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룰러(3차) (문단 편집) === 진명 ===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 에도 시대 초기에 일어난 봉기, 시마바라의 난에서 지도자를 맡은 소년. 유소기부터 학문에 심취하고 있던 그는 어느 시기를 경계로 여러가지 기적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상처를 치유하고, 물 위를 걸은 그는 이윽고 신의 아이로써 금지된 종교를 믿는 농민들로부터 열렬한 추앙을 받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를 지도자로 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옛 가신들에 의해 에도 막부에 반란군이 성립. 당시 곤경에 허덕이던 시마의 농민들과 함께 대규모의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 봉기를 만만하게 보고있던 에도 막부도, 보냈던 토벌군이 패배하였기에 진지한 마음으로 노중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를 총대장으로써 보냈다. 마츠다이라 노부츠나는 원성을 세우고 농성을 하는 봉기군의 병량공격을 반입해, 식료와 탄약이 다했을 무렵을 가늠해 총공격을 개시, 단지 한명의 내통자를 남기고 아마쿠사 시로를 포함한 3만 7천 명이 막부군에 의해서 몰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여러 설이 있다)|| [[영령(TYPE-MOON/세계관)|영령]]으로서의 속성은 사람(人). [[에도 시대]]에 태어난 한없이 성자에 가까운 기적의 소년. 눈 먼 소녀의 눈을 뜨게 하거나 물 위를 걷는 등,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기적을 펼쳐냈다고 전해지며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파했었다. 죽었을 때의 나이는 17세.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가 탄생한 때는 [[전국시대(일본)|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일본이 간신히 하나의 나라로 통일된 후다. 당시 일본 백성들은 정부의 착취에 시달리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기독교 금지령을 내려 기독교인들을 탄압했고 끝내 백성들이 반란([[시마바라의 난]])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농민들이 일으킨 것으로는 역사상 최대 규모였으며 그 수는 3만 7천 명, 그 중 약 2만 명이 비전투원이었다고도 한다.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반란 세력이 하나로 뭉쳐지면서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가 반란군의 지도자로 떠받들어졌다. 그 만큼 반란군은 기독교의 신을, 그리고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를 믿고 있던 것이다. 반란군에게는 정부를 이길 만한 힘이 없었지만, 원래 이번 반란은 자신의 신념(종교)을 위해 백성들이 스스로 들고 일어섰다는 것 자체가 의의였다. 정부에게 진압되더라도 반란군 지도자 몇 명만 처형되면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시로는 그 몇 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첫 전투에서 그만 정부군을 이겨버렸다. 그 결과, 눈이 뒤집힌 정부가 반란군을 철저히 학살하는 바람에 3만 7천명의 백성들은 전부 죽어버렸고 반란은 아무런 의의도 낳지 못한 채 대실패로 끝나버렸다. 시로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단 한 명조차 구하지 못한 채 원통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자책감에 빠진 시로는 자신의 실패를 의연히 받아들이는 한편,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만약 자신에게 다음 기회가 있으면 목적을 위해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어떠한 방해 요소라도 반드시 제거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의 시로가 품고 있는 목적과 소망, 그리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도 이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에서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는 출생이나 생애가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확실한 건 반란에서 최고 책임자라 불리는 지위에 있었다는 점. 설령 그게 허울 뿐인 지위라 해도 이 소년은 틀림없이 에도 시대 최대의 무장봉기의 주모자였다. 본래의 시로는 룰러 클래스의 적성이 없으며, [[캐스터(Fate 시리즈)|캐스터]] 클래스의 적성도 아슬아슬하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