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머스킷 (문단 편집) === 19세기 === [[나폴레옹 전쟁]] 이후 머스킷은 두 가지 발명품 덕에 더욱 발전하게 된다. 첫 번째는 [[뇌관]]([[퍼커션 캡|Percussion cap]])이고, 두 번째는 [[미니에 탄]](Minie ball)이었다. 이러한 발전의 바탕에는 [[특허]]제도가 있었고, 여전히 전장식 활강총을 주력으로 사용한 타대륙과 유럽의 [[제국주의|무력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둘을 적용한 머스킷을 미니에 라이플로 분류한다. 사실 플린트락 때부터 무력격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었다. 멀리 갈 것 없이 영국이 불과 1만2천명으로 4억 인구의 청제국을 박살낸 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군은 여전히 나폴레옹 시대의 머스킷을 썼다. 다만 기술력 격차뿐 아니라 전술의 차이와 실전으로 단련된 영국/평화로 썩어가던 청군의 차이 등도 감안해야 한다.] 첫 영국의 포사이스에 의해 발명된 뇌관은 작은 금속관 안에 뇌산염을 넣은 물건으로, 충격을 가하면 불꽃을 일으킨다. 그 이전까지의 머스킷은 화약 접시에 부은 점화약에 부싯돌로 불꽃을 일으켜 총신 안의 장약을 터뜨리는 수발식이었는데 수발식 머스킷은 비가 오거나 해서 점화약이 젖으면 발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치명적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점화약이 [[흑색화약]]이 아닌 뇌관으로 대체되면서 병사들은 날씨에 상관없이 머스킷을 사격할 수 있게 되었다. 덤으로 장전 절차도 약간 편리해졌다.(화약 접시에 화약을 부을 필요 없이 뇌관만 끼우면 되니까) 게다가 장전시 불발률도 떨어졌다. 수석식 총의 불발률은 25%[* 오히려 화승식 총이 불발률이 더 적다. 불 붙은 심지로 직접 점화하니까. 대신 50센티 정도 되는 불 붙인 심지를 손가락에 끼우고 다니다 발포시마다 끼워야 하지만.] 그래서 불발시 행동 군율까지 다 정해졌고, 그 절차를 다 거치면 교전 중 도주도 허용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 사이 동료가 죽고 그 총을 받아서 쏜다.[* 당시 보병 부사관들의 주 임무 중 하나가, 전사하거나 다친 병사들의 머스킷을 회수해 고장을 일으킨 머스킷을 휴대한 병사의 것과 바꿔 주는 것이었다.] 두 번째인 미니에탄은 프랑스의 미니에가 발명한 머스킷용 탄환이다. 미니에탄에 대해 설명하려면 우선 당시의 라이플(선조총)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강선이 없는 머스킷이 전장을 지배하던 18세기 이전부터도, 이미 총열에 강선이 새겨진 총(라이플)은 존재했으나 군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지는 못했다. 우선 당시 기술로는 총열에 강선을 새기는 것이 비싸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더 큰 이유는 당시 라이플의 경우 장전에 걸리는 시간이 '''머스킷보다도 더 길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라이플의 강선이 효과를 보려면 탄환이 강선에 꽉 낄 정도로 맞물려야 하는데, 그를 위해서 '''탄환 한발 한발을 가죽이나 헝겊으로 감싸서''' 총열에 밀어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 자체도 번거로울 뿐더러 헝겊에 감싸여 지름이 커진 탄환은 장전봉으로 밀어넣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당시 라이플 사수는 심지어 장전봉과는 별도로 탄환을 총열 안에 밀어넣는 'bullet starter'라는 별도의 도구를 가지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http://youtu.be/zlvwfkL34WQ|#]] 그런 전용도구를 가지고서도 3분에 한발 꼴로 쏴댔으니 숙련되면 1분에 세발 쏘는 머스킷과 정면 화력전을 하면 당연히 이길 수가 없어서 일반 보병의 무기는 여전히 머스킷이 될 수밖엔 없었다, 그러나 미니에탄은 당시 라이플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주었다. 1849년 [[프랑스]] 육군 장교 클로드-에티엔 미니에가 개발한 미니에탄은 이전까지의 머스킷 탄환처럼 공 모양이 아니라 원추형으로, 뒷부분이 움푹 패여 있었다. 이 탄환을 머스킷에 넣고 발사하면, 발사시의 화약 연소 가스가 미니에탄의 크기를 확장시켜서 탄환이 강선에 딱 맞물리게 된다. 즉 미니에 탄환을 사용하면 비교적 빠른(즉 일반적인 머스킷 수준의) 장전 속도로 강선총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장전 속도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미니에탄은 유선형이므로 공 모양인 구식 머스킷 탄환보다 정확도나 사거리라는 측면에서 우월하다. 즉 미니에탄 덕택에 머스킷은 장전 속도와 정확도&사거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9세기 중반 이후의 머스킷은 이전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머스킷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정거리와 발사 속도, 그리고 신뢰성을 가진 무기로 진화하였다. 당장 뇌관을 사용하는 머스킷의 경우 총열 내부의 화약 자체가 젖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불발될 일이 없다는 것만 생각해도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머스킷을 이전 시기의 활강(강선이 없는) 머스킷과 구분하여 보통 강선 머스킷(Rifled-musket)[* 또는 미니에 라이플(Minié rifle).]이라 부른다. 강선 머스킷은 19세기 중후반까지 쓰였으나 후장식 총기와 금속 탄피 탄환이 발명되고 개량되어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막 종이 탄피를 이용한 후장식 소총인 [[드라이제]] 소총이 등장했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나 금속 탄피를 이용한 '''연발 소총'''인 [[헨리 소총]]이 등장한 미국 [[남북 전쟁]] 시기에도 전장식 소총은 여기저기서 잘만 쓰였다.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당시 초창기 후장식 소총들의 성능이 생각만큼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니들건이라 불리던 프로이센의 [[드라이제]] 소총은 비효율적인 종이 탄피의 구조로 인해 만들어진 바늘 모양 공이가 툭하면 부러지기 일쑤였으며, 부족한 기술력으로 약실이 제대로 폐쇄되지 않아 틈으로 화약 연소 가스가 뿜어져 사수의 얼굴을 구워버리는 사태가 종종 발생했다.[* 약실이 잘 폐쇄되어 사수가 안전하다면야 당연히 총기의 발전은 연발가능한 리볼버권총이 대형화되어 소총형태로 견착할 수 있는 형태로 나아가기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을 쭉 내밀어 쏘는 권총과 달리 견착자세의 소총은 약실이 얼굴 옆에 딱 붙게되는지라 발사후 눈에 심한 부상을 입을수도 있었다. 연발이 된다는 장점때문에 그래도 몇몇 시도가 나온뒤에는 결국 묻혀버렸다.] 후에 나오는 금속 탄피제 헨리 소총은 작동은 좀 더 매끄러웠으나 총기의 구조가 약해 강한 탄피를 사용할 수 없었다.[* 이는 [[레버액션]]과 [[림파이어 탄약]] 둘 모두의 문제였다. 해당 항목 참조.] 둘째는 단연 '''가격'''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당시의 종이 탄피 후장식 소총은 머스킷 라이플에 비해 3배 이상 비쌌으며, 헨리 라이플은 그보다도 훨씬 더 비쌌다. 더군다나 금속제 탄피 역시 등장 초기에는 제조 비용이 만만찮았다.[* 프랑스가 금속탄피를 쓰는 타바티에르 소총을 개발하고도(기존 전장총을 후장식으로 개조했다) 타바티에르는 2선급으로 돌리고 종이탄피를 쓰는 [[샤스포 소총]]을 주력으로 사용한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었다. 물론 금속탄피가 급속히 대세로 자리잡음에 따라 곧 본격적인 금속탄피를 쓰는 [[그라 소총]]으로 이들을 대체했다.] 당연히 군대의 제식무기는 대량 생산하여 대량 지급하여야 하는데 가성비 면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기존에 산업 설비까지 다 갖춰진 전장식 소총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남북전쟁에서 남군은 울며 겨자먹기로 머스킷 소총을 사용할 때 상대적으로 경제력과 기술이 뛰어났던 북군은 장탄수 16의 헨리 소총을 마구 쏴재꼈으며 결국 '더러운 양키 새퀴들이 월요일에 장전해서 일주일 내내 쏴대는 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vinlNV_chA4|초창기 리볼버들도 사실상 작동방식 자체는 머스킷과 같았다.]] 실린더에 흑색화약과 탄환을 넣고 총에 달린 램로드로 꽉 눌러준 후 실린더 뒷부분에 뇌관 캡을 달아 점화시키는 방식. 비단 콜트뿐 아니라 레밍턴, STARR, Beaumont-Adams등 당대 리볼버가 전부 다 그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