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랑펠로 (문단 편집) ==== 배경상황 ==== * 영국은 아미앵 조약의 합의와 달리, 기한이 만료된 후에도 몰타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강경파인 소 피트가 다시 총리에 복귀하는 등, 프랑스와의 관계는 악화되고 대결의 분위기가 높아지자 나폴레옹은 20만 대군을 집결시킨다. 그랑다르메(Grand Armee; 나폴레옹의 대 육군)를 조직하는 와중에 프랑스 국내에서는 군주정을 원하는 분위기가 높아진다. 1804년, 원로원과 호민원의 동의를 통해 나폴레옹을 황제에 앉힐 것을 의결하고 5월 18일, 나폴레옹은 압도적인 국민투표의 지지와 원로원령을 얻어 프랑스 제1 제정을 성사시킨다. * 제위에 오른 나폴레옹은 미뤄뒀던 영국 침공을 결정하였으나, 빌뇌브의 움직임이 늦어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대 프랑스 동맹이 재결성되자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공격으로 가닥을 잡는다. 페르디낭 대공이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은 바이에른을 공격하였으며 지리적인 이점을 얻기 위해 울름 지역을 확보하고 수비 태세를 굳혔으나 [[울름 전역|나폴레옹은 허를 찔러 퇴로를 끊어버리고 울름을 포위 공격해 승리를 거두지만]], [[트라팔가르 해전|트라팔가르의 대패]]가 전해진다. 이로써 나폴레옹은 영국 침공을 단념하고 대륙을 제압해 영국을 봉쇄하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한편, [[아우스터리츠 전투|러시아군은 오스트리아군과 합류해 양군은 안개속의 아우터리츠에서 격돌하는데]], 나폴레옹은 일부러 우익의 약점을 노출시키고 추격해온 군대가 습지에서 발이 묶인 사이, 연합군 주력을 포위한 프랑스군은 얼어붙은 호수 위를 도망치는 연합군의 머리 위에 포격을 가해 얼음을 깨버리는 방법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 다시 압도적 승리를 거둔 나폴레옹은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시키고 오스트리아가 이에 굴복했으며 영국에서는 소 피트가 급사, 유럽은 평화를 얻었고 나폴레옹 제국의 영광은 극에 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