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오쩌둥 (문단 편집) === 군대식 사고 === 전문적으로 군사 교육을 받은 바 없지만, 게릴라 지도자로서 사고가 군대식으로 굳어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은 실전에서 총을 쏴본 적이 거의 없으며, 게릴라 시절의 사진 중에서도 군복 차림은 많지만 총을 차고 있거나 들고 있는 사진은 거의 없다. 그래서 부하들이 자신의 명령에 토를 다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항상 정책이든 뭐든 간에 군대식으로 사고했으며, 일단 적으로 간주되면 무조건 섬멸해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그것이 잘 나타난 일화가 "[[저 새는 해로운 새다]]". 마오의 사상에는 못지않은 "정신주의적" 일화가 많은데, 마오주의가 뿌리는 정신주의에 맞닿아 있으므로 비슷한 문제가 나타났다. [[대약진운동]]도 끝까지 [[츠지 마사노부|"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인민의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자신을 옹호했다. 원래 고집이 센 성격이었지만, 중국의 주석으로 확실하게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더욱 고집이 세졌다고 한다. 원래 고집 없는 독재자는 없다고들 하지만 스탈린이 [[독소전쟁]] 시절 장군들의 말을 듣고 또 자신의 정책이나 전략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며 최소한의 융통성이나 유연성을 보여줬다.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주코프]]와 스탈린의 애증 어린 관계는 유명하다. 주코프 말을 안들을땐 [[알렉산드르 바실레프스키]]가 바실레프스키 말도 안들을땐 [[알렉세이 안토노프]] 말은 들었다. 중국의 지도자로 따지면 차라리 [[장제스]]가 [[스탈린]]과 비슷한 성격에 가깝다. 반면, 마오쩌둥은 그만큼의 융통성마저도 보여주지 못했다. 대약진 운동 초기 [[천윈]], 저우언라이, 류사오치가 소극적으로 반대의 뜻을 내비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아비판]]을 강요했을 정도. 또한 대약진운동의 파멸적인 결과가 차츰차츰 드러났을 때 [[펑더화이]]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해임시키는 모습을 보였고, 이 모습을 본 류사오치와 저우언라이는 찍소리도 못하고 마오쩌둥의 뜻을 따랐다. 본인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실행 도중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있었을지라도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죽을 때까지 믿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