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땅콩 (문단 편집) == 역사 == 본래 [[남아메리카]] [[안데스]] 동쪽 지역이 원산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남미 원주민]]들이 다양한 형태로 먹어왔다. 개중에는 땅콩을 으깨 찐득하게 만들어 발라먹는, 후대의 [[땅콩버터]]와 비슷한 음식도 있었다. 페루의 모체(Moche) 등 많은 선콜럼버스 시대 문화의 예술작품에서 땅콩이 묘사되었고, 이후 원주민들 간의 무역을 통해 재배 지역이 중앙아메리카까지 넓어졌다. [[아즈텍 제국]]을 세운 나와인들은 땅콩을 틀랄카카우아틀(tlalcacahuatl)이라고 부르며 널리 재배하였고, 유럽인들이 땅콩을 처음 접한 곳도 테노치티틀란 시장에서였다. 이후 [[대항해시대]] 당시 남아메리카를 탐사하던 [[유럽]]인에게 발견된 후,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또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점[* 땅콩도 콩과 식물이다보니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하고 있다.]이 발견되어 50여 년 만에 전 세계로 퍼졌다. 땅콩과 관련해 유명한 인물 중에는 [[http://ko.wikipedia.org/wiki/조지_워싱턴_카버|조지 워싱턴 카버 (1864~1943)]] 박사가 있다. 본래 흑인 [[노예]]로 [[조지 워싱턴]]을 존경한 그의 주인이 그에게 '조지 워싱턴'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으며[* 조지 워싱턴 전 미국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노예제에 대해 별다른 법안을 내놓치 않았지만, 대통령 퇴임 이후에 사망할 당시 자신과 아내가 죽을 경우 노예들을 해방한다는 유언장을 남길 정도로 노예제를 탐탁치 않았던 사람이었다. '''사실 이 당시에는 노예제가 경제적인 가치가 떨어져가던 때라 좀더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노예제가 사라지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면화의 대량재배가 시작된 뒤로는...] 훗날 노예제도가 폐지되자 양자로 삼아 '카버'라는 성을 물려준다.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대학 졸업 후 농학, 미생물학 석사를 딴 그는 흑인 교육기관에 농업학 교수로 취업한다. [[앨라배마]] 주에 위치한 [[흑인대학]]인 터스키기 대학(Tuskegee University)[* 오늘날 의료와 체육분야에서 명성을 남긴 명문대로 발전하지만, 동시에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이라는 흑역사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이다. 당시 미국 남부는 대량의 [[목화]]를 재배하던 때라 땅이 온통 척박해져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는 지경이었다. 이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지력을 회복시키는 [[토마토]], [[양파]], [[감자]], [[고구마]], [[콩]], 땅콩 등을 학생들과 농민들에게 전파하고 특히 땅콩의 전파에 힘을 쏟았다. 이에 지력이 회복되고 땅콩 생산량이 늘어난 것까지는 좋았으나 과잉 생산된 땅콩이 남아돌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바구미들이 창궐하면서 목화밭을 초토화시킨다. 주 작물인 목화는 바구미들이 전부 빼앗아먹고 지력을 회복시키고자 심은 땅콩은 처치 곤란이 돼버린 상황. [[땅콩버터]]가 개발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땅콩은 간식으로 소량 소비하는 걸 제외하면 소나 돼지 같은 가축들의 사료로나 쓰이는 작물이었다. 이에 카버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땅콩버터]], [[마가린]], [[식용유]], [[비누]], 윤활유, 샴푸 등 무려 300여 가지에 이르는 제품을 땅콩을 응용해 만들어내서 땅콩이라는 작물이 상당히 쓸모있는 작물이란 것을 [[증명]]해냈다. 심지어 [[다이너마이트]]의 재료인 [[니트로글리세린]]의 원료 중에 땅콩이 있다. 이 덕분에 남아돌던 땅콩의 수요가 계속 발생하고 미국의 경제는 견실해졌다. 실제로 카버가 직접 '발명'한 것은 [[땅콩버터]] 정도고 그나마도 이견이 있다. 땅콩에서 기름을 짜는 것은 이미 그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이를 응용한 제품들도 이미 이전부터 다른 재료로 만들어지던 것들이며(마가린은 [[나폴레옹]] 때 발명되었고, [[비누]]하고 윤활유는 [[고대 로마]] 때부터 존재했다.) 현대에는 다른 기름으로 더 훌륭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어 굳이 땅콩기름을 쓰는 곳은 볶음요리를 정말로 사랑하는 중국 정도이다[* 미국에서는 [[FIVE GUYS]]가 감자튀김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버의 연구의 의의는 땅콩 기름의 다양한 응용법을 찾아서 침체됐던 미국의 경제를 되살리고 땅콩이 주요 작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했다는 것에 있다. 조지 워싱턴 카버는 이런 장대한 연구 성과를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한 푼의 로열티도 받지 않고 오직 연구에만 몰두했고, 이 덕분에 카버는 현대 미국 남부에서 백인과 흑인을 가리지 않고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사후 1977년에는 '위대한 [[미국인]]' 명예의 전당에, 1990년에는 '위대한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 카버가 땅콩 관련 상품을 여러가지 개발하긴 했지만, 땅콩이 진짜 빛을 보게 된 것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덕분이었다. 경기를 관전하면서 주전부리가 필요했던 관중들이 땅콩을 엄청나게 소비했던 것. MLB의 유서 깊은 응원가인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의 가사 중에 'Buy me some peanuts and [[크래커 잭|Cracker Jack]]'이 있을 정도로 대중화 되었다. 그 때문에 [[야구장]]마다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이 버린 땅콩 껍질 치우는 게 매우 고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땅콩 껍질만 따로 청소하는 [[청소기]]를 만들어 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