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두정갑 (문단 편집) == 역사 == [[한반도]]에서는 [[몽골 제국]]을 통해 [[고려]] 말 시기에 전래하였다. 즉, 두정갑의 원류는 북방민족의 갑옷이라고 할 수 있다. [[명광개]](明光鎧)로 대표되는 [[중국]] 갑옷과는 확연히 다른 양식인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여기에 지리적인 특성 상 한반도 국경이 있는 북방 지역에서 투닥거리는 일이 많았으므로 추운 환경에 맞게 털과 가죽으로 덮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몽골]]이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를 지배했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이러한 두정갑 형태의 갑옷이 일반화되었다. 중국에서도 [[명나라]] 시기부터 사실상 주력 갑옷이었으며 [[청나라]] 시기부터 두정갑의 비율이 매우 높아지기 시작한다.[* 사슬 갑옷 등 다른 갑옷들도 같이 사용했다.] 중국에서 발간한 갑옷 관련 서적에서는 [[당나라]]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대십국시대]]와 [[송나라]] 시기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갑옷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스프리 고증화에서 중국 송나라 갑주를 고증하면서 일반 찰갑 겉에 천을 씌운 형태로 고증한 바는 있다.] 만약 당나라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을 몽골이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퍼뜨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중후기로 들어서면서 두정갑이 조선 갑옷의 거의 대부분이 되었고[* 의장용으로 [[두석린갑]] 등도 존재하긴 했지만 전투용으로는 두정갑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찰갑]]이나 [[쇄자갑]] 등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점점 화기가 발달하고 조선군도 화기 위주로 편제를 짜면서 두정갑 또한 점점 쇠퇴했다. 결국 구한말 군제개혁 이후로 군복으로 복제가 바뀌면서 갑주 착용을 폐지하게 되고 개항과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두정갑 유물들이 해외로 여럿 반출되었다.[* 한국 사극에서 한 때 두석린갑이 고증과 맞지 않게 조선 전중기 배경 사극에서 많이 나왔던 것도 두정갑 유물들이 해외로 대거 반출되어 한국에 두정갑 유물보다 두석린갑 유물이 더 많이 남은 상황이 영향을 준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