엔 대표의 거부권 행사로 한국에 유엔군이 파병되지 못했으므로 유엔군 사령관 대신 미 극동군 총사령관이라고 칭하고 있다.]과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의 사이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4월 10일 아침, 아침 늦게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선 트루먼 대통령에게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면서 장시간에 걸쳐 보고한다. 그 보고의 내용은 다름아니라 스탈린의 심복인 [[라브렌티 베리야]]가 조만간 [[일본]]을 비밀리에 방문할 것이고, 그의 회담 상대는 '''[[맥아더]]'''로 해 달라는 내용의 암호전문을 주미 소련대사를 통해 백악관에 보냈다는 것이었다. 또한 베리야는 전문에서 "지난 3월 24일에 귀국의 맥아더 원수는 적의 최고사령관과 만날 의향이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는데, 현재 한반도에서 싸우고 있는 공산군의 최고사령관은 [[펑더화이]]나 [[김일성]]이 아니라 '''나 [[베리야]]요'''"라고 밝힌다. 보고가 끝난 뒤, 이튿날에 집행될 예정이던 맥아더의 해임이 '''무기한 연기'''된다. 오랫동안 맥아더의 해임을 주도했던 애치슨은 빡친 나머지 그날 밤 폭음을 했다가 다음날 아침 서재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사인은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실제로 애치슨 국무장관은 [[냉전]] 초기에 [[유럽]]을 중시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당시 애치슨은 [[오마 브래들리]]에게 “우리는 지금 엉뚱한 나라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겁니다. 진짜 적수는 소련인데 얼토당토않게 중국과 대치하고 있잖아요."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유럽 중시 외교정책 때문에 나온 것이 바로 '''[[애치슨 라인]]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변화가 시작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