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주 (문단 편집) ==== 소개 ==== [[전국시대]]에 이르러 주나라 제31대 왕 [[주고왕|고왕]]은 형 [[주사왕|사왕]]을 죽이고 스스로 즉위했다. 그리고 다음해에 동생 희게를 하남에 봉해 서주공국을 만들었고 희게는 사후 서주 환공 시호를 받았으며, 작은 아들 희반은 공 땅에 봉해 동주공국의 초대 군주가 되었다. 이와 같이 원래의 수도인 성주(낙읍) 부근 밖에 지배가 미치지 않게 된 주왕국의 영역은 [[서주#s-1.2]]공국, 동주공국으로 나뉘었으며, 직할령이 아예 없어진 주왕실은 서주공국에 얹혀살게 되었다. 때문에 중국 전국시대의 시작을 고왕으로 보는 의견도 있는데 나름 일리 있는 지적이다. 물론 서주공국과 동주공국은 아예 왕칭하면서 주 왕실을 무시하던 전국칠웅과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었기에 주 왕실을 예우하였고 주 왕실은 이 두 공실에 대해선 발언권이 있었으나, 문제는 안 그래도 약소국인 주 왕국이 둘로 쪼개진 데 있었다. 한편 서주니 동주니 하는 이런 명칭들은 다 후대 역사가들이 구분을 위해 붙인 것일 뿐 당대 정식 국호는 어디까지나 주(周)였고, 당대 다른 나라 그 누구도 서주나 동주로 부른 바 없었다. 그러나 서주공국과 동주공국은 정말로 국호가 '서주', '동주'였음이 특이사항이다. [[서주]]공국이 [[진(영성)|진(秦)나라]]에게 공격 받아 기원전 256년에 망하게 되는데, 이는 주난왕이 합종에 동조하여 반진 연합군에 서주공국 군대를 파병한 게 원인이었다. 이 정치적 결정은 서주공국 군주가 한 게 아니라 주난왕이 주도적으로 한 것이기에, 비록 실권과 통치는 서주공국 군주가 하였으나 주난왕의 정치적 영향력이 없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주난왕]]을 비롯한 주왕실 및 서주공실의 왕족들은 진나라로 압송되고 주나라 왕 자리 자체는 일단 그 단계에서 없어졌으나, 동주공국은 비록 그 군주의 작위가 군(君)으로 강등되었을망정 7년은 더 버텼다. 그러나 결국 진(秦) [[장양왕]] 원년(기원전 249년), 당시 진나라의 [[상방]]이었던 [[여불위]]의 공격을 받아, 기원전 249년에 멸망했다. 이와 같은 체제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대단히 생소하겠지만, 말기 비잔틴 제국을 예시로 든다면 가장 이해가 좋을 것이다. 말기 비잔틴 제국 또한 콘스탄티노폴리스만 로마 황제 직할령이었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선대 로마 황제가 부득이하게 분봉해서 만든 데스포데스[* 직역하면 '전제군주'인데, 그냥 일종의 왕작 내지는 대공이라고 보면 되겠다.]들이 통치하고 있었다. 다른 점은 그나마 로마 황제에겐 직할령이 있긴 했다는 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