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크스-레닌주의 (문단 편집) ===== 집단농장 ===== 스탈린주의 경제정책하면 중공업 육성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 집행 과정에서 부농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반발에 직면한 끝에 [[우크라이나 대기근]]이란 참사를 낳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그럭저럭 잘 운영되던 제도였다. 오늘날 사회주의하면 떠오르는 몇개의 이미지 중 하나로 굳어졌다. 집단농장이란 토지국유제에 기초한 집산적 농업 생산체를 의미한다. 집단농장 정책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제1차 5개년 경제 계획을 내놓은 시점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집단농장 정책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토지국유제와 부분적인 토지공유제에 기초하며, 일체의 사적인 토지 소유를 금한다. 이는 불특정 다수에 의한 공동소유 및 개인 규모의 토지 임대를 금하는 것도 포함한다. >2.농업노동량은 각 국유 및 협동 농지의 특성에 따라 국가, 콜호스, 지역 농민의 공동 결정으로 책정하며, 농민은 정해진 기간 내에 콜호스가 정한 생산 할당량을 채워야 할 의무가 있다. >3.농민은 각자 할당 농지에서 생산한 농축산품을 모두 국가에 납품할 의무가 있으며, 이에 따른 합리적인 형태의 보상을 받는다. 콜호스 주 농지에서 생산된 농업 생산물의 사적인 판매 및 유통을 금하며, 개인 소농장에서 생산된 초과분에 대한 사적인 판매 및 유통은 허용한다. >4.농민은 언제든 할당된 토지에서의 임무 수행을 포기할 수 있으며, 동시에 지망하는 지역의 농지에서 임무를 수행할 권리가 있다. 농민은 농업 활동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것을 국가 기관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콜호스 관리국은 농업 현안을 상급 기관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 이 모델은 이오시프 스탈린의 1928년 회의록인 『곡물 조달 및 농업 발전 전망』(О хлебозаготовках и перспективах развития сельского хозяйства)에서 최초로 드러난 입장이다. 이 회의록에서는 레닌이 『농업문제와 소위 '마르크스비판'』(Аграрный вопрос и «критики Маркса»)에서 밝힌 노농동맹에 기초한 산업 발전을 위한 임금 문제를 농업 상품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보급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방법론이 언급되는데, 이오시프 스탈린은 NEP 기간 당시에 부를 축적한 부자 농민들, 소위 '부농'을 해체하고 농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농민인 '빈농'에게 유리한 사회주의적 농업 구조인 '농업 집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동시에 당시 니콜라이 부하린의 [[신경제정책]] 고수론에 기반한 부농과 소농에 기초한 농업으로는 사회주의적 산업 발전을 이루는 농업 형태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했다. >당은 부농의 사보타주 행위를 미리 막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당신들(NEP주의자)은 당의 적극적인 행동이 없이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형법 제107조에 따라, 선발된 관료들이 부농의 사보타주 행위를 적시에 타격할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각지의 관료들이 부농과 협력하여 오히려 행정집행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온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또한 당신들은 실제 농업 생산량이 전년도 해에 계획된 농업 생산량에 미치지 못 했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 합니다. 부농들의 사보타주 행위가 없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러한 모든 현상들의 원인을 오직 농업 자본 규모의 열악함 탓만 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중략)… 현재 단속된 부농들이 숨겨놓은 농산물을 양, 단속되는 비중 그리고 추이된 부농의 수를 고려해서 농업 생산량을 추론할 때, 당신들이 경제적으로 전혀 달성될 수 없다고 말하는 농산물 생산량을 초과한다는 것은 왜 계속 잊는지 모르겠습니다. …(중략)…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형법 제107조의 미온성도 문제입니다. 이 법에 따르면 부농이 생산한 농산물량의 25%를 빈농에게 분배하고, 중규모 농민에게는 추가적인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 뿐입니다. 실제로 부농의 행동 범위를 제약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부농 집단은 당에서 책정한 농산물가의 평균 3배 이상의 가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농업의 집단화가 없이 사회주의 발전을 지도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까? >---- > [[이오시프 스탈린]] 저, 『곡물 조달 및 농업 발전 전망』 스탈린에 따르면, NEP식의 자본주의 농업은 부농의 농업 사보타주 행위를 막기 어려운 상태를 유발한다. 따라서 농산물 물가의 폭등을 불러올 수 있으며, 이러한 행위를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스탈린은 이러한 상황이 바로 자본주의의 무계획성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비판했다. 그리하여 1928년에 경제 계획이 단행되면서 콜호스(колхо́з)라는 집단농장 관리 체계가 자리잡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간 자본주의적 농업 구조를 통하여 부를 축적한 부농들은 작물을 태우고, 가축을 도축하여 농업 황폐화를 유도했다. 이들은 콜호스 관리들을 죽이거나 테러하는 것을 포함하여 수많은 방해공작을 자행하였으며, 콜호스에서 활동하는 빈농의 농지에 방화를 저지르고 가축을 죽이고 달아다는 등 빈농에 대한 테러도 저질렀다. 그 결과로 홀로도모르라는 기근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농업 집산화에 대하여 "이는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계급투쟁이다. 여기서 빈농 계급이 승리하느냐, 부농 계급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사회주의 건설의 흥망이 결정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탈린은 빈농과 콜호스를 수호하기 위해 각 농지에 민병대 병력을 대거 투입하여 치안을 강화하였으며, 빈농 중 일부를 선발한 후 무장시켜 자체적인 치안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는 부농의 계속되는 공격에도 불구하고 농업 집산화를 밀었고, 1938년에 완전한 농업 집산화를 달성하게 되었다. 시기에 따라 (3)과 (4)의 원칙이 수정된 적이 있으나, 소련의 농업은 기본적으로 위 여섯 가지 원칙 위에 선 집단농장 체계였다. 이리하여 농민은 농업노동자이자 농업공무원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중화인민공화국도 이러한 농업 집산화 정책을 기반으로 해서 1958년 인민공사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농축산물 무상공출제(無償供出制)에 기반한 소련의 콜호스와 달리, 인민공사는 농축산물 유상공출제(有償供出制)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이후 인민공사는 개혁개방의 영향으로 1982년에 농업을 비롯한 경제 업무에 관한 권한이 모두 사라지면서 사실상 폐지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2년에 농업 개혁을 단행하여 초과 생산분에 대한 자체 처분을 허용했으나, 어디까지나 위 여섯 가지 원칙의 기반에 성립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