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월대 (문단 편집) ==== 금원 ==== [include(틀:한국의 정원)] 만월대 동북쪽에 위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 창덕궁 [[후원]]과 같은 궁궐에 포함된 정원이다. 딱히 정해진 명칭이 없었던 듯 하며 보통 후원(後園), '''금원(禁園, 禁苑)''', 어원(御園) 등으로 불렸다. 호수가 있었으며 덕분에 화재가 나도 후원까지 닥치는 경우가 적었다. 서경 [[장락궁]]에도 금원이 있다는 기록이 있고 [[의종 대 별궁]]인 수덕궁의 금원은 의종이 매우 사치스럽게 만들어 조선시대에 엄청나게 욕 먹었다. 금원엔 진귀한 꽃, 동물, 광석을 진열해 두었다고 한다. * '''산호정(山呼亭)''' 산호(山呼)는 군주에게 환호하는 행위를 말하는 단어다. 예를 들어 '산호하여 만세라 외쳤다.' 산호정은 고려 금원의 대표적 정자다. 고려사에 정말 자주 나온다. 이자겸의 난 당시 본궐이 완전히 불탈 때 산호정만이 호수 근처에 있어 화마를 피해가 인종이 살아남았다. 게다가 당시 궁궐 내 책을 관리하던 김수자란 신하가 국사, 우리 역사를 기록한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산호정으로 와 땅 속에 모두 묻어 우리 역사 기록이 살아남았다. 명종 대 또 화재가 났을 때 명종도 산호정으로 피신해 펑펑 울었다. * 상춘정(賞春亭) 고려 금원의 정자 중 하나. 산호정과 같이 오랜 시간동안 만월대에 서 있었다. 문종은 태자와 신하들에게 상춘정의 꽃에 관한 시, 상화시(賞花詩)를 짓게 시켰다. * 충허각(冲虛閣) 의종이 금원을 증축하며 지은 각으로 금색과 벽(碧)색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몄다고 한다. * 선구보(善救寶) 약을 보관한 전각. 의종이 지었다. * 양성정(養性亭) 괴석, 명화(名花)를 주변에 꾸민 정자다. 의종이 지었다. * 양이정(養怡亭) 의종이 연못을 파고 지은 정자. 고려사엔 [[청기와]]를 올렸다고 기록되있다. * '''제석원(帝釋院)''' [[제석원]] 문서 참조. * 사루(絲樓) 후원에 있던 작은 누각. 언젠가 현종이 '''직접''' 사루 주변에 모란을 심은 적이 있다. 그리하여 덕종, 정종, 문종, 순종, 선종, 헌종, 숙종까지 모두가 영화시(詠花詩)를 지어 이를 찬양했고, 예종은 모란시(牧丹詩)를 지어 찬양했다고 한다. (고려사 예종 세가 재위 7년 4월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