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망탁조의 (문단 편집) == 개요 == {{{+1 莽卓操懿}}} [[중국]] 역사상 [[한나라]] 이후부터 [[위(삼국시대)|조위]][* 사실 사마의도 역적짓한 나라는 조위이지만 일생의 절반 이상을 한나라 시절에 보낸 인물이다.] 때까지의 4명의 역적을 가리키는 역사용어로,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의 4명을 말한다. 망탁조의는 이 4명의 성을 제외한 이름을 따온 말이다. 당나라 사람 조인(趙璘)의 저서 《인화록》(因話錄)에 처음 등장하는 표현으로,[* 《인화록》권 5 : ... 而莽, 卓, 操, 懿以降, 行滔天之心, 援此為法, 尤可悲也. [[https://zh.wikisource.org/wiki/%E5%9B%A0%E8%A9%B1%E9%8C%84/%E5%8D%B7%E4%BA%94|출처]]] 《송사》(宋史)[* 《송사》권 409 : ... 而大奸之必還, 莽, 卓, 操, 懿之禍, 將有不忍言者. [[https://zh.wikisource.org/wiki/%E5%AE%8B%E5%8F%B2/%E5%8D%B7409|출처]]]에도 같은 표현이 나온다. 이 넷 모두 [[역적|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조정에 출사해 봉록을 받아 먹던 국가를 무너뜨린 자]]들로, 왕망은 [[선양]]의 시조,[* 흔히 말하는 [[요(삼황오제)|요]]임금이 [[순(삼황오제)|순]]임금에게 선양했다는 아름다운 전설이 아닌, 타의적인 강제 선양을 말한다.][* 다만 순 역시 요에게서 억지로 왕위를 빼앗은 거라는 말도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찬탈(簒奪)의 시조'로 이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동안에 [[황제]]가 되었다. 동탁은 제위를 노렸으나 [[헌제]]의 선양이란 미끼에 걸려 죽음을 맞았고, 조조와 사마의는 생전에 황제가 되지 않았으나 그 자손들이[* 조조의 아들 조비,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 황제가 되면서 황제로 추존되었다. 아예 조조는 '나는 오히려 [[주문왕]]을 따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며 자신 스스로가 천자가 되지는 않겠으나 [[조비|후대]]에 결국 조씨가 황제가 될 것이라는 암시를 노골적으로 하였다. 역심이 없는 순수한 발언이라고 보기엔 이미 조조가 헌제를 수없이 겁박하였고, 순욱이라는 희대의 명신이자 조조 자신이 "나의 [[장량(전한)|장자방]]"이라 스스로 불렀던 인물을 숙청하면서까지 위왕에 오르는 야욕을 보였으므로 의도는 명확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황제의 자식을 회임한 후궁 [[동귀인]]을 죽이고, [[효헌황후 복씨]]를 죽였으며, 복씨 소생 아들들까지 죽인 행위는 결코 신하의 행위라 볼 수 없다. 또한 왕망과 조조는 [[구석]]까지 하사받아 최강의 권신으로 군림했던 바 있다. [[원술]]은 뽑히지 않았다. 다른 네 명의 경우 중앙 정부를 장악하고 황제를 압박하여 선양을 받아냈으며, 이를 통하여 이전까지의 황제를 폐위시키고 왕조를 교체한 데 비해, 원술은 지방 군벌로서 자의로 황제를 참칭하였기에 자기 지배 지역 바깥에서는 황제로 인정받지 못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저런 식으로 황제 놀음 하다가 다구리 맞고 죽은 인물이 수두룩해서 이런 급 떨어지는 놈들까지 일일히 넣기엔 여백이 부족하기도 하고... 이 구성에서 실제 찬탈은 못한 동탁을 빼고, 실제 찬탈을 도모한 동진의 권신이었던 [[환온]](桓溫)을 추가하여 '''망조의온'''(莽操懿溫)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다만 동탁은 찬탈만 못했을 뿐이지 실제로 저지른 전횡과 악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다.] 그 외에 [[양기]](梁冀), 홍공(弘恭), 석현(石顯) 등 한나라의 간신 이름을 적당히 배합해 '''기현망조(冀顯莽操)''', '''망탁공현(莽卓恭顯)'''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고정된 경구가 아니고 단순히 인명을 나열하는 것이기에 문헌에 따라 구성이나 어순이 다양한 편이다.[* 홍공과 석현은 [[한원제]] 시기 환관으로 황제의 신임을 받고 문고리 권력으로 세도를 누렸다. 시기상으로는 '공현망(홍공, 석현, 왕망. 이상 전한)기탁(양기, 동탁. 이상 후한)'이다.] 그러나 홍공, 석현과 양기는 간신이였으며 황제의 권위를 우습게 보고 국정을 농단해 패악을 부린 것은 맞지만 최소한 역심을 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망탁조의와 같이 엮기에는 어폐가 있긴 하다. 후세 사람들에게 이 '망탁조의' 4명은 [[역적]]에 대한 기준이자 대명사가 되었다. 이에 [[사문난적]]과 함께 왕조 시대 동아시아에서 정치적 욕설의 투탑(...)을 이루기에 이르러, 맘에 안 드는 누군가를 역적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할 때 반드시 튀어나오는 말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