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롯데 (문단 편집) === 일본에서의 창업 ===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으로 밀항하여 일본 땅에서 장사를 시작한 [[신격호]]는 하나미쓰라는 60대 일본인 노인의 신임을 얻어 5만 엔이라는 거금을 빌리게 된다.[* 1931년 당시 일본 물가의 5만 엔은 2020년대 기준 '''3억 엔'''에 달한다. 다만 그냥 준건 아니고, 사업 수익을 나누는 공동사업이었다.] 신격호는 이 돈으로 윤활유(커팅오일)와 밥솥을 만드는 공장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공장이 [[도쿄 대공습|폭격을 당해서]] 완파되는 바람에''' 쫄딱 망했다. [[일본의 항복]] 이후 투자금을 포기한 하나미츠에게 빌린 돈이라도 갚자는 심정으로 다른 곳에서 또다시 돈을 빌린 후 이번에는 세탁[[비누]], 세숫비누, 크림 등 유지류를 만드는 공장을 차렸다. 다행히도 장사는 상당히 잘 되었다. 신격호는 이렇게 얻은 이익금으로 하나미쓰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고 집 한 채 수준의 [[이자]]까지 더해준다. 이후 신격호는 약간 남은 밑천으로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리고 유지류나 특수고무 같은 물질들을 연구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당시에 시판되고 있는 [[껌]]들을 죄다 사다가 한 번씩 다 씹어보고 각각의 껌들의 장점들을 모두 집약해서 껌을 개발했다. 그런데 신격호가 이렇게 개발한 껌이 인기가 엄청 좋아서 과자점 주인들이 서로 납품하겠다고 신격호의 연구소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섰다. 이에 신격호는 투자자를 모집해서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려서 껌을 팔기로 했고, 1948년 '''㈜롯데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기 [[풍선껌]]을 주력으로 하여 1953년에 일본 일류 껌 회사였던 하리스를 치열한 싸움 끝에 앞질렀고, 1962년 스위스 초콜릿 장인 막스 브락크까지 영입해 초콜릿 시장 진출을 준비하며 1964년 일본 1등이던 모리나가제과에도 도전장을 냈다. 이후 [[캔디]],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간식거리에 손을 대며 1961년 롯데부동산, 1967년 롯데애드, 1968년 롯데물산 및 패밀리, 1972년 롯데리아 등을 각각 세워 사세 확장을 했고, 2002년 부실 유제품업체 유키지루시유업으로부터 아이스크림 부문을 인수해 '롯데스노우'를 세우기도 했다. 2007년 한국보다 10년 먼저 지주회사 '롯데홀딩스'를 출범시켜 기존 계열사들을 'L투자회사'로 전환 후 각 사업들을 신규법인으로 넘기며 물적분할했다. '롯데'라는 사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인 [[샤를로트|샤를로테]](샤롯데)에서 따온 것이라는 게 롯데 측의 공식 입장이다. 일본 롯데제과의 캐치프레이즈가 '''입 속의 연인(お口の恋人)'''인건 결코 빈말은 아니었던 것. 유래가 어찌되었든 샤롯데라는 이름은 롯데그룹 내에서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종종 쓰인다. 롯데백화점 상품권에는 샤롯데의 그림이 새겨져 있고 대구역 롯데 민자역사에는 샤롯데 광장, 롯데시네마의 샤롯데관, 그리고 롯데백화점 광복점 옥상정원에는 샤롯데의 부조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