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산시 (문단 편집) === 마산자유무역지역(구 마산수출자유지역) === "마산에서 노동활동 = 자유무역지역 근무"라고 성급히 판단할 정도로 마산의 자본유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본격적으로 수출위주 정책을 펴기 시작하며 국내에 두 군데 수출자유지역을 지정하였는데, 그중의 하나. 다른 한 곳은 익산에 지정되었는데 아무래도 마산이 수출입에 유리한 항구지형이다 보니 이쪽이 더 발전한 감이 있다. 어쨌거나 한일합섬과 함께 과거 마산 산업 발전의 양대 원동력이었던 곳이었다. 외국계 기업들의 입주가 쉬운데다가 세제혜택 등 기업규제가 적었고, 결정적으로 당시 한국인의 임금은 현재의 인도 노동자들 수준이었기 때문에(게다가 당시 마산은 잉여인력이 드글거리는 곳이었다.) 외화벌이의 선두주자 역할을 했다. 코리아타코마는 우리나라 최초로 객차 해외수출(남베트남)을 하기도 했다.[* 1999년 [[한진중공업]]에 합병되어 마산조선소가 됐다가 2007년 성동산업에 조선소가 팔렸으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 조선업 불황까지 겹쳐 2013년에 폐업되어 부지가 경매로 넘어갔다. 2016년에는 골리앗까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612192159015|루마니아로 팔려나갔다.]]][* 코리아타코마 사원아파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암동에 있었다.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이지만 건립 당시에는 최신식 문화 주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운동권 입장에선 '신식민주의'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장시간/저임금 노동으로 인해 파업이 흔했던 곳이었다. 국내 노동운동사에 언급된 바로는 1987년에 결성된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의 활동 근거지이기도 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운동이 치열해져 1989년에 수출이 전년도보다 5.9%나 떨어져 수출에 차질이 생겼고, 1990년대 이후로 외국계 기업들은 임금이 더 싼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경쟁력이 좀 떨어졌다. 1994년 이후에 전자 및 전기업종으로 구조가 변경되어 [[노키아 TMC]]가 한때 번영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를 인수할 때 마산공장 인수를 거부하여 문을 닫게 되었다. 이 외에 한국소니전자 공장도 입주해 있지만 역시 사정이 --많이--좋지 못한 편이다. 2000년 '자유무역지역의 지정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공단명도 현 명칭으로 변경됐다. 매미 등의 태풍이나 폭우가 쏟아지면 가끔 침수되기도 한다. 매립지가 많은 마산의 상습침수구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유무역지역 안에 있는 [[마산항]] 제3부두에는 크루즈선 퀸 엘리자베스 2세호가 기항한 적도 있다. 지역뉴스에서 다루었을 정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