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일전쟁 (문단 편집) ==== 일부 한국인의 교전 참여 ==== 2011년 6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러시아 정부의 기밀 문서들을 번역하여 출판한 책인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 연구>[* 책이기는 하지만, 국방부가 한정 수량으로만 발간한 책이라서 교보문고 같은 일반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으며, 용산 전쟁기념관 같은 한정된 곳에서만 판매한다. 간혹 인터넷 중고서점에 판매가 되는 경우도 있다.]에 의하면, 고종을 비롯하여 일부 한국인들이 러시아군과 협력하거나 혹은 아예 러시아군에 가담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한 예로 고종 황제의 시종무관이던 [[김인수(대한제국)|김인수]]는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로 탈출하였고, 러시아군에 들어가 대령까지 올랐다. 그는 러시아 황제로부터 훈장을 받을 만큼 상당한 공적을 세웠다. [[http://www.dongponews.net/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6860|링크]] 그 밖에도 함경도 출신 한국인 포수들 17,000명은 러시아군에 소속된 별도의 부대인 선견한국분견대를 만들어서 러시아군과 함께 일본군의 연해주 침입을 격퇴시키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출처: 한반도에서 전개된 러일전쟁 연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http://blog.daum.net/dhs80116/438|#]]] 구한말에 한국의 정규군은 무기력했으나[* 그래도 완전히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의 책에서도 정규군의 군인들을 높게 평가하기도 하였다. 사실 무기력할수밖에 없었던 게 대부분의 출동은 국내의 의병들을 진압하는 임무였고 침략자인 일본을 상대로는 정부부터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으니 명령을 받지 못한 군인들이 적극적으로 맞선다는 것은 항명이자 반란이었다. 결국 [[대한제국 군대 해산|군대 자체가 해산되는 상황이 되자]], 즉 더 이상 정부의 명령 따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고 일본이 완전한 침략자임이 확정되자 이들은 한성에서 대규모 항전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대일의병에 대거 가담했다.], 민간인 포수들 특히 함경도 출신 포수들은 그 사격솜씨와 용맹함이 매우 출중하여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도 그들을 높게 평가할 정도였다.[* 고종 황제도 산포수들의 사격 솜씨가 정규군인 경군보다 훨씬 낫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여기서 정규군은 엄청나게 빡센 훈련을 받았던 인물들이다.앞서 헤세-바르텍도 한국군 장병들을 매우 긍정적이게 평가하였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kumi17cs1013&logNo=221718144009&referrerCode=0&searchKeyword=%EC%9D%BC%EB%B3%B8%EA%B5%B0|#]] 장교나 사병 개인의 역량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해산된 대한제국군이 의병에 가담하고 나서는 의병을 일본군 한개소대로만 격퇴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https://blog.naver.com/kkumi17cs1013/222945644722|#]] 하지만 문제는 제정적인 한계, 규모의 한계로 강군을 만들기는 무리였던 것이다.] 다만 극히 일부는 일본군에 입대하여 일본을 위해 싸우기도 하였다. 그 예로 [[윤치성]]이 있다.[* 다만 그는 친일파였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아니었다. 식민지화 후에는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노력하기도 하였으나, 중추원 평의원을 지내는 등 애메한 행보를 보였다. 그래서인지 친일 인명 사전에도, 독립유공자들중에도, 그의 이름을 찾아 볼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