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항일연군 (문단 편집) === 소멸 === [[팔로군]]과는 다르게 [[1941년]]을 전후로 [[관동군]]의 치안숙정공작으로 사실상 소멸되고 만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동북지방이 매우 추운 지역이라 생존환경이 열악했고, [[일본]]의 통치기간이 길어서 통제가 엄격했고, [[일본군]]이 집요하게 항일연군과 농민들의 사이를 분리시켰고, 1930년대 후반 [[일본]]과 [[소련]]과의 분쟁([[1938년]]의 [[장고봉 사건]], [[1939년]]의 [[노몬한 사건]])으로 관동군의 치안이 강화되고 병력이 증강된 것 등의 여러 원인들에 의해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윤휘탁, 「항전시기의 화북과 동북, 항일전술과 투쟁환경의 비교고찰 -팔로군과 동북항일연군의 상이한 운명과 관련하여-」(2003)] 항일연군 1~3로군의 지도부와 잔여 병력들의 상당수는 1941년까지 [[소련]] 영내로 피신하여 [[소련군]] 휘하의 제 88국제여단으로 편입되었는데, 여단내 조선인 대대의 대대장을 맡던 사람이 [[김일성]]이었다. 여단장은 [[저우바오중]]으로, 대체로 동북항일연군 때의 조직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