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라슈 (문단 편집) === 프랑스 격퇴 === [[파일:라라슈 프랑스 모로코 1765.jpg|width=850]] 1765년 프랑스 함대의 라라슈 포격 [[7년 전쟁]]으로 아메리카 식민지를 잃은 프랑스는 [[마그레브]], 특히 모로코 해안에 관심을 기울였다. 명분상으로는 전시를 틈타 유럽 상선들을 약탈하던 [[바르바리 해적]] 퇴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새 식민지 개척이 목표였다. 1765년 6월 프랑스 함대는 10일간 [[살레]]를 포격했으나 함포의 사정거리가 항구에 미치지 않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메디야 (케니트라)로 향했으나 항구에 건물이 하나 뿐인 것을 보고 다른 목표의 모색에 나섰다. 21일 52개의 함포를 갖춘 우티르를 포함한 16척의 프랑스 전함과 수 척의 갤리엇 등으로 구성된 프랑스 함대는 뒤샤포 드 베네 지휘 하에 라라슈 앞바다에 나타났다. 25일 저녁 프랑스 함대는 하구에 정박 중이던 모로코 전함과 성채를 동시에 공격하려 했으나 풍랑 때문에 공격을 다음날로 미루었다. 26일 프랑스 함대는 라라슈의 해안 포대를 기습, 파괴하였고 항구의 선박들을 불살랐다. 다음날 새벽 프랑스 함대는 하구의 모로코 전함을 공격하여 방화에 성공했으나 수비대 측이 불을 끄는데 성공하였다. 이후로도 프랑스 측은 해당 전함을 공격하려 했으나 파도 방향이 바뀌고 강물이 줄어 접근이 어려워졌다. 뒤샤포 제독은 휘하 함장들과의 회의 끝에 소형 선박들에 병사들을 태워 공격하기로 하였다. 함대를 최대한 하구 근처까지 근접시키고 정오까지 라라슈 시내를 포격한 후 오후에 소형 선박들을 항만 건물 파괴조와 지원조로 나누어 파견하였다. 프랑스측 보트들이 하구에 진입한 순간, 바위 뒤에 엄폐하고 있던 모로코 선박들이 나타났고 양측은 포화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선봉의 갑작스러운 정지 때문에 뒤엉킨 프랑스 보트들은 이내 모로코 선박들에 포위되었다. 그 결과 16척의 프랑스 선박들 중 7척이 나포되었고, 200 ~ 300명이 전사했으며 48명이 포로가 되었다. 모로코 측은 30명의 전사자를 내었다. 라라슈 원정은 프랑스 해군 사상 최악의 실패 중 하나로 귀결되었고, 1767년 프랑스와 알라위 왕조는 무역 협정을 맺으며 적대 관계를 청산하였다. 다만 포로들은 석방되지 않았고, 당시 한창 건설 중이던 [[에사우이라]] 공사 현장에 투입되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