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아일보 (문단 편집) == 성향 == [include(틀:한국 보수진영 관련 문서)] 21세기 기준 동아일보는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신문 중 하나이다. 같은 보수언론으로 평가받는 [[조선일보]]가 주로 북한 같은 안보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중앙일보]]가 경제 이슈를 좀 더 다루는 데 비해 동아일보는 문화 분야를 더 다루는 경향이 있다는 인식이 있다. 실제 창간 당시 사시(社是)도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였다. 보수주의 신문으로 분류되면서도, [[모두까기]] 또는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보수 정치계도 비판하는 [[칼럼]]이나 사설을 게재하는 경우도 꽤 잦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517694?sid=110|예시 1]]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530051?sid=110|예시 2]]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530295?sid=110|예시 3]]] 이때는 홈페이지 기사 댓글에서 강성 보수 지지층으로부터 기고자에 대한 비난이나 똥아일보, 사설을 쓴 기자는 누구냐 같은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민주당계 정당]]이나 [[진보정당]]에 호의적이지는 않다.[* 한편 [[정치극단주의]]가 공고해지고 있는 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논조 때문에 되려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성향이 한쪽으로 분명한 충성 독자들은 보다 논조의 색깔이 더욱 분명한 [[조선일보]], [[한겨레]] 등지로 옮겨간다는 것.] 그러나 사실 2001년 세무조사 사건 이전까지는 민주당계 지지 성향을 가지고 있던 때도 있었다.[* 사실 동아일보는 대북정책문제, 노동문제 등에선 과거에도 진보보단 보수에 가까운 신문이었기에 정도의 차이일 뿐 진보 신문은 아니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런 인식은 사실 일부 독자들에겐 현재 진보 언론으로 분류되는 경향신문 등도 종종 듣는 소리인데다 민주당계 정당부터가 북미식 리버럴에 가깝지(애초에 민주당도 처음은 보수정당으로 시작했고 김성수가 그 민주당계의 주요 멤버 중 하나였다) 유럽식 사민주의 진보정당은 아닌지라, 어찌됐든 당시 한국식 진영 정치에선 진보(정확하겐 친민주) 신문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었다. 김성수가 이승만이랑 사이가 틀어져 반독재 운동을 하다 사망한 이력도 있다보니 확실히 독재 정권이랑은 거리감이 있는 신문사긴 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이 깊었는데, 애초에 동아일보가 [[호남]]과 연관이 있는 기업이다보니 김대중과 연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낙연]]이 기자 생활을 동아일보에서 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고[* 이후 이낙연은 자신을 아끼던 김대중을 따라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다만 오늘날 동아일보는 보수 성향이다 보니, 이런 과거를 모르는 안티들은 이낙연의 과거 전력을 가지고 진보의 적이라고 호도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알면서 선동하기도 한다.--], [[서중석]]이 10여 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나중에 한겨레 신문을 창간하는 [[송건호]]도 원래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6개월 정도 했었다. [[유시민]]이 정치 기고를, [[진중권]]이 2000넌대 중반 문화면에 기고한 적도 있다. 동아일보는 언론탄압이 일상이던 시절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찍혀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을 겪기도 했으며,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5월 19일부터 5일간 [[전두환]] 정권의 검열에 저항하는 의미로 사설을 싣지 않았고, 언론통제 국면 속에서도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지면을 할애하여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비판한 바 있었다. 실제 [[6월 항쟁]] 당시에도 시위대들은 동아일보를 읽었고 당시 친군부 성향이던 경향신문은 발견 즉시 불 태우는 수준이었다.(...)[* 2017년 말 개봉한 영화 [[1987(영화)|1987]]에서도 동아일보가 등장하며 엔딩크레딧에도 로고가 나온다. 사측에서도 이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듯 하다.] 이후에도 동아일보는 지역기반이 같은 김대중을 적극 지지해 줬으며, 김대중 정권 초기까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대중도 동아일보의 창업주였던 [[김성수(1891)|김성수]]를 적극적으로 감싸줬는데, 실제로 김대중은 1980년대 말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동아일보의 창업주이자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하여 [[고려대학교]]로 발전시킨 [[김성수(1891)|김성수]]를 [[친일반민족행위자|친일파]]라며 규탄했을 때 김성수를 옹호해 주면서 그 고대생들이 너무 과격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3년 8월 15일 광복 48주년 특별기고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인촌[* 김성수의 호.]은 비록 감옥에 가고 독립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독립투쟁 못지않게 우리 민족에 공헌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 인촌은 동아일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을 계몽하여 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큰 힘을 주었다. 그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 인촌은 오늘의 [[중앙고등학교|중앙고]]와 [[고려대학교|고려대]]를 운영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일제 치하에서 이 나라를 이끌 고급 인력을 배출, 우리 민족의 내실 역량을 키웠다. > 인촌은 또한 근대적 산업 규모의 [[경성방직]]을 만들어서 우리 민족도 능히 근대적 사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했다. >---- >[[김대중]], [[1993년]] [[8월 15일]], 광복 48주년 동아일보 특별기고 2000년 3월 31일 동아일보 창간 8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는 "인촌 선생은 민족 민주 문화주의 3대 강령을 내건 동아일보로 우리 민족의 앞날을 이끈 탁월한 스승이자 지도자였다", "동아일보의 3대 사시(社是)는 그때뿐만 아니라 21세기를 맞는 새천년에도 참으로 합당하다."라고 동아일보와 인촌 김성수를 칭찬했다. 김대중이 1987년 대선에서의 실패 이후로 여러 차례 위기에 빠졌음에도 제1야당을 전두지휘하는 인물이자 차기 대권주자로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호남]]권에서의 압도적인 지지와 함께 유력 언론이던 동아일보가 김대중을 지지했기 때문도 있었다. 90년대 당시 조선일보 등 대형언론사나 방송사들의 논조를 보면 김대중에게 친화적이지 않던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동아일보와 친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김대중과 야권이 버틸 수 있었고, 그 덕에 정권교체도 이루었다는 것이 결코 농담만은 아니었던 것.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사이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는데, 동아일보는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도 잘못됐다 싶은건 비판을 이어나갔는데,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2001년 김대중 정권은 언론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선다.[* 애초에 언론사 세무조사는 군부독재정권 때부터 이미 5년마다 정기적으로 행해지고 있었고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 시절에만 중단되었었기 때문에 기업이라면 원래 받아야 할 세무조사를 시행한 것 뿐이었다. 다만 당시 김대중이 추진하던 대북사업 관련 기업에는 전례가 없던 사업이니만큼 일단은 세무조사를 자제하라고 국세청장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04/2008040401377.html|지시]]했다거나 기자 성한용의 2001년 저서 "DJ는 왜 지역갈등 해소에 실패했는가"를 보면 당시 집권층 일각에서 특정 신문사들 이름을 거론하며 "당장 작살내겠다", "두세 달 내에 그냥 안 둔다. 국세청 상속세로 뒤집어버리겠다."처럼 정권의 호응도에 따라 세무조사의 강도를 조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발언들도 있긴 했다. 물론 이 대상에 동아일보가 포함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이런 류의 카더라 기사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연례행사처럼 떠도는 소리지만, 결과적으로 이 세무조사가 양쪽의 사이를 벌려놓은 매개체가 되긴 했다.] 그리고 이 세무조사 때 동아일보 회장의 부인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모욕감을 느껴 투신자살'''하는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1/07/15/2001071570163.html|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과 동아일보의 관계가 확 틀어지게 된다. 21세기 들어 동아일보는 친재벌 성향도 드러내는데, 그 배경에는 [[삼성그룹]]이 있었다. 뭔 소린고 하면,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동아일보는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가 [[삼성생명]]으로부터 500억 긴급대출을 받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대출의 배경에는 삼성 오너 [[이건희]]와 동아일보 오너 [[김병관(언론인)|김병관]]의 사돈 관계가 있었던 것.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김재열이 1999년 이건희의 2녀인 [[이서현]]과 결혼한 것이다. 김재열은 이후 [[제일모직]] 사장, [[삼성엔지니어링]] 경영기획총괄 사장을 거쳐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이 된다. 이 때문에 [[중앙일보]]만큼이나 삼성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언론으로 꼽힌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중앙일보는 이미 [[홍석현]] 일가 체제로 독립한 상태긴 하다. 2010년대 중앙일보 계열 JTBC가 박근혜 정권을 거세게 비판하자 박근혜가 삼성 이재용을 불러 삼성이 정치에 개입하려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는데, 이재용은 자신을 이렇게 질책한건 아버지 빼곤 박근혜가 처음이라며 이때 이미 중앙일보는 삼성에서 독립한 계열사인데 왜 나한테 그걸 따지냐고 의아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외환위기로 인해서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되고 개인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대부분의 가정이 돈이 쪼들리면 제일 먼저 신문을 끊는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 직후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망하기 직전까지 몰렸고, 당시 [[한화그룹]]은 가지고 있던 [[경향신문]] 지분을 모두 포기하고 그냥 독립시켜 버린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몇몇 기업 광고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게 되었다. 말 그대로 비판 기사 한 번 썼다가 해당 기업에서 광고 빼버리면 회사가 흔들리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눈치를 보면서 알아서 기는 행태를 보인다는 오해를 받았다.[* [[시사IN|시사인]] 창간으로 이어진 2005년 [[시사저널]] 파업 사태도 삼성 비판 기사를 경영진이 (연락도 안 왔는데) 알아서 잘라내면서 촉발된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오해는 오해다. 기업 오너 일가 리스크가 보도된 기사들이 거의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만 봐도 진실은 엄연히 권력보다 위라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에는 2000년대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 등장 때 특집기사로 스포트라이트를 주기도 했으며[* 물론 뉴라이트 사상 자체의 모순과 한계로, 2020년대 와선 버린 자식 취급 중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기 보수 노선이 상당히 강조되면서 이시기에는 조선일보를 안좋은 의미로(...) 뛰어넘는다는 일각의 평까지 듣기도 했다. 이는 상대성은 있지만 어쨌든 [[박근혜]] 정권 때도 계속되었고, [[제19대 대통령 선거|19대 대선]]에서도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를 거드는듯한 기사가 제법 나왔다. 그러다 2017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초기에는 비판의 수위도 상당히 낮아져서[* 비판을 넘어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식의 일종의 아부성 사설도 실릴 정도였다.] 과거 친민주당 성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동아일보 지령 3만호 기념 [[https://news.donga.com/3/all/20180126/88370670/1|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이전보다 떨어진 2018년 말 정도부터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민주당 정권에 비판적인 보수 신문으로 돌아왔다.[[https://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001/3/70040100000001/20190201/93958084/1|#]] 다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전두환에 매우 [[https://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001/3/70040100000001/20190310/94472392/1|비판적]]이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조중동]] 중에서 제일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동아일보는 2022년 5월 9일부터 7월 8일까지 35건의 윤석열 대통령 비판 논조의 사설을 게시하였는데, 이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각각 10건의 비판 사설을 게시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이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6/0000113834?cds=news_edit|#]] 이후에도 윤석열 정부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자주 언급되는 것들을 몇 개 꼽자면 [[친윤]]-[[검찰]] 출신의 [[윤석열 정부/평가/정치/인사 분야|대거 등용]], 여야 합치 의지 부족, 대통령실의 지속적인 여당 간섭, 대국민 정책 홍보 부족, [[윤석열 정부/평가/사회·문화#s-5.5|정책 일관성 부족]], [[윤석열/비판 및 논란/발언|거친 발언]],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 중단이나 전기요금 인상 유보 등이 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좌우 안 가리고 모두까기 중이다. 외교 분야에서는 한미동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섬세한 실리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대일 외교에 대해서는 [[강제징용 피해배상금 제3자 변제안|윤 대통령의 결단]]에 발맞춰 일본은 [[김대중-오부치 선언]] 발언 재언급(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 마땅한 움직임을 보이라는 논조의 글이 꾸준히 게재되었다. 한편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는 사설을 통해 일본 정부의 낮은 신뢰도도 문제였지만 우리 정부가 "그간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만 할 뿐 다른 의견에 대해선 괴담이나 선동이라고 일축하기에 바빴다"며 [[양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30824/120856532/1|#]] 이렇게 2017년 이후로 보수 언론으로서의 정체성을 많이 잃고 보다 중립적인 위치로 논조가 옮겨가다 보니, 좌파로부터는 여전히 [[조중동]]의 하나라고 비판을 받고 우파로부터는 [[한경오]]와 다를 바 없는 좌파 신문이라고 비판을 받는 웃픈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