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란츠크네히트 (문단 편집) == 역사 == 막시밀리안 황제의 명령을 받아 실제로 용병대를 창설한 사람은 [[제국군(신성 로마 제국)|신성 로마 제국군]] 장군 게오르크 폰 프룬츠베르크(Georg von Frundsberg)[* 민델하임의 영주이기도 했는데 이 영지는 이 사람의 후손이 후사 없이 죽음에 따라 제국에 합병되지만 1705년 '''주권을 가진 공국'''으로 격상된다. 참고로 이는 [[존 처칠]]이 블레넘에서 프랑스군을 전멸시켜 오스트리아를 구함에 따라 '''존 처칠의 제국 내 영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소멸한다.]였다. 란츠크네흐트를 창설하고 병사들을 자식처럼 아낀 것으로 인해 프룬츠베르크는 '란츠크네흐트의 아버지' 라고도 불렸다. [[파비아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여 란츠크네흐트 지휘관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이로도 이름을 날렸다. 훗날 2차 세계대전 때 [[슈츠슈타펠|무장친위대]] 제10 기갑사단에 프룬츠베르크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만, 프룬츠베르크가 사망한 원인을 란츠크네흐트가 제공한 것은 아이러니. 말년에 란츠크네흐트 지휘관으로 참전했다가 밀린 용병료를 내놓으라는 부하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는데[* 당시 그가 맡았던 임무가 '''로마를 점령하고 교황의 신병을 확보하라'''라는, 제대로 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는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군자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로마 점령하고 와!' 정도의 명령만을 내린 상태였고, 프룬츠베르크는 개인 재산까지 털어 란츠크네흐트를 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용병료를 모두 마련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로마로 진군하면서 이렇다할 전투도 없던 탓에 부족한 용병료를 약탈로 때울 수도 없었다.], 부하들이 자신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 것에 절망한 끝에 뇌졸중을 일으켜 사망. 평소에 합스부르크 황가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만큼 병사들이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에 크게 낙담했을 것이고, 어쩌면 [[사코 디 로마|그 다음에 일어날 일]]을 내다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참가한 것으로 유명한 전투는 [[파비아 전투]], 로마의 약탈([[사코 디 로마]]), [[위그노 전쟁]], [[30년 전쟁]] 등이 있다. 이후 브라질 등 남미 지역에서 발생한 내전에도 다수 참전했지만, 용병대로서의 명성은 점차 스페인 [[테르시오]]에 밀려갔으며, 용병대가 자체적으로 해체 선언을 하고 붕괴되어 18세기가 되기 전에 소멸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