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셴룽 (문단 편집) == 생애 == 리센룽은 어릴 적 화교 초등학교를 다녔고 아버지를 닮아 공부를 매우 잘했다고 알려져있다. 특히 리셴룽은 이후 진학한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성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년말고사인 트라이포스 시험인데, 특히 [[수학과]] 트라이포스 시험의 난이도와 그에 따라오는 명성은 대단하다.] 케임브리지 수학과 최고의 학생에게 주어지는 시니어 랭글러(Senior Wrangler)를 수상하였다. 그리고 케임브리지 수학과 우수 졸업자에게만 허용되는 1년짜리 대학원 컴퓨터 공학과 자격증을 따고 곧바로 군복무에 들어간다. 군복무를 마친 그는 군인 신분으로 돌아가 [[싱가포르군]] 포병부대 중대장, 대대장, 여단장을 거쳐 [[싱가포르군]] [[합동참모차장|참모차장]]을 역임했다.(최종 계급은 육군 [[준장]]) 이후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 학위를 따낸다. 1984년 9월 32살이던 리셴룽은 국방부 장관 정치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정치계에 입문해 연말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그는 [[싱가포르]] 국방부 정무장관 겸 무역산업부 정무장관, 무역산업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맡았다. 1990년 [[고촉통]] 총리가 [[리콴유]] 총리의 뒤를 이어 취임하면서 리셴룽은 부총리에 임명됐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금융관리국 주석과 재정부 장관까지 겸임했다. 2004년 8월 리셴룽은 [[고촉통]]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싱가포르 제3대 [[총리]]에 취임했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5년 아버지 리콴유가 사망하자 장례식을 치렀고, 이후 명실상부한 싱가포르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도박]]에 있어서 원칙론자였던 리콴유에 비해 [[카지노]]를 유치하는 등 좀 더 경제적으로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외교 정책은 리셴룽 집권 이후 [[중립국]] 노선이 예전보다 훨씬 강화되었다는 평. 이전에는 경제 개발 등의 이유로 서방국에 더 우호적인 노선을 타 왔지만 21세기 들어 싱가포르의 외교 반경이 넓어진 만큼, 완충지대적 성격의 위치와 싱가포르의 명시적인 중립국 지위를 통한 아시아의 정치수도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서, 이를 통한 비즈니스 관광 활성화를 경제 발전 방향으로 내세웠다. [[파일:f4w243fgrg.jpg]] [[인민행동당]] [[2020년 싱가포르 총선거]] [[포스터]]. 리셴룽이 활짝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이 특징이다. [[https://www.malaymail.com/news/singapore/2020/07/06/why-one-party-dominates-singapore-politics/1881817|기사]] 당초 리셴룽은 70세가 되는 2022년까지 총리직에서 물러날 뜻을 밝혀 왔고, [[2020년 싱가포르 총선거]]에서 [[인민행동당]]의 선전 여부에 따라 리셴룽의 은퇴 계획이 정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해당 선거에서 인민행동당은 83석을 차지했으나 야당인 노동당이 처음으로 두 자리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리셴룽이 체면을 구겼다. 선거 종료 이후 싱가포르의 [[2020년]] 2분기 [[경제성장률]]이 1분기 대비 '''-41.2%'''를 기록하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744418|기사]] 사실상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과가 나오자 리셴룽은 은퇴를 연기한다고 선언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769556?sid=104|#]] 리셴룽이 후임 총리로 낙점했던 [[헹스위킷]]이 53% 득표율에 그쳐 야당 후보들과 접전을 벌이면서[* [[싱가포르]] 총선은 4인, 5인 집선구 체제이다. 즉 한 정당에서 4~5명의 후보가 그룹으로 출마해서 1위 정당이 의석을 독식한다.] 리셴룽의 은퇴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리셴룽은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아들 리홍이한테 정권을 넘기기 위해 세습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성공적인 세습을 위해서는 헹스위킷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워서 리홍이한테 정치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러나 헹스위킷이 선거에서 '''간신히''' 당선되면서 자칫하다가는 낙선할 뻔 했고, 헹스위킷 밑에서 정치를 배우면서 정권 승계에 차질을 빚기 때문이다. 결국 2021년 4월 헹스위킷이 직접 후임 총리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새로운 후계자를 찾아야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싱가포르의 코로나 상황이 여름을 지나 안정세로 돌아섰고, 연말인 2020년 12월에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을 전달받았다. 내년 3분기(7~9월)까지는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한때 손상되었던 정치적 위신을 회복하고, 코로나 탈출을 전후로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다. 2021년 4월에 신임 각료로 찬춘싱(陳振聲) 통상산업부 장관, 옹예쿵(王乙康) 교통부장관, 로런스 웡(黃循財) 재무부장관, 데스먼드 리(李智陞) 국가개발부 장관을 각각 임명하였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350328?sid=104|#]] 최종적으로 40대인 로런스 웡(黃循財) 재무부장관을 후계자로 지목하고,[[https://m.yna.co.kr/view/AKR20220415044100076?section=international/all|#]] 부총리직에 임명했다.[[https://m.yna.co.kr/view/AKR20220607043500076?section=international/all|#]] 이후 2023년 11월 5일, 인민행동당 정당대회에서 자신이 모든 일이 잘되면 내년 11월에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로렌스 웡에게 권력 이양을 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로렌스 웡 역시 원래 계획상 헹스위킷처럼 바지사장에 그칠지 궁금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