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맘루크 (문단 편집) == 기원 == [[중앙아시아]]와 [[캅카스]]에서 끌려온 튀르크계 [[노예]]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고 군사 훈련을 시켜 맘루크로 육성했다. 이들의 시초는 서기 9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압바스 왕조]]의 제8대 칼리파 [[알 무타심]]은 모친이 [[튀르크|튀르크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튀르크족 노예 군인들이 처우를 개선하고, 이들을 사병화하면서 페르시아계 군벌들과 권력 다툼을 벌였다. 이들은 노예로 매매되는 과정에서 가족과 흩어졌고 어디 도망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칼리파에게 절대 충성했고, 칼리파가 이들을 아랍인 군인들보다 더 신뢰하자 아랍인 병사들과 튀르크인 병사들은 자주 유혈 충돌을 벌였다. 심지어 아랍인 시민들과 튀르크계 맘루크들이 바그다드에서 유혈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이 시점을 계기로 아랍인은 중동 이슬람 왕조의 군대 주력에서 점점 밀려난다. 맘루크 중 상당수가 튀르크인이었으며, 자신들을 고용하고 훈련시킨 고용주 외에는 아랍-이슬람 제국에 별다른 연고가 없었기 때문에 자력으로 높은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없는 신분이었고, 따라서 반역을 일으키지 않는 충성심 높은 군인으로서 아랍 군주들에게 각광받았다. 튀르크인 이외에도 [[체르케스인]][*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후기에는 대개 체르케스인 노예가 맘루크가 되었다.], 슬라브인[* 주로 중세 초 [[이베리아 반도]]의 [[알안달루스]] 지방에서 활용되었다]도 많았으며, 캅카스의 튀르크인 중에는 슬라브계 백인과 혼혈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기독교 국가인 에티오피아의 '''흑인 기사'''와 [[이슬람 제국]]의 '''백인 맘루크'''가 싸우는 모습도 볼수있었다. 중세 초 [[후우마이야 왕조]]에서는 슬라브인 노예병들이 많았고, 후우마이야 왕조가 분열된 이후 슬라브 맘루크 출신 군인들이 베르베르인이나 아랍인 군벌들과 전쟁을 치르고 독자적인 왕조를 세우기도 하였다. 근세 사파비 왕조에는 처음에는 키질바시라는 광신도 집단에 의지하였으나 키질바시들이 말을 잘 안 듣고 종파가 다른 지방 주민들을 마구 학살하자, 대신 [[조지아인]] 노예병들이 선호되었다. 11~13세기 [[아바스 왕조|압바스 칼리프조]]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돈으로 세금을 거두어 군인들에게 돈으로 봉급을 주는 시스템이 무너지고, 유럽 봉건제도와 유사하게 군인들에게 토지 수조권을 배부하면서[* 농민들과 농민들이 농사짓는 땅을 세트로 관리시키고 세금을 대신 받아 봉급을 충당하게 하고] 지방에 할거하는 [[군벌]] 세력이 되었다. 아예 나라를 세우고 지배층이 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중에서는 북[[인도]]의 [[델리 술탄 왕조]]와 [[이집트]]에서 [[아이유브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맘루크 왕조]]가 유명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