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랜스 (문단 편집) === 전술 === >The captains or captaine that charges either with troups or troupe, '''cares not much whether the companies breake their launces or not''', but desires them to enter resolutely, and to keep close together. >If they be wel conducted, their leaders '''command more than half of them to carie their swords or pistols in the bridle hand''', rather than faile to vse the sword & pistoll, & quit their Lances; >but '''they wil be sure to place the best of the Lantiers in the forefront. Lightly of euery hundred, 15. or 20. know how to breake''': >being wel broken, with care of the goodnesse of the staffe and head, the blowe of the Launce is little lesse in valor vnto the pistoll: >the charge of the Lantiers is terrible and resolute, being in carier to breake, the enemies perceiues '''their resolution is to enter, and not to wheele about like vnto the pistolers'''. >...... >'''The most Chiefes or Souldiers of account are armed at the proofe of the Pistoll. If the Leaders commaund their troupes to spoyle horses''', the Launces are more sure. >---- >창기병대와 함께 돌격하는 부대장들은 '''부대원들이 적을 제대로 찌르든 안 찌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그저 단호하게 진격하고 서로 가까이 선 대형을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제대로 지휘된다면, 지휘관들은 '''창기병들 중 절반 이상이 고삐를 잡은 왼손에 검이나 권총을 쥐고 있으라고 지시하며''', 그렇게 해서 (백병전에서) 랜스를 버린 뒤 검과 권총을 쓰지 못하게 되는 일을 방지한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창기병들 중 정예들, 즉 일반적으로 100명당 창을 잘 다루는 15-20명을 제일 앞열에 배치할 것이다''': >좋은 품질의 창대와 창날로, 잘 겨냥된 랜스의 타격은 권총 사격에 비교할 때 기백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창기병들의 돌격은 무섭고 단호하다, 그들이 창으로 찌르기 위해 진격하는 모습을 본 적들은 '''그들의 확고한 결심이 권총기병처럼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대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지휘관들이나 중요한 기병들은 방탄인증된 갑옷으로 무장하며, 따라서 지휘관들이 부하들에게 (갑옷을 입은 기수 대신) 말을 공격하라고 명령'''한다면 권총보다는 창으로 이 명령을 수행하기가 더 쉽다. >---- >Williams, Roger, Sir (1540?-1595), '[[https://quod.lib.umich.edu/e/eebo/A15466.0001.001/1:4.17?rgn=div2;view=fulltext|A briefe discourse of warre. written by Sir Roger williams Knight; with his opinion concerning some parts of the martiall discipline]]]' >"창날이 기병의 갑옷 두 겹을 뚫고 지나갔는데 그자는 무사했다는군." >내가 "어떻게 그가 무사할 수 있었지요?" 라고 묻자 프랑크인 기병은 "창날은 기병의 허리 피부만 관통했습니다." 라고 답했다. >나는 그 창의 일격으로 그가 무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한마디 하겠다. '''기병은 창으로 일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손과 팔로 창대를 몸 옆에 밀착시켜 아주 힘껏 잡고, 자신의 말은 달리게 두어야 한다. 그래야 찌를 때 효과가 있다. 창을 잡은 손을 움직이거나 뻗으면 일격을 가해도 상대방에게 영향이나 해를 입히지 못한다.''' >---- >우사마 이븐 문끼드(1095-1188) 저, 김능우 역, '성찰의 서' 공격방식은 단순하다. 오로지 말을 달려서 그 주력(走力)을 실어 쑤셔박는 것. 그래서 [[창술|카우치드]] 방식으로 랜스를 잡는다. 단순한 장창병이었으면 그만한 위력은 나오질 않지만 말이라는 동물과의 조합은 강력한 위력을 내게 해주었다. 하지만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큰 충격을 줄 때 공격자가 받는 반발력도 엄청나서 이러한 충돌 시의 반발력을 버텨내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무리로, 사용에는 상당한 완력과 단련이 요구된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갑옷의 방호력이 상승하였고, 갑옷의 방호력이 정점에 이른 13세기 유럽의 경우 랜스 돌격으로 갑옷을 뚫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졌다. 갑옷을 뚫지 못해도 충격만으로 직격당한 자가 중상을 입는다는 낭설이 있지만, 랜스 차지는 일반 창보다 전체 질량이 큰 긴 창이 가진 질량과 말의 속도로 운동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데 관통되지도 않고 즉사할 정도의 운동에너지를 만들어 내기에는 질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설사 가능하더라도 창을 들고 있는 기사도 같은 양의 반작용을 얻어야 하는데 차지를 건 기사가 멀쩡할 리가 없으므로 불가능하다. 애초에 이런 경우 전체 질량은 무겁지만 부분 질량은 일반 창보다 더 가벼운 랜스가 먼저 부러지게 되어 모든 운동 에너지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전에 랜스의 명중률 자체가 좋질 못했다. 랜스에 맞기도 힘들지만 맞아도 그 리스크를 감당할 데미지를 못 준다. 15세기의 콘도티에로 피에트로 몬테는 오직 어리석은 자들이나 말이 아닌 기수를 겨냥한다고 주장했으며 16세기의 군사저술가 프랑수아 드 라 누이는 갑옷을 입은 기병이 창에 맞아 죽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동시대 카스티야의 기사인 후안 퀴자다도 일단은 기수의 배를 찌르라고 조언하지만 기수가 아닌 말을 찌르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인다. 실제로 이 시기의 [[창기병]]들은 랜스로 적 기병을 노리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중무장한 군마를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의 군마는 품종의 개량을 통해 마구와 마갑의 무게를 견뎌내도록 훈련받았으며, 현대의 경주마처럼 속도를 내기보다는 굵고 튼튼한 뼈에 근육이 많은 체형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현대의 대형 노동마인 '샤이어' 정도의 덩치는 아니고, 마갑과 중세 미술사 연구 등을 통해 추정한 결과로는 5~600kg 정도 되는 중형마 체급이었다. 리인액트 등을 통해 기병 돌격의 충격량을 결정하는 데 군마의 무게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전투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말의 덩치와 힘이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Ann Hyland 저작의 The Medieval Warhorse: From Byzantium to the Crusades, 1994 등 참조.] 중요한 것은 실제 기병은 영화 등 매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어디를 가든 항상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충격기병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현대의 [[전차]]도 어떻게 보면 이와 비슷하다. 일단 더럽게 무거워서 연비가 바닥을 기는 데다가, 장거리 야지 주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이럴 경우 궤도나 현가장치 등 주행계통 정비에 애로사항이 꽃피는지라 전선까지는 철도나 전차운반차량에 적재되어 이동하고, 전장에서만 거친 기동을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말도 생물이고 당연히 무게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군마로 사용되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도, 말도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는 오래 달리기는 힘들다. 각종 매체에서는 기병이 등장할 때면 어디를 가든 --두다다다-- 풀 갤럽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 사료에 묘사되는 기병돌격에서 갤럽으로 최고 속력을 내는 구간은 목표물 50m 전방 지점 정도였다. 즉, 기병대가 처음 기동을 시작할 때에는 대열을 맞춰 나아가야 할 필요성도 있고 말의 체력을 보존해야 할 필요도 있었으므로 트롯과 같은 가벼운 속보로 대부분의 거리를 주파했으며, 목표물을 100m 정도 둔 지점에서부터는 캔터로 달리기 시작하여, 그리고 마지막 50m부터는 최대 '스퍼트'인 갤럽으로 질주하여 돌격을 개시했다. 즉 영화에서는 기병들이 돌격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엄청난 속도로 엄청난 거리를 주파하며 적진에 들이받는데, 놀랍게도 실제 전투에서는 말의 체력에 분명히 한계 탓에 화살이나 총포가 쏟아지는데도 목표물 100m 앞 정도까지는 조금 빠른 속보 정도로 터벅터벅 속보 정도로 이동했다. --괜히 기사들이 용감해야 했던 게 아니다-- 그나마도 서로 무릎과 무릎을 맞댄 기창돌격 진형을 유지할 경우 최고 속력은 빠른 캔터나 느린 갤럽(15km/h 전후) 정도였으며, 지형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느린 캔터로 충돌한 경우도 흔했을 것이다. 기병 충격 전술은 속력이 느려지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진형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으므로 충동적이고 단순무식한 기사의 이미지와 달리 인내와 규율이 중요했다. 1220년대에 편찬된 [[윌리엄 마셜]]의 전기에는 [[토너먼트]] 단체전에 참가한 기사들이 레이디들이 지켜보는 것을 보고 의욕이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밀집대형으로 동료들과 열을 맞추면서 일정한 속도로 상대편 부대를 향해 진격했다고 묘사된다.[* ''But they rode to meet them steadily in good, close formation, no one going ahead of the rest''] '무릎과 무릎을 맞댄 밀집대형'이라는 표현은 비유나 과장이 아니며, [[회전]]에서 대열을 이루고 돌격하는 기병들은 말 그대로 무거운 장화나 다리 갑옷을 신지 않으면 짓눌려서 부상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다리를 딱 붙인 채 느린 속도로 달렸다. 12-13세기 기사문학의 표현을 빌리면 '장갑이나 과일을 위에 던져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창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어야 했다. 랜스 돌격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제일 앞열에 선 숙련된 창잡이(5-6열 종대의 경우 100명 중 15-20명)였다. 나머지 인원이 든 랜스는 거의 장식에 가깝고 진형 잘 유지하면서 따라가기만 해도 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졌다. 절반(즉 1-3열) 이상은 검 같은 근접무기를 바꿔 들기 편하게 왼손에 미리 들고 있으라고 지시받는다. [[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80715/486263/600576955/1157371823/048255151bf867db3477f510857ff7f0.jpg|기사들이 일렬씩 순차적으로 돌격하여 랜스로 찌르고 곧바로 방향을 돌려 빠져나와서 후방으로 가서 다시 랜스를 보급받으며, 후열이 먼저 돌진한 앞열을 엄호하면서 연쇄적으로 돌진했다는 설]]이 2010년경 [[This Is Total War]]의 서양사 게시판에서 벌어진 [[https://cafe.daum.net/shogun/9xm/7084|논쟁]]이 발단이 돼서 인터넷 상으로 퍼져 있지만, 이것이 보편적인 랜스 전술이었다는 근거는 커녕 실존했다는 근거조차 [[뇌피셜|없다]]. ~~링크 들어가보면 다수의 뇌피셜 소설가가 한사람의 진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을 무식한 고집쟁이 취급하며 다굴치고 있다~~ [[https://m.dcinside.com/board/armor/3558?headid=&recommend=&s_type=subject_m&serval=%EB%9E%9C%EC%8A%A4|오히려 랜스를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있다]] 헤이스팅스 전투 같은 현실의 기병 연속 돌격 사례들은 전부 돌격이 실패하고 패주한 것이거나 유인후퇴전술이었다. 중세의 중기병들은 아무리 얇은 선형진이라도 2~3열 두께를 유지했고, 백병전을 대비해서 5~6열의 두꺼운 대열을 만들기도 했다. 16세기 폴란드 후사르도 정예부대라면 3열까지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실전에서는 5~6열이 일반적이었다. 17세기 이후에야 2~3열의 얇은 선형진이 흔해진다. 그리고 여기서 창을 든 기병들은 중세 로마군의 보병대열처럼 가장 앞 대열에 위치하지 그 뒤는 검과 둔기를 든 기병들이다. 모두가 창을 든 것이 아니다. 다만 상대의 진형이 무너지지 않았을 경우 (때에 따라 예비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뒤로 빠진 다음 재정비 하고 나서 재차 돌격하는 것 정도는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16-17세기 폴란드의 후사르는 한 전투에서 최대 3-4번의 돌격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 13세기 성전기사단의 일반 기사단원들도 각각 2필의 전투마를 지급받도록 규정되었으므로 대략 2-3번의 돌격이 가능했을 것이다. [[살라딘]]의 측근이었던 바하 앗딘은 아르수프 전투에서 십자군 기사들이 도망치는 무슬림 기병들을 추격하다가 매복을 경계하며 멈춰서서 재정비를 하고 다시 추격하는 식으로 총 3번의 돌격을 가했다고 표현한다. 프랑수아 1세는 마리냐노 전투 이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장다름]]이 스위스군에게 가한 30번의 돌격을 자랑했지만, 이게 각 부대가 30번씩 돌격했다는 의미인지, 얼마나 진지한 의도로 말한 숫자인지는 알 수 없다. 총이 나오기 이전에는 아예 너죽고 나죽자식으로 달라붙어 싸우질 않는 이상, 보병 부대가 기사를 견제할 만한 수단은 자기들이 지키는 궁사 정도 뿐이었고, 활은 곡사화기인 데다 총에 비해서 화력이 밀렸으므로 기사를 완벽히 막진 못했다. 총기의 발명 이후에도, [[총검]]이나, [[플린트락]] 머스킷의 보급 이전에는 총병대가 이전 시대의 궁수마냥 근접 보병대와 분리되어 있었고, 따라서 두 병과의 유기적인 운용으로 기병을 막기 위해 [[테르시오]]로 대표되는, pike and shot 형태의 복잡한 진형이 등장하게 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머스킷이 보병 대부분이 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되고, 근접전에서 이전 시대의 창처럼 활용할 수 있는 총검까지 보급된 후에야 보병이 독자적인 대기병 방진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방법은 공격할 것처럼 다가가서 충돌 직전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에 유인돼 많은 적보병이 추격에 나서 대형이 무너진다. 그러면 중기병대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말 머리를 돌려 흩어진 적보병을 짓이겼다. 그런 전술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 쓰였다. [[아즈텍]]을 정복한 [[코르테스]]도 테노치티를란을 공략할 때 도시 내부에서 자주 써먹었다. 물론 아무리 우수한 기병이라도 제대로 대형을 짜놓고 훈련도 잘 된 튼튼한 보병 방진에 정면으로 돌격하는 건 미친 짓인 게 여전했고, 따라서 돌격하기 전에 사격 무기 등으로 방진을 어느 정도 흐트리고 나서 공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는 게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전쟁으로 폴커크 전투에서 잉글랜드 기사들은 스코틀랜드의 쉴트론을 붕괴시킬 수 없었다. 그러자 에드워드 1세는 장궁병을 동원하여 쉴트론 방진을 붕괴시켰고 그틈을 놓치지 않고 잉글랜드 기사들이 돌격하여 스코틀랜드군을 궤멸시킨다. 반면 배녹번 전투에서 잉글랜드 기사들은 장궁병의 지원도 없이 쉴트론에 돌격을 감행했고 결국 우수수 낙마하여 몰살당했다. 화약 발명 이후 기병대가 [[휠락]] 방식 단총이나 권총, 시대가 지나면서 [[용기병]], [[카빈]], [[리볼버]] 권총에서 [[레버액션]] 라이플까지 보병총보다는 작고 불안정하지만 작으면서도 높은 근접 화력을 가진 소형 총기를 사용 한 것도 이유가 있는 셈이다. 다만 보병대가 대부분 [[전열보병]]으로 전환된 시기에는 아무리 근접 화력 보조용 총기를 들고 다녀도, 크고 아름다운 보병총으로 일제사격을 가하는 전열보병 방진 앞에선 교환비가 당연히 좋지 못했다. 물론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리볼버, 레버액션 라이플 등이 나오면서 총기장비는 대세가 되었고 결국 기병의 주류는 총과 검을 든 검기병과 총기병, 용기병들이 차지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빠르게 돌입해야 하는 창기병들에게 총기는 상성이 매우 좋질 않았고 그래서 당대 랜스의 주 사용자인 [[울란]] 창기병대 등은 어설픈 총기 사용 없이 랜스 그 자체를 주로 활용해서 적절한 시점에서의 돌격을 한다. 따라서 보병방진의 와해는 지치거나 사기가 떨어져 스스로 진형을 흐트러트리거나 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19세기 나폴레옹 전투에서도 나타난 일이다. 이러한 보병방진의 붕괴는 곧바로 사기와 직결되는 문제인지라 앞의 보병방진이 붕괴해서 병사들이 도주하면 뒤의 보병방진도 연달아 붕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도주한 보병이 뒤의 아군 보병방진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방진이 와해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례도 있었다. 승마보병과 장궁병의 조합이 유행한 14세기 이전까지 [[창기병]]의 기병창돌격은 지휘관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돌격옵션 중의 하나였다. [[총기]]시대에는 총과 검을 든 총기병들과 검기병들(중용기병과 경용기병으로 통합한 영국을 비롯해서 각국의 기병편제가 전부 달라서 어느 하나로 통칭이 불가능. 즉 같은 흉갑기병인 퀴레시어조차 어느나라는 직검만으로만 무장했다면 어느나라는 직검에다가 총기까지 쥐여주기도 한다.)이 득세함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울란]]이나 [[폴란드]]의 [[윙드 후사르]]는 일반적인 랜스와 파이크의 길이를 넘어서는 월등히 긴 랜스(약 5미터)를 이용해 활약을 펼쳐 1차대전때까지 매우 소수로나마 창기병대가 유지될 수 있도록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단 이때로 넘어가면 창기병들의 병과는 경기병으로 바뀌고 이로인해 전투마도 무거운 중량도 견딜수 있는 체급좋은 전투마가 아닌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경기병용 전투마를 지급한다. 그 웅장하고도 세련된 형상에 힘입어 전장만이 아닌, 식전에서의 예식용이나 마상시합([[토너먼트]], [[주스트]]) 등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다. 보통 랜스의 끝에는 깃발을 다는데, 중세에는 자기 자신이나 가문을 표시하는 문장의 역할을 했고, 르네상스 이후로는 부대나 국가를 나타내는 국적 마크 역할을 했으며, 돌격시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창끝이 처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도 해주었다. 전투용 랜스와는 달리 토너먼트 시합용 랜스는 보다 가볍고 약한 목재를 사용하고, 창날 대신 코로넷이라 부르는 왕관 모양의 장식을 달거나 목제 그대로 사용했다. 시합 시에 창이 부러져야만 제대로 일격을 먹인 것으로 간주했으므로 쉽게 부러지도록 약한 재질의 나무를 사용하고, 창대에도 홈을 파두곤 했다. 물론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말의 속도는 큰 차이가 없을테니 파괴력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프랑스]]의 왕 [[앙리 2세]]는 딸의 결혼식 때 열린 토너먼트에 '''이벤트성으로 참가'''했다가 부러진 랜스 조각이 투구 틈새로 들어가 눈에 박혀 사망했다.[* 앙리 본인이 청년 시절부터 마상시합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출전하기도 한 모양이지만, 당시 나이가 41세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상대로 직접 근위대장을 고르면서 '왕이라고 적당히 할 생각 말고, 제대로 하라' 라고 명령했고, 그 결과 끔찍하게 살해를 당하고 만다. 며칠동안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죽기 직전에 정신을 수습하고는 근위대장의 잘못이 아니니 죄를 묻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프랑수아 2세]]는 16세 소년에 불과했던 데다 바로 이듬해에 죽었고, 다시 그 뒤를 이어 [[샤를 9세]]가 11세의 나이로 즉위.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에 위그노 전쟁이라는 헬게이트가 터졌다. [[파일:external/farm3.static.flickr.com/4047375520_054090d349.jpg]] 갑옷이 퇴보하면서 일시적으로 창기병도 사라지는 듯했으나, 윙드 후사르의 전통을 이어받은 폴란드 랜서(울란 Uhlan)가 [[나폴레옹 전쟁]]에서 대활약을 하면서 전유럽에 유행처럼 창기병이 부활했다. 물론 전 시대와 같은 갑옷을 입은 적이 사라졌기에 일반창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고, 길이도 줄어들었다(2.5m~3.2m 정도). 사용법도 겨드랑이에 끼우는 카우치드 랜스 방식과 더불어 전후좌우의 적병을 손으로 찌르는 방식도 써야 했으므로 길이가 318cm나 되면서도 무게는 1.6kg밖에 안 된다. [[윈스턴 처칠]]도 군에 복무할 때에는 창기병으로 싸웠지만, 정작 전투 전에 팔을 다쳐서 창 대신 [[마우저 C96|권총]]을 쏘며 싸웠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초까지 창기병은 여전히 유럽각국의 편제상에 남아 있었지만, [[참호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참호]]와 [[기관총]]이 전장을 고착시키자 기병의 효용성이 사라져 대전 초반에 대부분 [[용기병]]과 유사한 부대로 변해가거나 아예 [[기갑]]부대로 전환되기도 했다. 폴란드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까지 기병을 보유[* 사실 이 폴란드 '기병'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전부 개인화기로 무장하고 기관총같은 중화기도 충실히 장비하고 있으며, 일부 차량화까지 진행된 정예 기동부대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한 부대였다. 물론 기병이란 이름값은 하여서 기병창과 기병도 훈련도 받았고, 실제로 기병돌격을 통해 독일군 보병중대를 패퇴시킨 전과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총기를 사용하여 전투에 임했다.]하고 있었으며, 독립직후의 대[[소련]] 전쟁 등에서 얻은 명성으로 [[독일]]병사들을 긴장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독일 기갑부대와의 어쩔 수 없는 대결을 벌이다가 사라져 갔다. 현재는 실전부대로서의 기병은 없고, 왕실이 유지되는 몇몇 국가에서 의장부대로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