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디오니소스 (문단 편집) == 숭배 == [[파일:델로스섬_디오니소스_모자이크.jpg]] [[델로스]] 섬 벽화에서 발견된, [[다이몬]][*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의 [[신화]] · [[종교]] · [[철학]]에 등장하는 인간과 신들 중간에 위치하거나, 죽은 영웅의 영혼 등을 가리킨다. 한국어 번역의 예로는 [[귀신]], [[악령]], [[정령]] 등이 있다.] 형태의 [[날개]]가 달린 디오니소스의 모습. 아마 그리스 [[헬레니즘]] 시대에 그려진 모자이크로 추측된다.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종종 "해방자"라는 의미의 "엘레우테리오스"로 불리기도 하였다. 디오니소스의 포도주, 음악, 그리고 황홀한 춤이 그의 신도들을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디오니소스 신앙은 여성, 노예, 외국인 등과 같이 그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하층민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 사회적 제약을 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중에는 여성 신도들이 매우 많았다. 일부 신화 학자들은 디오니소스가 공식적으로 아테네에 통합된 것이 기원전 561년에서 527년 사이쯤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5brAr51ip_k|#디오니소스 신화를 정리한 영상]] 디오니소스 신앙은 어느 순간 그리스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당시 그리스 평민들은 귀족과 관습 아래에서 정해진 대로 살다가 가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 신앙은 신들림 상태를 내세우는 신앙이었다. 그래서인지 하층민 계층에서 [[광신도]]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남자들보다 더 천대받던 여자들에게 더욱 널리 퍼졌다고 하는데 이들을 '''"바카"'''[* [[라틴어]] BACCHA, 직역하면 '''여자 바쿠스'''라는 뜻이 된다. 신앙의 발상지는 트라키아 지방이라고 한다. 이 바카들의 디오니소스 축제가 [[연극]]의 시초였다고 한다.] 혹은 '''"마이나데스"''''라고 부른다. 이 바카들이 신들림 상태에서 내뿜는 광기가 공포와 경외감을 불러 일으킬 만큼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바카들은 한 번 술에 취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 횃불을 켜고 산이나 숲을 배회하며 마주치는 것은 모두 찢어 죽였다.[* [[오르페우스]]를 찢어죽인 여인들이 바카들이었다는 설도 있다. 자세한건 해당 문서 참고.] 광기와 이성 사이를 넘나드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이국적으로 여겨졌듯[* 실제로 와인 자체가 [[레반트]] 지방에서 제조법이 전래된, 그리스 입장에서는 이국의 술이었다.], 여성의 지위가 극도로 낮았던 [[그리스]]에서 광기와 폭력으로 무장한 여성 광신도들은 이국적인 공포의 대상으로 비춰졌다. 이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그리스 문명은 디오니소스 신앙을 체제 내에 편입시켰다. 아폴론 신전 옆에 모시고, 2년에 한 번씩 [[축제]]를 벌이는 형태로 받아들여, 광기 역시 맹목적인 것이 아닌, '''정상적인 노동으로 회귀하기 위한 잠깐의 질서 파괴'''(즉 스트레스 해소)로 받아들여지게 되어 평민들에게 매우 높은 지지를 받게 된다. [[아테네]]의 평민들은 [[노예]]가 아닌 그럭저럭 존중받는 신분이었기에 디오니소스의 위치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예언]]과 [[치유]]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인간에게 미래를 예언하는 힘을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함께 델피 신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3월]]부터 [[10월]]까지의 델피 신전의 주인은 아폴론이고, 이후 아폴론이 델피에서 잠시 떠나는 [[11월]]부터 [[2월]]까지는 디오니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신전에 기거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치는 축제인 대 디오뉘시아 제전은 그리스 최대의 희·비극 경연대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비극'을 뜻하는 영단어 tragedy가 '[[염소]]의 노래'를 뜻하는 트라고디아를 어원으로 가지는 것도 염소가 디오니소스의 추종자였던 반인반양의 신 사튀로스를 의미하기 때문. [[프리드리히 니체]] 가라사대, [[아폴론]]의 정연한 꿈과 디오니소스의 흐릿한 현실이 합쳐져서 '''[[비극]]'''이 되었다. 그리고 역사적 팩트를 보면 디오니소스 교단의 종교행사인 대 뒤오니시아 제전에서 염소를 바치며 부르던 노래인 디튀람보스가 현대의 비극으로 발전하였다.[* 김헌,'인문학의 뿌리를 읽다',이와우,2016,p103] 즉 '''실제로도 얼추 맞다.'''[* 니체는 고전문헌학자였으므로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대 뒤오니시아 제전에서 공연된 비극 중 하나인 박카이는, 테베의 왕 펜테우스가 민중 사이에서 크게 퍼졌던 디오니소스의 숭배를 독단적으로 금지하자 이에 반발한 신도들이 그를 갈갈이 찢어 죽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신도 중에는 어머니[* 디오뉘소스에게는 이모가 되는 아가우에. 몰래 숨어서 디오뉘소스 제전을 살펴보던 펜테우스를 광기에 빠진 신도들이 멧돼지(혹은 사자)로 착각하여 끌어내 사지를 찢어 죽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가우에는 환각에 빠진 채 아들의 머리를 사자의 머리로 착각하고 지팡이에 꽂은 채로 행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며, 펜테우스의 행동이 '신에 대한 오만'으로 정당시되어 처벌됐다는 점에서 디오니소스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펜테우스 역시 세멜레처럼 전쟁의 신 아레스의 노여움을 산 카드모스의 후손이다.(손자) 재밌는 것은 이런 연계와 디오니소스가 카드모스의 자손(딸 세멜레)에게서 태어난 것를 보면 디오니소스와 펜테우스는 친척지간이 된다는 점이다.] 고대 [[크레타]]에서는 디오니소스와 아내 아리아드네를 기리기 위해 남성들이 [[여장]]을, 여성들이 [[남장]]을 하며 축제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디오니소스를 열렬하게 떠받치는 여성 광신도들이 [[남장]]을 하며 축제를 열었다고 한다. 프리기아의 [[지모신]]인 [[키벨레]]와 은근 유사점이 있다. 하층민들로 구성된 신도들이 요란스러운 춤과 노래를 부르며 의식을 벌인다는 점, 고양이과의 이국적인 큰 짐승 무리[* 표범, 치타, 사자, 호랑이 등.]들이 마차를 끌고 다닌다는 점, 두 신 모두 비헬레니즘적인 신이라는 점 등에서 고대에선 두 신의 의식이 결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