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해영 (문단 편집) === [[KIA 타이거즈]] 시절 === || [[파일:/image/109/2005/11/02/200511021442011100_1.jpg|width=100%]] || || KIA 타이거즈 시절 || 2003 시즌 종료 후 FA를 신청, 삼성에게 4년 31억 이라는 당시 FA 최고액을 요구했으나[* 종전 FA 계약 최고액은 2001년 양준혁이 삼성으로 돌아오며 기록한 4년 최대 27억 2천만 원이었다.] 협상이 결렬되며 시장으로 나오게 되었다. 직전시즌 몇 차례 부진하며 3할 타율과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지만 38홈런을 기록하는 등 시즌 스탯은 괜찮았기에 [[진필중]], [[정수근]]과 함께 FA 최대어로 평가받았고, 4번타자감이 필요했던 KIA에서 제시한 4년 28억 제안을 수락, 당시 FA 최고액을 기록하며 KIA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진필중과 정수근이 각각 4년 30억, 6년 40억 6천만 원으로 이적하며 하루만에 최고액 기록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KIA에서의 활약은 삼성 시절에 비해서 많이 떨어졌고, 데뷔 후 처음으로 2군으로 내려가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후 [[먹튀]]로 까였다. 계약 첫 해였던 2004 시즌, 개막전에서 4번 타자로 출장해 5회 초 2타점 적시 2루타를 기록하며 기아에서의 첫 안타와 타점을 만들어내면서 팀의 승리에 기여했으나 그 후 1할 타율에 홈런은 단 1개에 그치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6월 들어서 주간타율 5할을 기록하는 등 어느정도 살아나기 시작했으나, 장타력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8월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2군 강등까지 당할 정도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고, 결국 11홈런에 3할대 장타율로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한때 논란이 됐었던 [[빵 사건]]이 이 해 나왔다. 다음 해였던 2005년 시즌에는 시즌 4번째 경기였던 SK전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했지만 이후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4월 중순 두산과의 경기에서 멀티홈런을 때려내는 등 살아나기 시작, 5월 들어서는 타율을 크게 끌어올린 후 5월 말 만루홈런 포함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맹활약하면서 시즌 타율 3위에 장타율 2위로 올라서는 등 지난해와는 달리 시즌 초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6월부터 시작된 부진이 끝나지 않으면서 결국 두 차례 2군으로 강등되었고, 자기의 미니홈피에 당시 임시감독이던 [[서정환]]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가 [[서정환]] 감독과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시즌 후반 내내 벤치에 있어야 했다.[* 당시 기아는 시즌 초부터 투수진 붕괴로 최하위로 추락하며 분위기가 개판이었다. 그나마 타선은 [[이종범]]과 [[장성호]], 마해영으로 어찌어찌 돌아갔지만 시즌 후반에 감독과의 불화로 마해영이 빠져나가며 이종범과 장성호 두 명만 남게 되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LG와의 3:3 트레이드로 기아를 떠나게 된다. 기아에서의 성적은 2년간 타율 0.275 23홈런 131타점으로 먹튀였지만, 후술할 LG 시절에 비해선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이름값은 못했지만 어쨌든 두 시즌 모두 두 자릿수 홈런을 쳐내며 잘 안 맞지만 그래도 맞으면 위험하다는 공갈포 이미지는 지켰기 때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