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투아니아 (문단 편집) === 종교 ===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74.19%가 가톨릭, 3.74%가 정교회, 0.64%가 고의식파, 0.56%가 루터교, 0.19%가 복음주의 개신교, 0.13%가 발트 토속 신앙, 0.10%가 [[오순절교회]], 0.07%가 이슬람, 0.07%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조사되었다. 13.66%는 응답을 거부하였고, 6.11%는 무교라고 밝혔다. 현재는 리투아니아 국민의 7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이지만, 정작 리투아니아는 유럽 기독교 국가 중 마지막으로 기독교화된 국가이기도 하다. 서남쪽의 폴란드와 독일, 동쪽 러시아, 북쪽 스웨덴 전부 기독교화된 지 오래였던 중세까지 리투아니아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이슬람권과 함께 [[십자군 전쟁]] 시대에 [[북방 십자군|공격 대상이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필요하면 같은 기독교도들도 공격, 약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이교도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튜튼 기사단]]이 더더욱 집요하게 괴롭혔다.] 리투아니아는 대공작 요가일라가 [[폴란드]]의 여왕 야드비가와 결혼해 동맹을 시작한 1389년에야 공식적으로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그 전에도 몇몇 귀족들이 세례를 받은 사실이 전해지긴 하지만 리투아니아 전체적으로는 영향을 미치지 못 했다. 그전까지 리투아니아는 밀림처럼 울창한 숲속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이방신을 섬기면서 사는 신비로운 민족으로 서유럽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어왔고, 여기에는 언제나 '이교도'라는 명칭이 동반되었다. 하지만 가톨릭 기독교화 직후, 숲 속의 이교도 제사를 지내는 사원과 제단들은 모두 파괴되고 그 자리에 웅장한 성당들이 들어섰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는 과거에 자신들과 동군연합이었던 폴란드와 더불어 유럽 내에서 가톨릭 전통을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리투아니아가 경제발전보다 먼저 신경 썼던 게 인물화 박물관, 음악학교, 무신론 박물관으로 사용됐던 성당들의 대대적인 복원 공사였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발트 3국 내의 다른 나라들인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소련 시절 전시장, 박물관으로 용도 변경됐던 성당들을 독립 이후에도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다만 라트비아는 에스토니아에 비하면 종교적 신앙심이 강하게 남아있는 편이며, 에스토니아도 러시아계 주민들의 정교회 신앙은 토착 에스토니아인들의 루터교회 신앙에 비해 비교적 강하게 남아있다.] 리투아니아의 종교적 신앙심은 매우 특별하다. [[파일:external/file2.instiz.net/57ffcc9d55dad1f623f7ff37ac46cf95.jpg]]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로 가는 길목에 있는 리투아니아 제4의 도시인 [[샤울랴이]]에 '십자가 언덕'이 있는데 이 십자가 언덕은 매년 수만 명이 찾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다. 십자가 언덕은 18세기에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에 의해 분할당했던 시절에 사람들이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한 것에 유래됐고, [[소련]] 치하에 있던 시절에 민족의 성지로 꼽히기도 했다 작은 언덕에 크고 작은 십자가가 촘촘히 박혀있는 이곳은 몇 해 전 이문열이 펴낸 장편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도입부에 등장하는 등 리투아니아를 대표하는 주요 상징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종교가 금지되었던 옛 소련 시절 십자가 언덕은 리투아니아 민족 정신의 상징인 가톨릭 신앙과 소련의 전제 정치가 맞서 싸우는 장소로 변했다. 십자가를 세우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이 지역에선 밤낮으로 삼엄한 경비가 이뤄졌지만 모두 막을 순 없었다. 결국 밤에는 몰래 십자가를 세우고 낮에 철거하는 일명 '십자가 전쟁'이 이어졌다. 리투아니아 독립 직후인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고 소련 시절 독립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십자가 언덕은 종교적 힘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압제의 권력과 투쟁한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현재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공예는 '십자가 공예와 그 상징(Cross-crafting and its Symbolism)'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가 되어 있다.[* [[https://ich.unesco.org/en/RL/cross-crafting-and-its-symbolism-00013]]] 개신교는 원래 [[클라이페다]](구 메멜) 지역에서 강세였으나, 2차대전 직후 대다수의 개신교도들은 소련이 지배하기 직전 서독으로 이주하여 독일인과 동화되었다. 현재는 리투아니아 인구의 1%정도만이 개신교도이다. [[이슬람교]]의 경우에는 리투아니아 내의 [[립카 타타르]]인들이 주로 믿고 있다. 여담으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모스크처럼 생긴 꽤 큼지막한 건물이 있는데 모스크는 아니고 [[카라임 유대인]] 시나고그이다. 그리고 볼가 [[타타르]]인, [[체첸인]] 등 러시아 제국이나 소련 시절에 러시아에서 리투아니아로 이주해온 다른 무슬림 민족들 또한 이슬람교를 믿는다. [[파일:Karaitesynagoguevilnius.jpg|width=50%]] [[정교회]]를 믿는 비중도 소수이지만, 존재하는 편이고 리투아니아 내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이 정교회를 주로 믿고 있다. 우크라이나계 주민들 중에서도 일부는 정교회 전례의 [[동방 가톨릭 교회]]를 믿는 경우가 있다. 리투아니아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나 [[아르메니아 가톨릭]]을 믿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