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머스킷 (문단 편집) === 초창기 === 가장 초창기의 머스킷은 불이 붙은 밧줄로 점화약을 점화하는 화승식([[매치락]]) 머스킷이었다. 흔히 말하는 [[화승총]]이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이후 차륜식([[휠락]])방식에 이어 부싯돌의 마찰을 통해 점화약에 불을 붙이는 수발식 혹은 수석식([[플린트락]]) 머스킷이 등장하였다. 화승식 머스킷과 차륜식 머스킷이 사용되던 시기의 군대는 머스킷 사수뿐 아니라 장창병 등 냉병기로 무장한 병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본격적인 백병전 상황이 되면 냉병기 쪽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발식 머스킷이 등장할 때쯤에는 이제 보병=머스킷 사수가 되었다. 이는 17세기부터 보병 화력이 강화되고 총격전 비중이 심화되면서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17세기로 오면서 총병과 창병의 비중은 1:1이 되었으며, 30년 전쟁을 지나면서 총병 비중 증대는 더 심화되었다. 공격할 수 있는 거리가 몇미터에 불과한 창병과 100m 내외의 적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총병과 비교해보면 실제 야전에서 어떤 병과가 많을수록 전투에서 유리한지 자명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로써, [[루이 14세]]가 전장에서 창병들이 머스킷 사수가 죽거나 다치면 머스킷을 이어받아 사용한다는 보고를 받고, 전쟁부 장관에게 수발식 머스킷 및 총검의 전군 보급화를 지시했다는 일화가 있다. 유럽인들이 세계 각국에 [[식민지]]를 건설할 때 그 첨병이 되었고, 그를 통해 아메리카 등 유럽 바깥의 문명권에도 전래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때문에 [[아메리카]]의 어떤 영국 식민지에서는 '''머스킷으로 무장한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백인이 [[활]]로 대항하거나''' 서아프리카에서도 '''머스킷으로 무장한 흑인 부족들이 [[석궁]]을 든 [[스코틀랜드]]의 노예상인에게 맞섰다는''' 식의 [[러시아식 유머|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머스킷은 온갖 동네에서 워낙 많이 만들고 팔아 치워서, 유럽인들이 상대해야 할 토착군대도 보유한 총기류의 숫자가 만만치 않은 경우가 흔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경우 아예 대장장이들이 총기를 자체 생산/수리했는데, 북아메리카에 있던 고품위 노천 철광덕분에 의외로 성능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때문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전투를 벌일때 대장간을 우선 순위로 공격하는 일도 생겨났다. 흔히 [[7년전쟁]]에 참전한 원주민 전사들이 도끼나 휘둘러대던 원시부족이었다고 오해하곤 하지만, 실제론 절대다수가 머스킷으로 무장한 전사들이었고, 본거지의 이점을 살려 매복 전술까지 적극 활용하였기에 영국군과 프랑스군 모두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아랍권의 유격전용 전장식 소총인 [[제자일]][* 스타워즈의 [[터스켄 약탈자]]들이 실탄 총기를 쏴대는 게 이 제자일을 사용하는 유목민들을 모티브로 삼은 컨셉이다.]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유럽의 우위가 확고해진것은 대체로 [[산업혁명]] 후이다. 세상사가 무기만으로는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이다. 그러나 몇몇 부족이나 부대가 복제해 쓰는것과 수십만 대군에게 일괄보급하는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지라 이미 머스킷 시절부터 유럽은 지구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고 다녔고 나폴레옹이 오스만 제국의 최강전력인 맘루크 기병대를 이집트에서 박살냈으며(다만 총기 말고도, 프랑스 기병과 맘루크 기병이 1:1로 붙으면 맘루크가 이기지만, 100:100으로 붙으면 프랑스가 이긴다 등 조직력 측면도 컸다) 심지어 수십년후 청나라를 박살낸 1차 아편전쟁때도 영국군의 제식무기는 머스킷이었다.[* 2차 아편전쟁때부터 뇌관식을 썼다] 즉 후장총이니 기관포니 할 것 없이 이미 수발식 머스킷 시절부터 유럽은 우월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고 후장총과 기관총 이후로는 더더욱 압도적으로 벌어진 것 뿐이다.[* 상술되었듯 타 문명권에도 전파되어 복제품들이 나왔으나 수십만 대군에게 일정품질의 제품을 일괄지급할 공업기술력, 그리고 그를 운용하는 전투 교리는 유럽의 전유물이었다.] 유럽에겐 금은보화와 [[질산 칼륨|초석]](화약의 중요한 재료)이 떼로 굴러 들어온 [[아메리카]]가 있었던 덕도 크다. 다만 유럽의 우위는 해상에서 몇 세기 빠르게 확립되었는데,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오스만에게 포위당하던 시점에서 유럽 선원들은 인도양은 물론 남중국해, 동해 등 태평양까지 와서 통행세를 삥뜯고 거슬리면 박살내고 다녔다. 그 악명 높다는 왜구도 카라벨에게 털리기 일쑤. 이렇게 바다-항구에 한정되었던 유럽 식민지는 후장총 등이 나온 후 내륙으로 확산된다.[* 내륙으로 식민지 확장이 힘들었던것 무기보단 풍토병의 영향이 더컸다. 유럽식민지가 내륙까지 확장된것은 교통과 의학의 발달로 보급과 풍토병에 대처하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수발식 머스킷이 등장한 이래 거의 100여 년간 구조상의 큰 변화가 없이 사용되다가, 19세기 초중반에 발명된 [[뇌관]]과 [[미니에 탄]]으로 인해서 성능이 크게 개선되었다. 이것이 머스킷 라이플의 최종 진화형으로 당시의 금속 가공 기술과 경제성, 생산성 등의 한계로 잠시 종이 탄피, 금속 탄피 소총 들과 공존하다가 기술의 발전, 무연화약의 등장 이후 새로운 총기 기술의 발달로 점차 도태되다가 사라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