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두 (문단 편집) ==== 북부와 남부의 차이 ==== [[한반도]]에서 원래 만두로 가장 유명했던 지역은 [[북한]]의 [[개성시|개성]]으로 이미 [[고려시대]]부터 [[쌍화점]] 같은 만두가게가 성행했던 곳이다. 겨울이 되면 만두를 빚어 곳간에 걸어놓은 채반에 저장해 두고 먹었다고 한다. 개성은 [[서울특별시|서울]]과 불과 차로 1시간 거리밖에 안되는 비교적 가까운 지역이지만, 개성에서는 설날에 만두를 먹었고, 서울에서는 [[떡국]]을 먹었다. 이렇게 [[황해도]]를 비롯한 현재 북한 지방에서는 만두가 명절 음식 취급을 받는다. 즉 남부는 [[떡국]], 북부는 만둣국으로 명절 음식이 갈리는 것. 이를 뒷받침하듯 서울·경기를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는 둘의 절충형인 [[떡만두국]]을 해먹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개성 만두는 다른 [[경기도]] 만두와 맛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지만[* 크기는 조금 더 크다. [[평안도]]식처럼 아주 큰 것은 아니고], 현재는 개성만두를 포함해 경기도식 만두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없어 진짜 개성 만두를 맛보긴 쉽지 않다.[* 실제로 개성에서 직접 만두를 빚으며 살다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2022년 기준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요리 활동이 어려운 80~90대의 고령이다. 개성 출신 부모나 친지를 둔 피난민 2세대 정도가 1세대로부터 전수 받은 개성 만두의 정통 레시피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2세대의 나이 또한 50~70대에 접어들고 시대 흐름과 식재료의 변화에 따라 과거의 레시피와 현대의 입맛이 접목되었기 때문에 [[남북통일]]이 되어야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긴 세월 동안 북한도 음식의 변화가 있었던데다 무엇보다 고난의 행군으로 만두와 같이 고급 식재료를 쓰는 음식이 온존히 보존되었을리가 없다.] [[편수]]라고 하는 개성식 만두도 있는데, 중국식 덤플링(바오쯔)에 가장 근접한 형태의 만두다. 보통은 애호박이나 오이를 물기를 최대한 짜낸 후 살짝 볶아 식힌 후, 다른 물기 없이 볶은 고기나 재료와 함께 만두피에 싸서 쪄먹는다. 특이하게 [[선(음식)|호박선]]이라고 하는 개성식 유사 만두도 있다. 애호박을 먹기 좋은 형태로 잘라 그 단면을 열십자로 가른 다음 돼지고기나 [[쇠고기]]로 채우고 찐 다음 진간장으로 간을 해서 숟가락으로 떠 먹는다. 만두피 대신 호박에 소를 넣어 만든 만두라고 보면 된다. 거의 사라진 음식이라 먹어본 사람은 극소수일 듯. 혼돈찜이라고 불리는 이름만으로도 특이한 북한식 만두도 있다. 이 만두는 [[한식대첩]]의 [[한식대첩 시즌3|시즌3]] 3화에서 소개된 만두. [[http://blog.naver.com/midari20/220381641901|만드는 법]]. 혼돈은 훈툰 내지는 완탕이라고 하는 중국식 물만두의 명칭이다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남부 지방]]에서는 [[배추김치]]를 씻지 않고 넣어 속을 빚고, 서울을 포함한 중부와 북부지방은 고춧가루의 텁텁함을 없애기 위해 김치를 씻어서 넣는다. [[두부]]와 고기의 배합비율도 중요한데, 두부를 너무 많이 넣으면 퍽퍽해진다. [[평안도]]나 [[황해도]] 등 한국 북부 지방에서는[* 정확히는 [[개성시]] 이북 지역이다.] 옛부터 설날 때 만두를 빚는 풍습이 있었는데, 남쪽으로 풍습이 퍼져서 남북분단 뒤의 남한에서도 설날에 만두를 빚는 풍습이 있다. 주된 원인은 남북이 분단되고 [[6.25 전쟁]] 이후 [[1.4 후퇴]]로 북부 지방 사람들이 피난을 위해서 월남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온난한 남부 지방에서는 이런 만두를 빚는 풍습이 적었다. 현대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냉장 기술이 부족한 과거에는 봄이나 여름에 속재료인 [[숙주나물]], 두부나 돼지고기가 쉽게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제분기술이 부족하여 밀가루 자체가 고급 식재료여서 중남부 지방은 메밀 만두를 주로 소비했다. 즉 현재 남쪽 지방에서 먹는 만두는 실향민의 음식[* [[부울경]] 지역은 [[흥남시]]&[[원산시]]를 중심으로 한 [[함경도]] 출신, [[충청도]]-[[전라도]]는 [[평안도]] 지역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이 주류]에서 온 것이지, 원래 흔히 먹던 것은 아니다. 또한 메밀뿐만 아니라 다른 재료도 이용했는데 밀가루를 최대한 적게 쓰려고 만두 소를 밀가루에 굴려서 만드는 굴림만두, 배추, 상추같은 커다란 채소를 만두피로 사용하는 숭채만두 등이 있었고 쌀가루 같은 여러 곡물 가루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조선후기에 [[조선]]을 방문한 [[러시아 제국]] 다데슈칼리안 공후도 "15분 후 [[생선]], 고깃국, [[달걀]], 붉은 고추를 넣은 [[생선]], '''수수와 완두로 만든 고기만두''', 말린 쇠고기, 설익은 [[밤(열매)|밤]], [[쌀]], [[꿀]], [[다시마]], [[꽃]] 모양으로 예쁘게 자른 [[문어]] 등 14가지의 갖가지 요리가 담긴 상을 두 개나 받았다."라고 기록했는데 이를 보면 수수가루, 완두가루로도 만두를 빚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후의 영향 덕분에 북부 지방에서는 만두를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남부와 달리 크기도 큼직하고 속도 터질 듯 많이 넣는 것이 특징이다. [[평양시|평양]]식을 예로 들면, 피의 지름이 12 cm 이상 되고, 다진 김치와 돼지고기, 데쳐서 다진 숙주, 두부로 만든 속[* [[당면]]은 안 들어간다. 특이할 것도 없는게 당면이라는 재료 자체가 널리 퍼진 시기가 얼마 되지 않는다. [[순대]]도 속재료 양을 값싸게 불리려고 당면을 채워넣은 당면순대가 널리 퍼진 것 역시 반세기가 약간 넘을 뿐이다.]을 꽉꽉 채워 넣기 때문에 시중 [[설렁탕]]집 뚝배기만한 그릇에 3개에서 5개만 넣어도 그릇이 꽉 찬다. 피가 시중에서 파는 가장 큰 만두피보다 1.2~1.5배 더 크다. 남자 어른 한 사람도 5개면 배부르다. 당연히 그 큰 만두는 한 입에 넣기 힘들거나 불가능하므로, 숟가락으로 뚝뚝 끊어서 국물과 함께 떠먹음이 정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