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크스-레닌주의 (문단 편집) == 특징 ==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국가 총력태세의 유지.[* 이는 [[적백내전]] 당시의 전시공산주의 제도에 착안한 것이다.] 다시말해 [[총력전]]을 위한 철권통치. * 국가주도하의 산업개발 및 재화 분배.[* 이러한 정책은 훗날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을 시행하는 많은 나라들에 영향을 준다.] * 인민은 국가의 영도를 받고, 국가는 국가를 장악한 당의 영도를 받고, 당은 당 중앙의 영도를 받는다.[* 여기서 '''당 중앙은 무 오류'''라는 해괴한 이야기를 진리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민주집중제도 개개인의 뜻을 모은 것이고, 당도 개개인의 뜻을 모아서 의견이 전달되니까 여간해선 틀릴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중우정치]]나 [[집단 히스테리]] 따위는 당 중앙의 철통같은 이론과 사회주의의 이상에 대한 무한한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 이었다. ] * '''일국사회주의론'''[* 스탈린주의 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이론이다. 본래 일국사회주의론은 [[부하린]]이 먼저 제시했지만 스탈린이 트로츠키와 대립하던 일국사회주의론을 취하여 트로츠키를 공격한다. 그리고 부하린이 제시한 개념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적용했다.][* [[트로츠키주의]]의 연속혁명론과 대립한다. 국제혁명론에 대한 상반된 이론. 트로츠키는 러시아 내의 혁명에서 그치지 않고 국제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 내의 혁명세력을 도와 자본주의 국가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어야 봉건주의 단계인 러시아가 도움을 받음으로써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자본주의 단계를 건널 수 있다 주장했고, 스탈린은 국제혁명 이전에 소련의 안정화가 중요하고 소련의 공업화를 통해--과정은 묻지말자.-- 자본주의 단계를 건너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 할 수 있다 보았다.] [[카를 마르크스]]는 1845년 자신의 저서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에서 이전 청년헤겔주의자들의 형이상학적 허구성을 비판하고 생산관계에 의해 발전되는 미래 사회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그것을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라고 칭하였다. 이 이후부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지에서 일반적으로 공산주의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복된 사회를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상대는 프리드리히 헤겔이 주장한 절대정신(absoluter Geist)과 같은 이상적 상태이며, 그것은 현재적 의미에서 논해질 때 하나의 실현 가능성으로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청산하는 시기인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기간을 상정하였고, 이 기간을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에 대해 투쟁하는 최상의 열기가 존재하며, 동시에 그 싸움이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로 확정되는 과도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가 취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았으며, 결국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혁명 과정에 대한 해석에서 수많은 후대 공산주의자들의 논쟁을 촉발하게 된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 논쟁에 참가하여 자본주의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가 가져야 할 자세와 이들이 과도기적 단계에서 만들어나가야 할 사회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카를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로자 룩셈부르크]]와 치열한 경쟁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정립된 이론과 테제는 훗날 [[레닌주의]]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레닌주의의 기반 위에서 1917년 혁명 이후 보완해야 할 점을 추가하여 최종적으로 스탈린에 의해 계승된 것이 [[마르크스-레닌주의]]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동시에 레닌의 인식론 저서인 『유물론과 경험비판론』(러시아어: Материализм и эмпириокритицизм. Критические заметки об одной реакционной философии)을 정리하였다. 이 저서는 당시 오스트리아 사회주의자이자 물리학자인 [[에른스트 마하]]의 속류유물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동시대 경험주의적 유물론, 기계적 유물론을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일반적인 유물론을 정립하려고 했던 레닌의 의도로부터 쓰여진 것이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레닌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계승하여 DIAMAT 교조를 수립하였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체의 유심주의, 기계주의, 기회주의 해석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현실 정치 측면에서도 수많은 족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우드로 윌슨]]이 주장한 민족자결주의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탄생한 레닌의 민족자결론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세계 민족해방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사상이다. 또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농민·병사 위원회인 [[소비에트]]의 독재의 필요성을 서술했다. 이것은 현대 정치에서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 그리고 혁명적 독재라는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갖는 사회주의정치라는 독특한 특징을 갖는다. 더 나아가서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종교 문제에도 급진적으로 개입하여, [[국가 무신론]]을 주장했으며,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주장한 인민의 지도자 또는 수령의 독점적인 역할을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 강조한 만큼 국민주권, 대의제, 법치주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에 필적하는 대표적 사상이었다. 혁명에 대한 입장은 소위 '정통마르크스주의자'(Orthodox Marxist)라고 불리던 집단과 달랐다. 기존의 카우츠키를 신봉하는 정통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우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그 공황으로 인해 자본가는 최후의 선택을 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노동자들과 계급대립이 정점에 이르면서, '자발적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레닌주의]]자들은 이미 유럽의 자본주의 공황은 끝에 다다랐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이미 러시아에 영향을 준다고 봤다. 자본의 팽창에 따른 공황, 그리고 그 공황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은 국경 단위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세계 단위로 이루어진다. 그 근거를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태동했던 독일 그리고 프랑스의 자본주의 공황으로 인한 주위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혼란 조성을 예로 들었으며, 혁명이 실패한 이유는 그저 노동자 세력이 와해되거나, 유산계급에 헌신하는 국가의 무차별적 탄압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카를 마르크스가 깊게 조명하지 못 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구체적인 제도화를 계획했다. 이러한 면에서 레닌주의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하려고 했다. 또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러한 레닌주의를 그대로 계승했다. 스탈린 시대에 마르크스주의와 최종적으로 통합하여 오늘날의 [[공산주의]]라고 흔히 불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되었으며, 이 공산주의 이론은 많은 사회주의국가의 기반이 되었다. [[김일성]], [[마오쩌둥]], [[엔베르 호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 [[호치민]] 등이 이 이념에서 제시하는 국가 모델과 인식론에 큰 영향을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